공기업 정년퇴직 후 피자가게에 재취업…성공비결이 궁금하다면?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3.10.18. 13:57

수정일 2023.10.18. 17:37

조회 7,661

마포시니어클럽 정문 벽면에 있는 글귀가 눈길을 끈다. ©윤혜숙
마포시니어클럽 정문 벽면에 있는 글귀가 눈길을 끈다. ©윤혜숙

과거 주민센터가 있었던 자리에 지금의 마포시니어클럽이 들어섰다. 마포시니어클럽에 도착하니 건물 정문 벽면에 “다시 출근하는 당신의 설렘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이곳으로 출근하는 시니어라면 저 글을 대할 때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다. 올해 63세의 정갑순(가명) 씨는 피자 가게에 출근할 때마다 이 글을 보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마치 첫 출근했을 때 느꼈던 그 설렘을 지금 고스란히 느끼고 있단다.
정년 퇴직한 뒤 사회에서 더 이상 쓸모없다고 여겼던 저입니다. 
그런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또 거기서 제가 일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요!
마포시니어클럽을 통해 재취업에 성공한 정갑순 씨(63세)

은퇴했던 정갑순 씨가 재취업에 이르게 된 사연을 들어보기로 했다.
마포시니어클럽 건물 1층에 시니어가 일하는 피자 가게가 입점해 있다. ©윤혜숙
마포시니어클럽 건물 1층에 시니어가 일하는 피자 가게가 입점해 있다. ©윤혜숙

정갑순 씨는 피자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시니어다. 우리 사회에서 시니어60세 이상의 노인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시니어인 정갑순 씨는 피자를 주문받아서 계산한 뒤 피자를 만들어서 포장하는 일련의 작업을 척척 해내고 있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니 이 일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처럼 능숙해 보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정갑순 씨는 작년부터 피자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정갑순 씨는 직장 생활 30년 차로 지난 2020년 12월 말에 퇴직했다. 만 60세에 이르러 정년퇴직을 한 셈이다. 그는 공기업에 근무하면서 그만두기 2년 전부터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퇴직한 뒤 남편과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갈 계획도 세워뒀다고 한다.

정갑순 씨가 퇴직할 당시 코로나19가 한창이어서 모처럼 계획했던 해외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그냥 운동 삼아 집과 헬스장을 오가면서 지내야 했다. 그 이듬해가 되자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한 뒤 여유 시간이 주어질 때 책이라도 실컷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침대 옆 테이블에 둔 책을 펼쳐 들고 읽지 못했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아직도 건강해서 충분히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서든 일하고 싶었다.
마포시니어클럽은 만 55세 이상 은퇴자의 일자리를 지원해 주고 있다. ©윤혜숙
마포시니어클럽은 만 55세 이상 은퇴자의 일자리를 지원해 주고 있다. ©윤혜숙

그는 단순히 취미가 아닌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알려준 대로 마포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했다. 아쉽게도 이곳은 만 65세 이상 어르신의 일자리를 지원하는 기관이었다.

그러다 마포시니어클럽을 알게 되었다. 마포시니어클럽은 은퇴자의 지식과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개발·지원, 창업·육성 및 재화의 생산·판매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고 생산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인 복지 시설이다. 노인복지법 23조의 2에 의해 ‘노인 일자리 전담 기관’으로 등록되어 있다. 마포시니어클럽은 만 55세 이상 은퇴자의 일자리를 지원해 주고 있으니 당시 정갑순 씨에게 더욱 적합한 기관이었다.
시니어가 일하는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주문해 봤다. ©윤혜숙
시니어가 일하는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주문해 봤다. ©윤혜숙

처음에 정갑순 씨는 노인직업상담 분야로의 취업을 원했다.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어서 마포시니어클럽에서 피자사업단 지원 안내 문자를 받고 신청했다. 1차 서류 심사, 2차 면접을 거쳐서 최종 선정되었다. 그에게 합격 비결을 묻자 그는 “지원하는 분들의 자격이나 경력은 엇비슷할 테고, 아무래도 근무자끼리 화합할 수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 같았어요”라고 조심스레 대답한다.

피자 가게에서 근무하기 전 강서구청 앞 '피자마루' 본사에서 2주간 교육을 받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육이 있었다. 먼저 이론 수업을 받은 뒤 피자를 종류별로 직접 만드는 실습까지 하는 빡빡한 교육 과정이었다. 하지만 피자 실습까지 해보는 교육을 받는 동안 당장 피자 가게를 차려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단다.
피자 주문을 받자마자 시니어가 냉장고에서 도우를 꺼내어 피자 반죽을 만들고 있다. ©윤혜숙
피자 주문을 받자마자 시니어가 냉장고에서 도우를 꺼내어 피자 반죽을 만들고 있다. ©윤혜숙

2022년 5월 마포시니어클럽 1층에 '피자마루'가 개업했다. 정갑순 씨는 개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1년 이상 근무해 오고 있다.

옆에서 정갑순 씨의 작업을 가만히 지켜봤다. 정갑순 씨는 냉장고에서 주먹 크기의 도우를 꺼내어 얇고 넓게 펴서 피자 반죽을 만들었다. 그 피자 반죽의 둥근 테두리를 따라서 기다란 치즈를 넣고,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펴 발랐다. 그는 불고기, 버섯, 양파, 피망 등의 토핑을 골고루 배치하고 마지막으로 치즈 가루를 골고루 뿌렸다. 오븐에 넣고 구웠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능숙한 솜씨로 피자 한 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피자 가게 주방은 오븐의 열기로 뜨거웠다. 이번 여름은 폭염으로 인해 피자 가게에서의 근무가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정갑순 씨는 일에 대한 만족도가 무척 높았다.

“만족해요. 무엇보다 이곳 근무지가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어요. 걸어서 오가는 거리가 적당한 것 같아요. 과거 공기업에서 근무할 적과 비교해 보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 운동 삼아 걸어서 출퇴근하고 있거든요. 또한 주 2회 반나절 근무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무리 없이 여유롭게 일할 수 있어요.”
피자 가게에서 일하는 시니어가 피자 종류에 맞는 토핑을 피자 반죽에 올리고 있다. ©윤혜숙
피자 가게에서 일하는 시니어가 피자 종류에 맞는 토핑을 피자 반죽에 올리고 있다. ©윤혜숙

그는 주 2회 월요일과 화요일, 하루에 5.5시간 근무하고 있다. 근무하는 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수‧목‧금요일 사흘간 헬스장에서 운동한다. 그래서 지인들과의 약속도 근무가 없는 쉬는 요일에 정하고 있다.

그는 직장에서 30년간 근무했다. 하지만 그땐 지금보다 젊어서 하루 8시간을 근무해도 지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체력 면에서 하루가 다르게 나이가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체력적으로 열세인 그에겐 지금의 주 2회 반나절 근무가 일하기에 적당한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입사 동기들 중 벌써 그만둔 분들도 있다. 그는 동료들의 얘기를 전해줬다. “퇴직하면 건강보험이 직장에서 지역으로 전환되거든요"라며 "그러면 개인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 액수가 월등히 높아지기 때문에 건강보험료를 직장에서 부담해 주는 일자리를 선호하는 분들이 많아요”라고 말한다. 월 60시간 이상 근무하면 직장 건강보험료를 내는 게 가능하다. 예를 들면 요양보호사는 월 60시간을 근무하므로 직장건강보험료를 납부하기 때문에 건강보험료 부담이 줄어든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월 60시간 이상 근무하는 기관으로 이직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정갑순 씨는 그런 점을 안타까워했다.

정갑순 씨가 다시 일하면서 보람을 느꼈다면 어떤 게 있을까?
제가 다시 일할 수 있게 된 그 자체가 보람입니다.
마포시니어클럽을 통해 재취업에 성공한 정갑순 씨(63세)

정갑순 씨는 고객들이 “웬만한 빵보다 더 맛있게 먹고 있어요”라고 말을 건네줄 때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고 했다.

하지만 고충도 있을 것 같았다. “낮 시간대 주문량이 적을 땐 힘들어요. 제가 근무하는 이곳의 피자를 많은 분이 주문해 주셔야 마포시니어클럽 피자사업단이 유지될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차라리 바쁜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피자 가게에 근무하는 직원다운 고민이 엿보였다.
피자 가게에서 일하는 시니어가 주문 받은 피자를 완성한 뒤 포장하고 있다. ©윤혜숙
피자 가게에서 일하는 시니어가 주문 받은 피자를 완성한 뒤 포장하고 있다. ©윤혜숙

정갑순 씨 또래의 많은 퇴직자들이 지금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서울시 자치구별로 구청에 노인 일자리 전담 부서나 시니어클럽이 있으니 그곳에서 상담 받아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는 퇴직한 뒤 새로이 일자리를 구하려는 분들에게 조언했다.

“욕심을 내려놓으세요. 주위를 둘러보면 예상했던 것보다 일자리는 많아요. 그런데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정작 본인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가 더 어려울 겁니다. 눈높이를 낮추면 얼마든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어요.”
마포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뿐만 아니라 베이비부머 취·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마포시니어클럽 누리집
마포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뿐만 아니라 베이비부머 취·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마포시니어클럽 누리집

고령화사회다. 정갑순 씨의 경험에 의하면, 노인 일자리는 많지만 정작 개인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가구 소득 등을 따져서 일자리를 우선 배정하기보다 정말 일자리가 절실한 분들 위주로 일자리가 주어지고, 또 직장 건강보험료를 적용하는 노인 일자리가 많아지길 바랍니다"라고 거듭 당부했다.

마포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베이비부머 취업 및 창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리위쿠키, 노고산떡볶이, 카페리, 젠틀맨택배, 손끝공예, 쉐프리 도시락, 기대기프트, 날마다반찬, 피자사업단, 우리보듬이, 노노헬스케어, 이엠드림, 도담지킴이, 북실북실, 그린품, 노인일자리지원사업단, 실버도슨트, 취업알선, 시니어엑터스, 시니어인턴쉽, 마포50+행복아카데미 등의 다양한 사업단을 운영하면서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자치구별로 시니어클럽이 있다. 정갑순 씨가 마포시니어클럽에서 일자리를 구했듯 은퇴한 시니어라면 자신의 거주지와 가까운 시니어클럽에서 일자리를 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인생 제2막이 펼쳐질 것이다.

마포시니어클럽

○ 위치 :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8길 58
○ 교통 : 지하철 2호선 합정역 8번 출구에서 737m
○ 영업시간: 월~금요일 09:00~18:00( 토‧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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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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