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니 신바람 나는 인생! 어르신 문해교실

시민기자 이정민

발행일 2023.03.15. 15:08

수정일 2023.03.15. 17:48

조회 5,370

3월 6일부터 새 학기가 시작된 용산구 평생학습관 어르신 문해교실 ⓒ이정민
3월 6일부터 새 학기가 시작된 용산구 평생학습관 어르신 문해교실 ⓒ이정민

“교재 13쪽 그림 위에 불평이 걷히고, 이게 나왔어요. 자, '거'에다가 무슨 받침일까요? '거'에다가 '디귿' 받침이 있는 '걷히다'. 한 번 읽어볼게요. 걷히다.”
평균 연령 70대 중반 어르신들이 강의실에 앉아 선생님의 발음을 듣고 따라 읽는다. 이곳은 지난 3월 6일부터 새 학기가 시작된 용산구 평생학습관 어르신 문해교실이다.
평소 잘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맞춤법에 관해 배워가는 어르신들 ⓒ이정민
평소 잘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맞춤법에 관해 배워가는 어르신들 ⓒ이정민

“선생님, 겉절이 할 때도 그렇게 쓰는 거예요?” 앞자리에 앉은 어르신이 손을 들어 질문을 한다.
“좋은 질문하셨어요. 겉절이는 '겉'만 살짝 절인다는 뜻이에요. 어머님들 집에서 겉절이 김치 해 드시잖아요? 그 겉절이 받침은 '티읕'으로 '걷히다'와는 달라요.”
평소 말할 때는 잘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맞춤법에 관해 하나씩 배워가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겉절이 이야기 덕분에 어르신들은 오늘도 한글 공부가 즐겁다.

배움을 향한 어르신들의 열정은 코로나 상황에도 멈추지 않았다. 대면 수업이 힘든 때에도 1:1 전화 수업 방식으로 문해교실의 운영을 이어갔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올해 새 학기 개강은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어르신들이 진지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 ⓒ이정민
어르신들이 진지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 ⓒ이정민

“집에서 혼자 하려면 공부가 안 돼. 계속 텔레비전 보게 되잖아요. 여기 돌리고, 저기 돌리고.(웃음)”
“저는 이런 데가 있는 걸 몰랐어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려고 왔어요. 글자 한 번 볼 거 두 번 보고, 두 번 볼 거 세 번 보고 계속 써 봐요.”
어린 학생들이 공부에 관해 겪는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르신들의 진솔한 경험담이 인상적이다.
용산구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허은성 평생교육사 ⓒ이정민
용산구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허은성 평생교육사 ⓒ이정민

“오늘도 새로 어르신 한 분이 오셨는데, 대부분 자녀 분들이 많이 모시고 오세요. 학습자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저희가 노력하기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다시 나가셨던 분은 한 분도 안 계세요.“ 이곳에서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허은성 평생교육사의 말이다. 처음엔 20명 규모로 시작해 5년 만에 3개 반 50여 명의 어르신들과 만나고 있다.
문해교실 고급과정 이루리 반에는 92세 최고령 어르신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 ⓒ이정민
문해교실 고급과정 이루리 반에는 92세 최고령 어르신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 ⓒ이정민

문해교실 고급과정 이루리 반에서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의 각오를 들었다. “내 나이가 80살만 됐어도 끝까지 다녀보겠는데, 90이 넘었으니 그저 다치지 않고 조심히 다녀야겠죠. 재미있게 공부하면서 선생님과 친구들 얼굴 보는 게 제일 좋아요.” 92세 최고령 어르신의 이야기에 학생들이 다 같이 큰 박수로 환호했다.
문해교실에 다니며 자신감을 얻었다는 손영자 어르신 ⓒ이정민
문해교실에 다니며 자신감을 얻었다는 손영자 어르신 ⓒ이정민

“태풍 뉴스를 들을 때, 예전에는 날씨 용어가 어려우니까 잘 몰랐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자세히 알려주셔서 이제는 제 눈과 귀가 조금은 열린 거 같아요.” 많이 배우지 못한 평생의 한을 풀게 해줘 고맙다는 손영자 어르신(82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친다. 가방 속에는 교재와 필기도구, 알파벳 글자판까지 늘 갖고 다니며 공부를 한다.
문해교육을 통해 변화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람이라는 김인숙 강사 ⓒ이정민
문해교육을 통해 변화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람이라는 김인숙 강사 ⓒ이정민

“어르신들이 여기에 오시는 이유는 그 분들의 삶이 바뀌기 때문이거든요. 작은 것으로 크게 변화시키는 게 문해교육이라고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용기를 내주셨으면 좋겠고, 또 주변 인식이 바뀌었으면 합니다.” 한글 기초 교육은 물론,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사용법 등 생활문해교육을 맡고 있는 김인숙 강사의 진심 어린 바람이다.
작년 부채만들기 수업에 참여한 문해교실 어르신들 ⓒ문해교실 김인숙 강사
작년 부채만들기 수업에 참여한 문해교실 어르신들 ⓒ문해교실 김인숙 강사
집에서는 맨날 엄마, 어머니 그러잖아요. 
그런데 여기선 학생이 돼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게 너무 좋아요. 

출석 확인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 때 가장 행복하다는 한 어르신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다음 시간에도 변함 없이 필통 한가득 연필을 채워 올 문해교실 어르신들을 응원한다.

용산구평생학습관

○ 위치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24-19 용산구평생학습관(한남동공영주차장 2층)
○ 운영일시 : 월~금요일 09:00~18:00, 주말 휴관
용산구평생학습관 수강신청
○ 문의 : 02-2199-6490

시민기자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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