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과학적인 '한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가득한 이곳은?

시민기자 심재혁

발행일 2023.10.06. 13:00

수정일 2023.10.06. 14:42

조회 558

1443년 창제했고 1446년 세상에 알린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반포를 기념해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널리 알리고,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한글날. 한글날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른 법정 공휴일로, 5대 국경일 중 하나라 태극기를 게양하는 날이다.

한글날의 기원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26년 11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맞아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의 공동 주최로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했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과거에는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글'이라는 뜻에서 '언문(諺文)'으로, 다시 ‘나라의 글’이란 뜻으로 ‘국문(國文)’으로 불렸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조선의 언어라는 뜻인 ‘조선어’로 불렀으며, 광복 후 ‘한글’로 부르게 되었다. 한글이라는 단어의 창시자는 불분명하지만, 주시경 선생이 책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한글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날이 포함된 한 주를 ‘한글주간’으로 명명,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한글주간은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 4일부터 10일까지다. 한글주간을 맞아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을 주제로 한 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을 방문했다.
국립한글박물관 전경 ⓒ심재혁
국립한글박물관 전경 ⓒ심재혁

국립한글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지하철 이촌역(4호선·경의중앙선)에서 도보 10분이면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은 4층으로 구성됐으며, 전시관은 2층의 상설전시실과 3층의 특별전시실이 있다.

2층 상설전시실은 2022년 재편공사를 거쳐 ‘훈민정음, 천 년의 문자 계획’이라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전시는 한글의 기원인 훈민정음 머리말의 문장에 따라 7개 공간으로 구성했다.

세종대왕은 하늘, 땅, 인간을 의미하는 ‘천지인’을 바탕으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백성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또한 훈민정음을 통해 소리는 있으나 글자가 없었던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에 어둠을 밝혔다.
2022년 국립한글박물관 재편공사 후 전시 중인 '훈민정음, 천 년의 문자 계획' ⓒ심재혁
2022년 국립한글박물관 재편공사 후 전시 중인 '훈민정음, 천 년의 문자 계획' ⓒ심재혁

①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훈민정음의 머리말의 첫 번째 구절,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이다. 우리나라의 말은 중국의 한자(漢字)와 달랐지만, 우리말을 적을 우리글이 없었다. 그래서 중국의 글자인 한자를 빌려 사용했다. 이를 차자 표기(借字表記)라고 하는데, 이두(吏讀)와 구결(口訣), ‘향찰(鄕札)’이 대표적인 차자 표기이다.

이두는 한자를 쓰되 어순을 우리말대로 적었고, 향찰은 어순뿐만 아니라 문법 요소와 어휘까지도 우리말처럼 표현했다. 향찰은 신라 시대 문학인 향가(鄕歌)에 자주 사용됐다. 구결은 한글 원문을 우리말식으로 풀어 읽기 위해 한자 곁에 기호나 글자를 넣어 사용한 방식이다.

이두, 구결, 향찰 모두 우리말을 풀어내는 데 의의가 있었지만, 문제점이 또렷했다. 결국은 한자를 빌려 쓰는 방식이라 한자를 익힌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 한자를 익힐 수 있던 사람들은 귀족이나 관리로, 일반 백성들은 한자를 익힐 수 없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사용했다는 뜻이다.
향찰로 적힌 불교 경전 ⓒ심재혁
향찰로 적힌 불교 경전 ⓒ심재혁

② 내 이를 딱하게 여겨

그래서 세종은 한자를 몰라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에 주목했다. 애민(哀愍) 정신과 중국과 다른 우리만의 글자가 필요하다는 자주(自主) 정신, 실생활에 쓰임이 있어야 한다는 실용(實用) 정신을 바탕으로 한글 창제의 필요성을 느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이러한 세종의 마음이 담긴 '세종어보(世宗御寶)'를 전시하고 있다. 세종어보는 세상을 떠난 세종의 업적과 어진 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새겨 만든 도장으로, 세종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세종어보를 실제로 볼 수 있어 놀라웠다.
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된 세종의 마음이 담긴 세종어보(世宗御寶) ⓒ심재혁
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된 세종의 마음이 담긴 세종어보(世宗御寶) ⓒ심재혁

③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이라는 글자를 창제했다. 자음 글자 17개와 모음 글자 11개를 합한 스물여덟 개의 문자는 어떤 백성이라도 쉽게 배워서 쓸 수 있도록 간단했다.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뜬 다섯 개의 기본 자음 글자는 소리의 세기에 따라 획을 더할 수 있게 했고, 천지인(하늘·땅·사람)의 모양을 본뜬 세 개의 기본 모음 글자는 지금의 스마트폰에도 적용되어 있다. 단 스물여덟 자로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은 우리나라 역사를 바꿔 놓았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훈민정음 창제 후 발간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글의 창제 배경과 원리를 설명한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과 한글 활자로 찍어낸 책인 '원각경(圓覺經)'이다. 15세기 한글 활자를 찾기란 상당히 어려운데, 한글 활자를 통해 책의 제작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세종은 글자를 창제한 뒤, 실제 사용하는 데 부족한 점은 없는지 살피고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만들었다. 용비어천가는 조선 창업의 유래를 중국 고사에 비유해 찬송한 한글로 작성된 최초의 시가 문학이다. 이처럼 세종은 백성들이 한글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였다.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심재혁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심재혁
한글 활자로 찍어낸 책인 원각경(圓覺經) ⓒ심재혁
한글 활자로 찍어낸 책인 원각경(圓覺經) ⓒ심재혁
한글로 작성된 최초 시가 문학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심재혁
한글로 작성된 최초 시가 문학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심재혁

④ 쉽게 익혀

전시는 네 번째 구절인 ‘쉽게 익혀’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백성들이 한글을 쉽게 익히게 하기 위해 한글 창제 초기에는 당시 민간에 널리 퍼져 있던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불경을 한글로 펴냈고, 유교 경전을 번역해 한글로 옮겨 조선의 통치 이념을 알렸다. 조선은 유교 국가지만 불교 경전을 먼저 번역한 까닭은, 민간에 널리 뿌리내린 불교를 통하지 않고는 한글을 보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자주 접했던 책 ‘삼강행실도언해(三綱行實圖諺解)’도 이때 발간됐다. 삼강행실도는 유교의 중요 덕목인 효(孝), 충(忠), 열(㤠)의 모범이 되는 이야기로, 한문으로 발행된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만들어 삼강행실도언해를 보급했다. 백성을 위해 그림을 함께 실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한글로 번역한 다양한 한문책들 ⓒ심재혁
한글로 번역한 다양한 한문책들 ⓒ심재혁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번역한 삼강행실도언해(三綱行實圖諺解) ⓒ심재혁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번역한 삼강행실도언해(三綱行實圖諺解) ⓒ심재혁

⑤ 사람마다

세종은 왕부터 노비까지 신분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한글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랬다. 실제로 한글은 왕부터 노비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사용했다. 왕족들이 서로 한글 편지를 주고받은 자료들과 양반 여성이 한글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한 문서들이 증거로, 조선 시대 백성과 양반의 생활에 한글이 스며들면서 한글로 점점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최초의 한글 소설이 탄생한다. 바로 ‘홍길동전’이다. 출판업자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소설을 대량 생산하면서 한글 소설은 많은 백성에게 읽힌다. 홍길동전도 마찬가지인데, 전시를 통해 서울에서 간행한 홍길동전을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간행한 홍길동전 ⓒ심재혁
서울에서 간행한 홍길동전 ⓒ심재혁

⑥ 날로 씀에

다만 세종의 꿈은 1910년, 일제 강점기로 잠시 멈추게 된다. 일제는 민족 말살 정책을 통해 한글 사용을 금지하고, 창씨 개명을 강제했다.

하지만 민족의 정체성인 한글을 지키는 노력은 계속됐다.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1931년부터 조선어학회로 개칭)는 1929년부터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1942년까지 13년 동안 ‘조선말 큰사전’을 작성했다. 이 원고를 통해 우리말 보존과 우리말 사전의 편찬이 가능했다.

이는 조선어학회를 모티브로 한 영화 '말모이'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해방 후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14권의 책이 발견됐다. 이 원고를 바탕으로 ‘조선말 큰사전’이 간행되며 우리말 사전 편찬의 대장정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지금도 곱씹는 시인 윤동주의 시 역시 한글로 쓰였다.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중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이 돋보이는 ‘별 헤는 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13년 동안 작성한 ‘조선말 큰사전’의 원고 ⓒ심재혁
13년 동안 작성한 ‘조선말 큰사전’의 원고 ⓒ심재혁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심재혁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심재혁

⑦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어느덧 전시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역사와 시대가 변하면서 한글 역시 표기 방법에 의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정확한 소통을 위해 각종 표기법들이 만들어졌고, 모아쓰기, 풀어쓰기, 가로쓰기, 세로쓰기 등이 도입되기도 했다.

현재는 한글을 아름답게 사용하고자 다양한 서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깊은 뜻을 받들고자 ‘독립 서체’ 캠페인을 통해 윤봉길 의사, 한용운 선생의 글씨체를 무료로 배포하는 등 한글이 하나의 ‘문화’가 되기도 한다.
한글은 이제 예술과 문화를 입어, 새로운 예술이 됐다. ⓒ심재혁
한글은 이제 예술과 문화를 입어, 새로운 예술이 됐다. ⓒ심재혁

한글날(10월 9일)과 한글주간(10월 4일~10일)을 맞아 방문한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통해 한글의 과거와 오늘, 한글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시설과 전시 내 체험, 콘텐츠가 있어 어린이와 함께 방문해도 좋을 것 같았다. 

3일간 이어지는 한글날 연휴,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한글의 아름다움과 과학을 알아 보는 건 어떨까.

국립한글박물관

○ 위치 :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
○ 교통 : 지하철 4호선·경의중앙선 이촌역 2번 출구 ‘박물관 나들길’에서 400m
○ 관람시간 : 월~금·일요일 10:00~18:00 / 토요일 10:00~21:00
○ 휴관일 :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 관람료 : 무료
누리집
○ 문의 : 02-2124-6200

시민기자 심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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