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말고 더 있다! 한글 관련 문화재 세 가지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10.25. 10:11

수정일 2021.10.25. 11:53

조회 1,112

'훈민정음·말모이 원고·이윤탁 한글영비' 선정

매월 그 달에 관련 있는 문화재를 카드뉴스로 제작해 알리고 있는 서울시가 한글날이 있는 이 달에는 ‘훈민정음’과 ‘말모이 원고’, ‘이윤탁 한글영비’를 10월의 문화재로 선정했다.

① 우리글 훈민정음의 한문해설서 ‘훈민정음’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을 해설한 한문해설서 <훈민정음>은 세종이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우리글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도 알려주는 책이다. 국보 제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 ⓒ간송미술문화재단

훈민정음은 1940년 간송 전형필이 구입해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수장고 신축 공사 등으로 미술관이 휴관이어서 실물을 보기가 어렵다. 아쉬운 마음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석보상절’을 보러 갔다. ‘석보상절’은 한글로 표기한 최초의 산문 작품이다.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으로 어머니 소헌왕후의 죽음을 애도하며 간행한 이 책에는 효심이 배어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먼저 간행된 ‘석보상절’의 권 20, 21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먼저 간행된 ‘석보상절’의 권20, 21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이선미

지난 9월 30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공개 중인 ‘석보상절’은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권20호, 권21호다. 세종 시기에 한글활자와 갑인자로 인쇄한 초간본으로 일반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밖에 1434년에 제작된 갑인자(甲寅字)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152점도 함께 전시 중이다. 
‘석보상절’은 부처의 일대기와 설법 등을 번역해 간행한 최초의 한글 산문집이다.
‘석보상절’은 부처의 일대기와 설법 등을 번역해 간행한 최초의 한글 산문집이다. ⓒ이선미
‘만세의 보물’이라고 칭해진 갑인자 추정 금속활자도 함께 공개됐다.
‘만세의 보물’이라고 칭해진 갑인자 추정 금속활자도 함께 공개됐다. ⓒ이선미

② 최초의 사전을 만들기 위해 작성한 ‘말모이 원고’

일제강점기인 1911년부터 주시경과 제자들이 참여해 만든 ‘말모이 원고’는 지난해 보물로 지정돼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뜻의 말모이는 지금의 ‘사전’을 의미한다. 주시경은 우리 말과 글을 연구하는 것이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하고 말모이를 집필했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출간은 되지 못했다. 말모이 원고는 이후 조선어사전편찬회로 이어져 우리말 사전 편찬의 기틀이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전 '말모이'의 원고로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전 '말모이'의 원고로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선미

말모이 원고는 한글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로, 현존 근대 국어사 자료 중에 유일하게 사전출판을 위해 남은 최종 원고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말모이 원고는 ‘알기’, ‘본문’, ‘찾기’, ‘자획찾기’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여러 권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 전해지는 것은 한 권뿐이다.
말모이 원고 본문 첫 면과 ‘알기’ 부분
말모이 원고 본문 첫 면과 ‘알기’ 부분 ⓒ이선미

③ 우리나라 묘비 중 한글을 쓴 최초의 묘비 ‘이윤탁 한글영비’

노원구 하계동 불암산 자락에는 우리나라 묘비 중 한글을 쓴 최초의 묘비인 ‘이윤탁 한글영비’가 있다. 조선 중종 때 승정원 부승지를 지낸 이문건이 1536년 아버지 이윤탁의 묘를 어머니 묘와 합장하며 세운 묘비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한글이 새겨져 보물 제1524호로 지정됐다.
노원구 하계동에 최초의 한글 비석 ‘이윤탁 한글영비’가 자리하고 있다.
노원구 하계동에 최초의 한글 비석 ‘이윤탁 한글영비’가 자리하고 있다. ⓒ이선미

이 비석의 앞뒤에는 일반적인 경우처럼 가문의 가계를 밝히며 찬양하고, 돌아가신 부모의 유덕을 추모하며 망극한 슬픔을 서술했다. 한글 기록은 왼쪽 옆면에 새겨져 있다. ‘영비(靈碑)'라는 한자 아래 옛 한글로 “신령한 비석이므로 훼손하는 사람은 재화를 입으리라. 이를 글(한문)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노라”라는 경고가 적혀있다. 
묘비 한 면에 옛 한글로 경고문이 새겨져 있다.
묘비 한 면에 옛 한글로 경고문이 새겨져 있다. ⓒ이선미

반대편에도 같은 의미의 글을 한자로 새겼다. “부모를 위하여 이 비석을 세운다. 누가 부모 없는 사람이 있어서 어찌 차마 이 비석을 훼손할 것인가? 비를 차마 깨지 못하리니 묘도 또한 능멸 당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만세를 내려가도 가히 화를 면할진저”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이윤탁 묘역에 세워진 영비각, 한글영비를 보존하고 있다.
이윤탁 묘역에 세워진 영비각, 한글영비를 보존하고 있다. ⓒ이선미

이윤탁의 묘는 원래 지금의 태릉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 윤씨의 능을 조성하면서 이장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때 부모의 묘가 또다시 옮겨지는 불행을 겪지 않도록 이런 경고문을 써서 세운 것으로 본다. 이후 묘역은 별다른 변화 없이 거의 500년을 지나왔다. 그러던 중 지난 1998년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묘가 약 15미터 정도 위치를 옮기게 되었다. 오래된 비문의 내용을 아는 사람들이 이장공사를 꺼리는 바람에 마지막에 가서야 확장공사가 진행됐다. 이날 성주이씨 문중 어른들이 묘역에서 제를 지내고 정성을 다해 이장했다고 한다. 
부모를 향한 효심이 깃든 묘비 앞에서 잠시 숙연해진다.
부모를 향한 효심이 깃든 묘비 앞에서 잠시 숙연해진다. ⓒ이선미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에도 사대부들은 주로 한문을 썼다. 더욱이 묘비에 한글을 적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이문건은 부모의 묘비에 한글 경고문을 써서 일반 백성들도 잘 알고 조심하도록 했다. 이는 당시 백성들이 한글을 알고 사용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500년 전 조상들이 쓰던 한글이 남아 있는 한글영비, 우리나라 국보인 훈민정음과 최초의 한글사전의 기틀인 된 ‘말모이 원고’까지 10월 문화재는 한글의 우수함과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이달의 서울문화재' 카드뉴스는 매월 서울시 문화본부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seoulcity_culture/),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culture.seoul.go.kr)을 통해서 온라인으로 만나볼 수 있다.
10월의 서울 문화재 카드뉴스
10월의 서울 문화재 카드뉴스 ⓒ서울시 문화본부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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