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된 비극의 현장, 경복궁 안 '건청궁' 특별 개방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23.08.22. 16:20

수정일 2023.08.22. 17:12

조회 10,053

경복궁 건청궁이 9월 18일까지 특별 개방되어 사전 예매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박분
경복궁 건청궁이 9월 18일까지 특별 개방되어 사전 예매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박분

궁궐에 들어서려면 겹겹이 두른 수많은 문을 넘어야 한다. 정문을 지나면 또 다른 궁문이 엄숙하게 앞을 막아서고 그 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문이 다가온다. 겹겹이 문으로 막은 깊은 궁궐을 뜻하는 구중궁궐은 바로 건청궁(乾淸宮)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건청궁은 경복궁 후원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정전인 근정전을 지나고 경회루를 건너 향원정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이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박분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이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박분
단청 없이 단아한 모습의 건청궁 ©박분
단청 없이 단아한 모습의 건청궁 ©박분
건청궁 장안당으로 관람객들이 들어서고 있다. ©박분
건청궁 장안당으로 관람객들이 들어서고 있다. ©박분

‘궁 안의 궁’으로 불리는 건청궁은 광복절 8월 15일부터 9월 18일까지 한 달간 특별 개방되며, 경복궁을 찾은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1873년 건립된 건청궁은 역대 임금의 초상 등을 보관하는 역할을 하다, 1876년 경복궁에 큰 불이 난 이후 건청궁은 고종과 명성황후가 머무는 생활 공간으로 쓰였다. 이후 건청궁은 조선의 정책이 결정되는 중요한 장소가 됐다. 고종의 개화 정책 중 하나로 1887년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를 생산해 전등을 밝힌 곳도 건청궁이다.

그러나 건청궁은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시해되는 을미사변을 겪으며 비운의 공간이 됐다. 을미사변으로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자 주인을 잃은 건청궁은 바로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고, 200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고종의 처소인 장안당의 대청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박분
고종의 처소인 장안당의 대청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박분
장안당에 마련된 왕의 집무실로 외교관을 접견하는 등 업무를 봤던 공간이다. ©박분
장안당에 마련된 왕의 집무실로 외교관을 접견하는 등 업무를 봤던 공간이다. ©박분
병풍과 보료가 놓인 왕의 침전 ©박분
병풍과 보료가 놓인 왕의 침전 ©박분

건청궁은 궁궐의 다른 전각과는 달리 일반 사대부 집의 건축양식을 따라 소박하게 지어졌다. 창덕궁의 낙선재처럼 단청이 없어 수수하고 단아한 모습이 큰 특징이다.

이번 특별 개방 전시에서는 장안당을 조성해 선보이고 있다. 건천궁의 사랑채인 장안당(長安堂)고종의 처소로 3칸의 대청과 동쪽과 서쪽의 온돌방,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넓은 대청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와 함께 어좌가 놓여 있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고종이 의례 장소로 사용했던 대청은 전시 기간 동안 포토존으로 꾸며져 관람객들은 어좌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볼 수 있다. 장안당 서쪽 온돌방은 왕의 집무실로 고종이 신하들과 외교관을 접견하는 등 공식 행사가 열렸던 공간이다. 4칸의 온돌방으로 구성된 정화당고종의 침실이자 사적 공간으로 각 칸은 필요에 따라 문으로 막거나 개방할 수 있는 구조다. 안쪽에 위치한 왕의 침전에는 병풍과 보료 등 당시 사용했던 유물들을 재현해 배치했다.
장안당 서쪽 누각인 추수부용루 ©박분
장안당 서쪽 누각인 추수부용루 ©박분
추수부용루의 창호를 열면 향원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박분
추수부용루의 창호를 열면 향원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박분
녹음이 짙은 향원정 ©박분
녹음이 짙은 향원정 ©박분

장안당에는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라는 누각이 자리하고 있다. 외관은 밋밋해 보이지만 누각 안으로 들어서면 시원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한 실내 모습이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가을 물속의 연꽃’이라는 뜻을 지닌 누각의 이름처럼 창호에 이는 산들바람이 어느덧 가을이 가까이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추수부용루는 아마도 건청궁에서 가장 멋스런 공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열린 창호를 통해 바라보는 향원정의 아름다운 경관은 더욱 운치를 자아낸다.
고종의 처소인 장안당에서 복도각을 따라가면 명성황후의 처소인 곤녕합과 이어진다. ©박분
고종의 처소인 장안당에서 복도각을 따라가면 명성황후의 처소인 곤녕합과 이어진다. ©박분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의 대청 모습 ©박분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의 대청 모습 ©박분
왕비 생활실인 곤녕합 정시합에 나전주칠문갑, 주칠경상 등 전통 좌식 가구들이 눈길을 끈다. ©박분
왕비 생활실인 곤녕합 정시합에 나전주칠문갑, 주칠경상 등 전통 좌식 가구들이 눈길을 끈다. ©박분
곤녕합에 조성된 궁녀 생활실 ©박분
곤녕합에 조성된 궁녀 생활실 ©박분

건청궁의 안채인 곤녕합(坤寧閤)명성황후의 처소로 장안당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고종의 처소인 장안당에서 복도각을 따라가면 곤녕합과 이어진다. 곤녕합은 두 칸의 대청과 온돌방, 누마루로 구성됐다.

곤녕합에서도 특별 개방 기간 동안 왕비의 알현실, 생활실, 궁녀 생활실 등을 조성해 당시 궁중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은 손님을 맞는 기능으로도 활용됐다. 특히 너른 대청과 대청에 달린 온돌방은 구한말 당시 외국 부인들을 맞는 알현실로 사용됐다. 대청 너머 온돌방은 콘솔과 테이블 등 서양식 가구들과 실내장식으로 꾸며졌다. 왕비 생활실인 곤녕합 정시합은 사적 공간으로 4칸의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나전주칠문갑, 주칠경상 등 전통 좌식 가구들이 눈길을 끈다. 곤녕합 대청 서쪽 온돌방과 서행각은 궁녀들이 머물며 일하는 공간으로 찻상이 차려져 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던 장소로 알려진 곤녕합 옥호루 ©박분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던 장소로 알려진 곤녕합 옥호루 ©박분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던 장소로 알려진 곤녕합의 누각인 옥호루(玉壺樓)에 이르면 마음은 한껏 숙연해진다. 조선의 왕비가 한낱 보잘 것 없는 일본 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죽임을 당한 뼈아픈 역사를 새삼 가슴속에 새기며 동시에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한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경복궁 향원정 ©박분
사계절이 아름다운 경복궁 향원정 ©박분

건청궁 앞 향원정이 보이는 연못가로 분홍빛 연꽃이 함초롬히 피었다. 향원정은 고종이 건청궁에 기거하던 1867년 건청궁 앞에 연못을 만들어 지은 육각형의 정자로 건청궁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고 있다. 비록 아픔이 서린 비운의 공간이지만 건청궁을 거닐며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면서 즐겁게 관람하고 향원정 그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어 행복했다. 건청궁 특별 개방 기간 동안 누구나 별도 사전 예매 없이 무료(경복궁 입장료 별도)로 관람할 수 있으니, 구중궁궐 문이 열린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경복궁 건청궁 특별 개방

○ 기간 : 2023. 8. 15. ~ 9. 18.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7
○ 교통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 도보 약 5분
 -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도보 약 10분
○ 운영시간 : 10:00~16:00(전시실 입장마감 15:40)
○ 휴궁일 : 8월 16일, 22일, 29일, 9월 5일, 12일
○ 입장료 : 무료(경복궁 입장료 별도)
경복궁 누리집 
○ 문의 : 02-3700-3900

시민기자 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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