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의 이야기돌로 만난다! 경희궁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시민기자 이정규

발행일 2023.07.05. 14:10

수정일 2023.07.05. 14:43

조회 2,817

경희궁은 언제 가더라도 크게 붐비는 법이 없다. 사시사철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찾는 4대 궁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에 비하면 인지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역사에 크게 관심이 있지 않고서야 경희궁의 창건과 그 이후의 내력까지 모두 알기 쉽진 않다.

이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경희궁을 방문하는 시민들이 경희궁의 역사를 보다 쉽게 알 수 있도록 ‘경희궁 이야기돌’을 지난 6월에 경희궁 내에 설치했다. 그런데 잠깐! 왜 문화재청이 아니고 서울역사박물관인가? 다른 4대 궁궐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경희궁은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4대 궁궐은 입장료가 있지만 경희궁은 무료 관람인 것도 차이점이다.

‘경희궁 이야기돌’은 낮은 사각 기둥 모양의 돌에 상판을 설치하고, 상판 부분에 경희궁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적어 놓은 것이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을 둘러싼 회랑에 설치되었는데, 동쪽 행각과 서쪽 행각에 각각 6개씩 총 12개가 설치되어 있다. 숭정전의 정문인 숭정문 앞에는 각 이야기돌의 위치와 담고 있는 주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종합 안내판도 설치되어 있다.

이야기돌의 내용은 딱딱한 정보 나열 방식이 아니라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어 관람객이 친근감을 느끼며 보다 쉽게 경희궁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경희궁은 누가 세웠나요?”, “원래 이름이 경희궁이 아니었다고요?”, “경희궁에서 태어나고 승하한 임금이 누구인가요?”, “경희궁은 무엇 때문에 빈터가 되었나요?”, “경희궁 전각을 사용했던 일본인 교육기관은 무엇인가요?”, “경희궁에 다시 돌아온 유일한 건물은 무엇인가요?” 등 질문만 보아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내용들이 많다.

이렇듯 경희궁 이야기돌은 경희궁의 건설과 활용에서부터 수난과 복원에 이르기까지 경희궁에 얽힌 흥미로운 주제를 엄선해 들려주며 방문객들에게 더욱 만족스러운 관람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경희궁으로의 여행은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있는 금천교에서부터 시작된다. 2001년에 복원된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02년에 경희궁터 내에 건립되었다. ⓒ이정규
경희궁으로의 여행은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있는 금천교에서부터 시작된다. 2001년에 복원된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02년에 경희궁터 내에 건립되었다. ⓒ이정규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 원래 위치는 금천교 밖 지금의 구세군회관 자리이다. ⓒ이정규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 원래 위치는 금천교 밖 지금의 구세군회관 자리이다. ⓒ이정규
경희궁의 정전 숭정전의 정문인 숭정문. 경종, 정조, 헌종이 숭정문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이정규
경희궁의 정전 숭정전의 정문인 숭정문. 경종, 정조, 헌종이 숭정문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이정규
숭정문의 열린 문 뒤로 숭정전이 보인다. ⓒ이정규
숭정문의 열린 문 뒤로 숭정전이 보인다. ⓒ이정규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2단의 월대 위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의 숭정전은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되고 있고 현재 건물은 복원된 것이다. ⓒ이정규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2단의 월대 위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의 숭정전은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되고 있고 현재 건물은 복원된 것이다. ⓒ이정규
숭정전 앞에서 왕의 시선으로 바라본 숭정전 일대. 넓은 앞마당인 조정에 세 갈래 길인 삼도(이 중 가운데 길이 어도)와 품계석이 보인다. 임금이 남향으로 앉은 상태에서 삼도를 경계로 좌측, 즉 동쪽에는 문신들이 도열하고, 우측 즉 서쪽에는 무신들이 도열했다. ⓒ이정규
숭정전 앞에서 왕의 시선으로 바라본 숭정전 일대. 넓은 앞마당인 조정에 세 갈래 길인 삼도(이 중 가운데 길이 어도)와 품계석이 보인다. 임금이 남향으로 앉은 상태에서 삼도를 경계로 좌측, 즉 동쪽에는 문신들이 도열하고, 우측 즉 서쪽에는 무신들이 도열했다. ⓒ이정규
숭정전의 조정에 있는 품계석의 모습. ⓒ이정규
숭정전의 조정에 있는 품계석의 모습. ⓒ이정규
조정에서 숭정전으로 오르는 계단 역시 삼도와 연결되어 세 갈래로 나뉜다. 문양이 새겨진 채 가운데 계단에 비스듬히 박혀 있는 것이 답도(踏道)이다. 이름과 달리 임금이 실제로 밟는 길은 아니고 가마를 타고 지나가는 길이다. 대개 답도에는 봉황이 새겨지나 용이나 공작이 새겨진 답도도 있다. ⓒ이정규
조정에서 숭정전으로 오르는 계단 역시 삼도와 연결되어 세 갈래로 나뉜다. 문양이 새겨진 채 가운데 계단에 비스듬히 박혀 있는 것이 답도(踏道)이다. 이름과 달리 임금이 실제로 밟는 길은 아니고 가마를 타고 지나가는 길이다. 대개 답도에는 봉황이 새겨지나 용이나 공작이 새겨진 답도도 있다. ⓒ이정규
숭정전 내부는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어좌와 일월오봉병, 승지 자리 등이 보인다. ⓒ이정규
숭정전 내부는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어좌와 일월오봉병, 승지 자리 등이 보인다. ⓒ이정규

'12개의 이야기돌'로 경희궁의 역사를 읽는다

경희궁은 1617년(광해군 9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0년에 완성되었다. 원래 경희궁 부지에는 훗날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원종)의 옛 집이 있었는데, 그곳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술사의 말을 핑계 삼아 광해군은 그 자리에 궁을 세우고 경덕궁(慶德宮)이라 하였다. 하지만 광해군은 이 궁에 들지 못한 채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난다.

영조는 궁궐 이름인 ‘경덕’이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발음이 같다고 하여 1760년에 ‘경희궁(慶熙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영조는 재위 기간의 1/3이 넘는 약 19년간을 경희궁에 머물며 경희궁의 위상을 창덕궁에 비견할 정도로 높인 임금이었다. 영조의 아버지인 숙종은 경희궁에서 태어나고 승하했으며, 영조와 순조도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경희궁에서 즉위식을 거행한 임금도 많은데 경종, 정조, 헌종이 경희궁 숭정문에서 즉위식을 치렀다.

이처럼 조선 후기에 경희궁은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했으며, 동궐로 불렸던 창덕궁 및 창경궁에 대비되어 서궐로도 불렸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경복궁의 재건 대신에 새로이 지어졌던 경희궁의 소실을 가져온 것은 역설적이게도 경복궁의 중건 때문이었다. 1865년(고종 2년)부터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경희궁의 주요 전각 몇 동을 제외한 전각 대부분을 헐어 경복궁 공사에 부재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또한 경희궁 뜰에 깔린 전석과 층계석도 광화문 중건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로써 경희궁은 사실상 궁궐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 경희궁은 완전한 소실의 길로 가속화된다. 당시 경희궁에 남아있던 전각은 숭정전, 회상전, 흥정당, 흥화문, 황학정뿐이었는데, 일본인 자녀를 위한 경성중학교가 경희궁 부지에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전각은 학교 건물로, 빈터는 운동장으로 사용되었다. 1920~1930년대를 지나며 이 건물들마저 모두 다른 곳으로 팔려나가면서 경희궁의 옛 건물은 경희궁터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현재 경희궁에서 볼 수 있는 전각들은 1980년대 있었던 발굴조사를 기초로 하여 복원된 것이다. 다만 정문인 흥화문의 경우는 일제강점기에 이토 히로부미 추모사찰인 박문사로 옮겨져 정문으로 사용되었다가, 1988년에 경희궁 복원 사업에 따라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흥화문의 원래 위치는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있는 금천교 밖 지금의 구세군회관 자리이며 동향이었으나, 지금의 위치에 남향으로 복원되었다. 흥화문 외에 현재 남아 전하는 옛 경희궁 건물은 숭정전과 황학정인데, 숭정전은 동국대학교에, 황학정은 사직근린공원에 있다.
숭정문 앞에는 ‘경희궁 이야기돌’의 위치와 담고 있는 주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종합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정규
숭정문 앞에는 ‘경희궁 이야기돌’의 위치와 담고 있는 주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종합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정규
경희궁 이야기돌은 숭정전을 둘러싼 회랑에 설치되었는데, 동쪽 행각과 서쪽 행각에 각각 6개씩 총 12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정규
경희궁 이야기돌은 숭정전을 둘러싼 회랑에 설치되었는데, 동쪽 행각과 서쪽 행각에 각각 6개씩 총 12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정규
경희궁 이야기돌은 어린이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낮은 높이로 제작되었다. ⓒ이정규
경희궁 이야기돌은 어린이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낮은 높이로 제작되었다. ⓒ이정규
이야기돌의 내용은 딱딱한 정보 나열 방식이 아니라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어 관람객이 친근감을 느끼며 보다 쉽게 경희궁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정규
이야기돌의 내용은 딱딱한 정보 나열 방식이 아니라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어 관람객이 친근감을 느끼며 보다 쉽게 경희궁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정규
경희궁의 슬픈 운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어서 뜻깊었다. ⓒ이정규
경희궁의 슬픈 운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어서 뜻깊었다. ⓒ이정규
경희궁 이야기돌은 경희궁의 건설과 활용에서부터 수난과 복원에 이르기까지 경희궁에 얽힌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더욱 만족스러운 관람 경험을 제공한다. ⓒ이정규
경희궁 이야기돌은 경희궁의 건설과 활용에서부터 수난과 복원에 이르기까지 경희궁에 얽힌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더욱 만족스러운 관람 경험을 제공한다. ⓒ이정규
숭정전 뒤편에는 편전인 자정전이 있다.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이정규
숭정전 뒤편에는 편전인 자정전이 있다.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이정규
태령전은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이다. 영조가 승하한 후에는 혼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정규
태령전은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이다. 영조가 승하한 후에는 혼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정규
태령전 안에 전시되어 있는 영조의 어진. ⓒ이정규
태령전 안에 전시되어 있는 영조의 어진. ⓒ이정규
태령전 뒤에는 서암이라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 바위 속에 샘이 있어 아직도 물길이 흐른다. 원래는 왕암이라 불렸는데, 그 이름 때문에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짓게 되었다는 속설도 있다. 숙종 때 이름을 서암으로 바꾸었다. ⓒ이정규
태령전 뒤에는 서암이라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 바위 속에 샘이 있어 아직도 물길이 흐른다. 원래는 왕암이라 불렸는데, 그 이름 때문에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짓게 되었다는 속설도 있다. 숙종 때 이름을 서암으로 바꾸었다. ⓒ이정규
싱그러운 여름 초입 오후, 붉은 회랑과 짙푸른 숲이 강렬한 대조를 보여준다. ⓒ이정규
싱그러운 여름 초입 오후, 붉은 회랑과 짙푸른 숲이 강렬한 대조를 보여준다. ⓒ이정규
겹겹이 쌓이는 전각의 지붕 너머 현대식 빌딩과 남산서울타워가 보인다. ⓒ이정규
겹겹이 쌓이는 전각의 지붕 너머 현대식 빌딩과 남산서울타워가 보인다. ⓒ이정규
전각의 지붕을 이루는 내림마루와 귀마루에 용두와 잡상이 놓여 있다. 건물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장식적 의미와 함께 재앙과 악귀를 막고자 하는 주술적인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이정규
전각의 지붕을 이루는 내림마루와 귀마루에 용두와 잡상이 놓여 있다. 건물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장식적 의미와 함께 재앙과 악귀를 막고자 하는 주술적인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이정규
경희궁 바깥 둘레에는 멋진 산책길이 있다.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 꽃 너머 경희궁 전각이 보인다. ⓒ이정규
경희궁 바깥 둘레에는 멋진 산책길이 있다.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 꽃 너머 경희궁 전각이 보인다. ⓒ이정규
일제강점기 말엽 일제는 폭격에 대비하여 경희궁터의 옛 침전이 있었던 자리에 콘크리트로 방공호를 만들었다. ⓒ이정규
일제강점기 말엽 일제는 폭격에 대비하여 경희궁터의 옛 침전이 있었던 자리에 콘크리트로 방공호를 만들었다. ⓒ이정규
경희궁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궁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기에 더없이 좋다. ⓒ이정규
경희궁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궁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기에 더없이 좋다. ⓒ이정규

경희궁

○ 관람시간 : 오전 9시 ~ 18시 (입장마감 17:30)
○ 휴관일 : 1월 1일, 매주 월요일
○ 관람요금 : 무료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 안내 자세히 보기
○ 문의 : 02-724-0274~6

시민기자 이정규

서울의 다양하고 멋진 모습을 사진에 담아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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