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궁궐 돌아봤다궁! 한눈에 정리하는 우리 역사

시민기자 김창일

발행일 2023.05.09. 16:40

수정일 2023.05.09. 16:51

조회 13,629

외국인들과 함께 관람한 창덕궁 후원 옥류천 ©김창일
외국인들과 함께 관람한 창덕궁 후원 옥류천 ©김창일

경복궁, 명동, 시청 등 서울 곳곳에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는 서울. 서울은 이제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도시가 됐다. 고궁을 찾는 외국인들이도 많다. 궁궐을 관람하며, 우리 궁궐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5대 궁궐과 종묘, 운현궁 등을 방문했다. 모쪼록 우리 문화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서울역사박물관과 구세군회관 사이에 있는 경희궁 금천교 Ⓒ 김창일
서울역사박물관과 구세군회관 사이에 있는 경희궁 금천교 Ⓒ 김창일

금천교

금천(禁川)은 궁의 안과 바깥을 구분하는 하천이며, 금천을 지나는 금천교가 세워져 있다. 경복궁은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 영제교(永濟橋)', 창덕궁은 돈화문을 지나 진선문 앞에 금천교(錦川橋), 창경궁은 홍화문과 명정문 사이 옥천교(玉川橋), 덕수궁은 대한문을 지나 바로 만나는 금천교(禁川橋)가 있다. 하지만 경희궁은 구세군회관과 서울역사박물관 사이에 금천교(禁川橋)가 있다.

경복궁 영제교는 신하들이 도열할 위치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영제교를 중심으로 북쪽에 2품 이상의 관원이 서고, 남쪽에 3품 이하의 관원이 정렬했다. 창덕궁의 금천교는 금할 금(禁)이 아니라 비단 '금(錦)'자를 쓴다. 창덕궁의 금천교는 현존하는 궁궐 금천교(1411년 축조) 중 가장 오래된 다리다.
창경궁 옥천교의 도깨비 모양의 귀면 ©김창일
창경궁 옥천교의 도깨비 모양의 귀면 ©김창일

창경궁 옥천교는 '구슬과 같은 맑은 물이 흘러간다'라는 의미다. 궁궐에 남아 있는 다리 중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금천교 중 창경궁의 옥천교는 유일하게 물이 흐르는 금천이다. 흐른다기보다는 조금 젖어 있는데, 이 물은 춘당지에서 흘러 청계천으로 흘렀다.

창경궁에는 도깨비 얼굴을 한 귀면, 창덕궁은 해치와 현무, 경복궁에는 천록 4마리가 금천을 지키고 있다. 덕수궁과 경희궁은 금천교가 있지만, 그 규모가 다른 궁과 견주기 어려울 정도다.
5대 궁 중 경복궁 근정전의 '일월오악도'가 가장 크다. ©김창일
5대 궁 중 경복궁 근정전의 '일월오악도'가 가장 크다. ©김창일

5대 궁의 정전

5대 궁궐의 정전 용상 뒤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라는 병풍이 있다. 일월도(日月圖), 오악도(五嶽圖), 곤륜도(崑崙圖) 등으로도 불린다. 일월오악도의 해와 달, 소나무, 물, 하늘 땅, 다섯 봉우리의 산 등은 영구한 생명력과 자손만대 번창하라는 국가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크고 화려하게 표현했다. 5대 궁의 일월오악도 중, 경복궁 근정전의 일월오악도가 가장 크다.
창덕궁 인정전은 일제강점기 때 연회장소로 사용되며 원래 모습을 잃었다. ©김창일
창덕궁 인정전은 일제강점기 때 연회장소로 사용되며 원래 모습을 잃었다. ©김창일

창덕궁 인정전에는 샹들리에와 커튼이 있다. 다른 정전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일제강점기 시, 일제는 인정전을 연회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변형을 가한 것이다. 일월오악도는 단상 위에 올라가 있고, 바닥도 경복궁 근정전, 창경궁 명정전, 덕수궁 중화전은 전돌이 깔렸는데, 인정전은 그렇지 않다. 다른 궁의 정전을 보고, 창덕궁 인정전을 보면 이질감을 감출 수 없다.
가장 오래된 정전인 창경궁 명정전 ©김창일
가장 오래된 정전인 창경궁 명정전 ©김창일

창경궁 명정전은 1484년(성종 15)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 8)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조선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명정전을 보면, 세월을 그대로 품고 있는 느낌이 든다. 또한 5대 궁의 정전 가운데 명정전만 유일하게 동향을 하고 있다.
현재의 경희궁 숭정전 ©김창일
현재의 경희궁 숭정전 ©김창일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희궁 숭정전 ©김창일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희궁 숭정전 ©김창일

5대 궁 중 경희궁의 역사가 가장 가슴 아프다. 경희궁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에서 관리한다. 경희궁 안내도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에서 하고 있다.

창경궁, 창덕궁을 동궐(東闕), 경희궁을 서궐(西闕)이라고 불렸다. 숭정전은 경종, 정조, 헌종이 즉위식을 거행한 정전이지만, 일제강점기에 훼손되기 시작했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전각들이 파괴됐고, 1926년 일본사찰에 숭정전을 팔았다. 현재는 동국대학교에서 정각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① 경복궁 근정전의 칠조룡, ② 덕수궁 중화전의 오조룡, ③과 ④는 창경궁 명정전과 창덕궁 인정전의 봉황 ©김창일
① 경복궁 근정전의 칠조룡, ② 덕수궁 중화전의 오조룡, ③과 ④는 창경궁 명정전과 창덕궁 인정전의 봉황 ©김창일

정전 천정에는 용과 봉황이 있다. 보통 용의 발톱이 5개면 왕을 상징한다. 덕수궁 중화전에는 발톱이 5개인 오조룡이 있다. 7개는 황제를 칭하는데, 경복궁 근정전과 경희궁 숭정전에는 발톱이 7개인 칠조룡이 있다. 창경궁 명정전과 창덕궁 인정전에는 용이 아닌 봉황이 있다.
덕수궁 석조전과 석조전 서관 ©김창일
덕수궁 석조전과 석조전 서관 ©김창일
창경궁 대온실 ©김창일
창경궁 대온실 ©김창일

궁의 현대식 건물

덕수궁 석조전은 1900년부터 10년간 공사 후 1910년에 준공됐다.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만들어졌고,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됐다. 1930년대 일제는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사용했고, 광복 직후에는 미·소 공동위원회와 UN 한국임시위원회로 사용됐다.

석조전 서관은 1938년 6월에 준공하였으며,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으로 사용하고 있다. 창경궁 대온실은 일제가 창경궁 내에 동물원을 만들면서 함께 만든 서양식 온실이다. 창경궁은 본래 이름을 잃고 창경원으로 불렸다. 그러다 1980년대에 들어서 창경궁 복원 계획이 세워졌다.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동물원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했다. 또한, 창경궁 내에 있던 벚꽃들은 여의도 윤중로와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심었다.

궁의 후원

후원(後苑)은 뒤 ‘후’, 동산 ‘원’자를 쓴다. 궁궐 뒤에 있는 정원으로 정의할 수 있다. 지금은 창덕궁 후원이 유일하게 후원이라고 하지만, 경복궁과 경희궁도 후원이 있었다. 경복궁 후원은 청와대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총독 관저가 경복궁 후원으로 옮기면서 후원은 사라지고 말았다. 경희궁은 서궐도를 보고도 후원의 위치를 찾기 힘들 정도로 훼손이 많이 됐다.
경희궁 서암 ©김창일
경희궁 서암 ©김창일

후원은 아니지만, 현재 경희궁 태령전 뒤에 있는 서암을 추천한다. 암천으로 바위 속에 샘이 있고,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과 궁의 모습이 이질적이지 않다.
후원 창의정 앞에서는 왕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농사의 중요성을 알렸다. ©김창일
후원 창의정 앞에서는 왕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농사의 중요성을 알렸다. ©김창일

창덕궁 후원은 1405년(태종 5년) 창덕궁을 건조할 때 조성했으며, 창경궁과 통하도록 했다. 창덕궁 후원 예약은 어려운 편이다. 요즘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데, 지인 중에 외국인이 있다면 입장이 조금 수월하다. 외국인 1인 입장 시 내국인 2인이 입장할 수 있다. 예매는 창덕궁 누리집에서 가능하다. 부용지, 애련지, 존덕정, 옥류천, 연경당의 후원코스는 사시사철 다양한 매력을 안겨준다. 옥류천에는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였고, 창의정(淸漪亭) 앞 논에서는 임금이 풍년을 기원하며 친경례를 행하기도 했다.
종묘의 영녕전의 잡상 ©김창일
종묘의 영녕전의 잡상 ©김창일
경회루의 잡상 ©김창일
경회루의 잡상 ©김창일

전각의 잡상과 향원정

궁궐 귀마루에는 잡상(雜像)을 올려놓았다. 궁궐의 정전, 왕의 침전, 궁궐의 정문, 도성의 성문, 종묘, 성균관, 동묘 등에 잡상이 설치됐다. 궁궐은 나무로 건축되기에 화재에 취약하다. 잡상은 화재를 예방하고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한 용도로 해석된다.

잡상은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이귀박, 이구룡, 마화상, 삼산보살, 천산갑, 나토두 등 서유기와 토신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잡상이 가장 많은 전각은 경회루로 11개이다.
관람 편의로 설치된 취향교(왼쪽) 복원 후, 제 자리를 찾은 취향교(오른쪽) ©김창일
관람 편의로 설치된 취향교(왼쪽) 복원 후, 제 자리를 찾은 취향교(오른쪽) ©김창일

경복궁을 관람하면 향원정을 빼놓을 수 없다. 향원정은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라는 의미고, 향원정을 가는 다리는 취향교로 ‘향기에 취한다’라는 의미다. 예전 취향교는 향원정 남쪽에 있었다. 이는 한국전쟁 때 파괴됐던 다리를 재건한 것인데, 원래는 향원정 북쪽에 취향교가 있었다.
운현궁에서 해설을 듣고 있는 시민들 뒤로 운현궁 양관이 보인다. ©김창일
운현궁에서 해설을 듣고 있는 시민들 뒤로 운현궁 양관이 보인다. ©김창일

운현궁, 석파정 그리고 종묘

인사동에서 북촌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면 운현궁이 보인다. 운현궁고종의 잠저(潛邸)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이다. 궁궐이 아니란 의미다. 보통 왕은 세자로 책봉된 후 왕이 되지만, 왕이 아니었던 자가 왕이 되기도 했다. 왕이 된 후, 궁궐 밖에 살았던 사저를 칭하는 말이다.

현재 운현궁에는 경호인력이 사용했던 수직사, 흥선대원군의 사랑채 노안당, 잔치 등에 사용한 노락당, 안채인 이로당이 남아 있다.

운현궁 뒤에 운현궁 양관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이 소유했고, 소유자가 여러 번 바뀌면서 현재는 덕성여대에서 소유하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 ©김창일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 ©김창일

대원군 하면 떠오르는 곳이 서울에 한 곳 더 있다. 바로 석파정 서울미술관에 있는 석파정이다.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사용했다. 한국전쟁 후 고아원·병원 등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이 소유하고 있다.
종묘 영녕전 ©김창일
종묘 영녕전 ©김창일

종묘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후 및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문화재청에서는 궁궐 통합관람권을 판매하고 있다.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과 종묘가 포함된다. 경희궁은 무료관람이라 제외했고, 조선 왕조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라 종묘를 포함했을 것 같다.

종묘는 타 궁과 다르게 시간제관람과 일반관람으로 이원화돼 있다. 토, 일, 공휴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일반관람이 가능하지만, 다른 요일은 해설사와 함께 입장하는 시간제관람을 해야 한다. 종묘 정전은 2024년 5월까지 보수공사로 관람할 수 없다.

궁궐에 가득한 외국인들을 보면서 우리 문화에 대해 이해를 돕고자 5대 궁궐과 운현궁, 석파정 그리고 종묘에 대해서 살펴봤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궁궐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서울 5대 궁궐 및 운현궁, 석파정, 종묘 안내 참고 자료

시민기자 김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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