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 아이들의 수호천사! 40년 넘게 교통정리하는 작은 거인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23.06.05. 17:30

수정일 2023.06.09. 14:53

조회 3,576

[우리동네 시민영웅] 교통정리하는 강서구 시민자원경찰 이철희 씨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뿌연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지난 19일 오전 8시 강서구 송정역 사거리. 도로 한복판에서 한 남성이 쉴 새 없이 수신호를 하며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

빨간색 교통복 차림의 그는 교통정리 봉사 경력 40여 년의 시민자원경찰 이철희(76) 씨다. 연신 호루라기를 불며 쉴 틈 없이 차량에 수신호를 보내는 그의 동작은 신명나 보였다.
강서구 송정역 사거리에서 시민자원경찰 이철희 씨가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박분
강서구 송정역 사거리에서 시민자원경찰 이철희 씨가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박분

한 무리의 아이들이 친구들과 재잘대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안녕하세요?” “안녕? 우리 친구들,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해요!” 환한 미소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이들과 나누는 아침 인사에도 스스럼이 없다. 아이들은 횡단보도를 지나 길 건너편의 송정초등학교로 향했다.

이철희 씨는 “출근 시간대다 보니 서로 먼저 가려고 무리하게 진입하는 차들이 있다”며 “등굣길 아이들 왕래가 빈번한 아침에 이곳에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침 8시~9시 사이, 출근 시간대 차량 정체 구간이나 초등학교 등굣길 황단보도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그의 역할은 크다. 그의 등굣길 교통정리 봉사는 각별해 송정역 사거리 뿐 아니라 송화초등학교가 위치한 신방화역 사거리와 인근 방화역 사거리를 요일별로 정해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출근 시간대 초등학교 등굣길 황단보도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이철희 씨의 역할은 크다. Ⓒ박분
출근 시간대 초등학교 등굣길 황단보도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이철희 씨의 역할은 크다. Ⓒ박분
이철희 씨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린이들을 환한 미소로 맞고 있다. Ⓒ박분
이철희 씨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린이들을 환한 미소로 맞고 있다. Ⓒ박분

혼잡한 도심 속에서 그가 빨간 윗옷을 입지 않았더라면 쉽게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듯 힘찬 그의 교통 수신호가 떨어지자 밀린 차량으로 정체되었던 길이 뻥 뚫린다. 덩치 큰 화물트럭도 그의 수신호에 멈춰서니 신기할 정도다.

“제 수신호에 따라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차량을 볼 때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제 자신이 떳떳하게 자신감에 차 있지 않다면 차도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아요.” 교통질서를 잘 지켜 준 운전자에게는 거수경례, 혹은 나팔손으로 “좋은 하루 되세요!” “안전운행 하세요!” 하고 정겹게 답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감사의 표시로 그동안 쭉 지켜온 그만의 교통 봉사 철칙이다.
나팔손으로 교통질서를 잘 지켜준 운전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박분
나팔손으로 교통질서를 잘 지켜준 운전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박분
인상적인 까치발과 호쾌한 웃음소리 등, 이철희 씨의 몸동작은 보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박분
인상적인 까치발과 호쾌한 웃음소리 등 이철희 씨의 몸동작은 보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박분

이뿐만이 아니다. 수신호 시 인상적인 까치발과 호쾌한 웃음소리 섞인 인삿말 등 그의 구성진 몸동작은 보는 재미까지 선사해 시민들을 즐겁게 한다.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붙였다 뗐다를 빠르게 반복하면서 눈높이에서 팔을 사선으로 내려뜨리는 동작으로 ‘방향 지시등을 켜 주세요’를 전달하고, 손가락을 가볍게 쥐고 위에서 아래로 반짝이며 내리는 동작으로 ‘좋은 하루 되세요’ 라고 말해 주는 수신호는 정겹기까지 하다.

그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거나 꾸벅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작은 거인, 춤추는 신호등, 빨간 옷의 수호천사, 방화동 마이클 잭슨 등은 모두 그를 가리키는 별칭들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교통봉사로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면서 자연스레 붙여졌다.

항상 착용하는 빨간색 교통복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빨간색 옷을 입게 된 것은 작은 키 때문이다. 도로 위에서 위험할 것 같아 눈에 잘 띄도록 강렬한 색상을 택했다. 수신호를 할 때 으레 까치발을 하게 되는 것도 키가 작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붙게 된 동작이다.

이철희 씨는 40여 년간 헌신적으로 봉사를 이어온 공로로 여러 곳에서 표창장과 감사장을 받았다. 그의 교통복 앞면에는 ‘강서구 시민자원경찰 이철희’라고 박힌 명찰이 부착돼 있고, 뒷면에는 ‘세계 최강 대한민국, 이제는 기초질서 교통질서도 세계최강으로’ 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40여 년 항상 착용하는 빨간색 교통복은 이제 이철희 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박분
40여 년 항상 착용하는 빨간색 교통복은 이제 이철희 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박분
이철희 씨 교통복 앞면에 ‘강서구 시민자원경찰 이철희’라고 박힌 명찰이 부착돼 있다. Ⓒ박분
이철희 씨 교통복 앞면에 ‘강서구 시민자원경찰 이철희’라고 박힌 명찰이 부착돼 있다. Ⓒ박분
교통복 뒷면의 ‘세계 최강 대한민국, 이제는 기초질서 교통질서도 세계최강으로’ 라는 글귀 Ⓒ박분
교통복 뒷면의 ‘세계 최강 대한민국, 이제는 기초질서 교통질서도 세계최강으로’ 라는 글귀 Ⓒ박분

그가 교통정리 봉사를 하게 된 계기는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던 그의 아픈 가족사와 무관치 않다. 꽃다운 시절의 누나를 앗아간 뺑소니 교통사고를 겪은 이후 누구보다도 교통안전에 경각심을 갖게 된 그는 1987년에 강서구에 ‘푸른 신호등’이라는 교통자원봉사대를 결성해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씨는 도로 위에서 처음 교통정리를 하던 때를 떠올린다. “시커멓게 굴러오는 바퀴만 보이더군요. 겁이 나 그만 주저앉아 버렸죠.” 두려움을 떨치고 도로 한복판에 우뚝 설 수 있었던 용기를 불어넣어 준 힘의 원천을 이씨는 ‘가족 사랑’이라고 믿고 있다.
강서어린이동화축제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이철희 씨 Ⓒ박분
강서어린이동화축제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이철희 씨 Ⓒ박분
각종 행사장에서 구민 안전을 위한 그의 교통정리는 이제 지역 명물로 자리잡았다. Ⓒ박분
각종 행사장에서 구민 안전을 위한 그의 교통정리는 이제 지역 명물로 자리잡았다. Ⓒ박분

매일 아침 나서는 출근길 교통정리는 순수 자원봉사 활동이다. 사람들이 공통으로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주변에선 "그렇게 교통정리만 하면 밥은 어떻게 먹고 사냐"고 묻곤 한다. 이씨는 좋은 벌이의 원칙으로 건강과 가정 화목, 사회를 위한 작은 공헌의 즐거움을 꼽는다. 교통정리를 하면서 누릴 수 있게 된 선물이다. “물질적인 것을 얻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길 원했다면 아마 오래 버티질 못했을 겁니다.”

자동차 매연이 걱정돼 마스크만이라도 쓰고 하시길 권하자 “호루라기를 불어야 해서 마스크를 쓸 수가 없다”면서 그는 특유의 웃음소리로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요, 자동차 매연이 기생충에는 특효약이라네요. 하하하.”

언제나 바쁘지만 축제 등 지역행사가 많은 봄가을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가정의 달’인 5월 또한 그랬다. 강서어린이동화축제, 우장산신록축제, 겸재문화예술제 등등 행사장에서 구민 안전을 위한 교통정리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지역 명물로 자리잡았다. 그는 내일도 아이들의 안전한 아침 등굣길을 위해 호루라기를 불며 건강한 모습으로 도심 한복판에 설 것이다.

시민기자 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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