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 경쟁률 뚫고 모인 '멍때리기' 고수들! 1등은 누구?

시민기자 김진흥

발행일 2023.05.26. 11:20

수정일 2023.05.26. 17:43

조회 9,026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 Ⓒ김진흥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 Ⓒ김진흥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어안이 벙벙하네요”

시상식 등 모든 대회 순서가 마무리되자, 수많은 기자들과 카메라들이 한 청년을 향했다. 마치 오늘 수상할 것을 예상한듯 말끔한 턱시도 정장을 차려입었고 손에는 상장과 우승컵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놀라워하면서 상황이 믿기지 않은 듯 우승 트로피를 연신 바라보았다. 

지난 21일 오후 4시, 서울시는 한강 잠수교에서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를 개최했다. 올해로 6번째를 맞이한 이 행사는 바쁜 일상의 연속인 도시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의 불안함을 모두 함께 이겨내고자 하는 일종의 행위예술이자 퍼포먼스 성격의 대회다. ☞ [관련 기사] 멍~ 고수를 찾습니다! 한강 멍때리기 대회 참가자 모집

게임 규칙은 간단하다. 정해진 시간 내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대회 도중 휴대전화를 하거나 졸거나 웃거나 잡담하는 행위를 하면 자동탈락된다. 심사위원들은 15분마다 참가자들의 심박수를 확인해 멍때리지 않을 경우, 경고 및 퇴장 조치한다.

우승자는 ‘예술 점수’와 ‘기술 점수’를 합산하여 가장 높은 이가 차지한다. 예술 점수는 주위 시민들의 투표로, 기술 점수는 15분마다 심박수 체크를 통해 산출한다.
15분마다 참가자들의 심박수를 체크한다. Ⓒ김진흥
15분마다 참가자들의 심박수를 체크한다. Ⓒ김진흥
참가자들의 심박수는 대회 내내 실시간으로 공개되었다. Ⓒ김진흥
참가자들의 심박수는 대회 내내 실시간으로 공개되었다. Ⓒ김진흥

지난 2016년 제1회 우승을 가수 크러쉬가 차지한 이후, 많은 시민들이 멍때리기 대회에 관심을 가졌다. 대회 때마다 개성 넘치는 패션과 멍때리는 모습들 그리고 대회 참가자들의 진심 어린 각오들까지 화제의 연속이었다. 올해도 3,160팀이 신청하며 인기를 실감케 했다. 서울시는 이중 70팀을 선발했다. 
멍 때리고 있는 방송인 강남 씨 Ⓒ김진흥
멍 때리고 있는 방송인 강남 씨 Ⓒ김진흥
119 구조대원도 대회에 참가했다. Ⓒ김진흥
119 구조대원도 대회에 참가했다. Ⓒ김진흥

45대 1 경쟁률을 뚫고 뽑힌 참가자들은 오후 3시쯤부터 하나 둘 잠수교에 모여 들었다. 35m 길이의 잔디밭으로 마련된 대회장에서 참가자들은 각자 대회를 준비하며 긴장을 풀었다. 스트레칭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등 본인만의 방법으로 결전의 시간을 기다렸다. 

대회에 참가한 한 시민은 “아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다. 잘 해보겠다”라며 결연의 의지를 다졌고, 직장에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한 청년은 “회사에서 모니터 보며 멍때리는 스킬을 이번에 제대로 발휘해 보겠다”며 미소 지었다. 

오후 4시, 가벼운 체조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멍때리기 대회가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각자가 편하다고 생각한 자세로 멍을 때렸다. 앉아서 멍때린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누워 있거나 ‘생각하는 사람’ 작품처럼 턱을 괴고 정면을 응시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참가자들이 멍한 표정인 가운데 대회장 한켠에서는 시민들의 투표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참가자들의 대회 참가 이유 또는 각오가 적힌 70여 개의 메모지들 중 시민들이 공감하거나 응원하고픈 곳에 스티커를 붙였다. 스티커는 1인당 3개까지 가능했다. 
참가 사유를 보고 공감하는 곳에 스티커를 붙여 투표하는 시민들 Ⓒ김진흥
참가 사유를 보고 공감하는 곳에 스티커를 붙여 투표하는 시민들 Ⓒ김진흥

대회를 지켜본 시민들은 참가자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20대 시민은 “참가자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재밌는 것 같다. 직장인으로서 공감하는 글에 스티커를 붙였다”고 말했다. 50대 시민은 “멍때리는 걸 쉽게만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와중에 바람까지 부니 다들 힘들 것 같다. 끝까지 힘냈으면 한다”면서 격려했다. 

대회가 시작된 지 1시간이 넘어갈 무렵, 한 심사위원이 한 참가자 뒤에서 레드카드를 위로 번쩍 들었다. 첫 탈락자가 발생했다. 이태원에서 클럽 DJ로 일한다는 김기범 씨는 “아쉽지만 재밌는 경험이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멍때릴 시간이 없었는데 야외에서 힐링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인 유튜버 폴 카버 씨도, 유튜브 ‘채림처럼’을 운영하는 김채림 씨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유일한 캐릭터였던 젤리곰도 중간에 그만뒀다. 

정해진 시간 90분이 지나고 멍 때리기가 종료됐다. 
멍때리는 벨리곰 Ⓒ김진흥
멍때리는 벨리곰 Ⓒ김진흥
심판위원의 레드카드와 함께 첫 번째 탈락자가 나왔다. Ⓒ김진흥
심판위원의 레드카드와 함께 첫 번째 탈락자가 나왔다. Ⓒ김진흥

올해 우승자는 43번 참가자 배우 정성인 씨가 차지했다. 그는 참가자들 중 유일하게 빨간 카페트와 턱시도 정장을 준비해 배우라는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표출했다. 참가 사유에는 스스로 무명배우라고 밝히며 무명배우로서 겪는 고민들을 간략히 적었다. 

대회를 위해 비싼 값을 들여 턱시도를 맞췄다는 그는 “살면서 1등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너무 기쁘다”면서 “처음엔 긴장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맘 편히 멍때린 것 같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고 소감을 밝혔다.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 우승자 정성인 씨 Ⓒ김진흥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 우승자 정성인 씨 Ⓒ김진흥
정성인 씨의 대회 참가사유 Ⓒ김진흥
정성인 씨의 대회 참가사유 Ⓒ김진흥
홀로 준비한 빨간 카페트 위에서 멍 때리는 정성인 씨 Ⓒ김진흥
홀로 준비한 빨간 카페트 위에서 멍 때리는 정성인 씨 Ⓒ김진흥

한편, 서울시는 멍때리기 대회장 옆에서 '일상에서 멍때리는 체험 코너'를 마련했다. 침대에 누워서 멍때리다가 100초 때 벨을 누르는 ‘침대멍’, 책상에 앉아 글귀를 필사하는 ‘필사멍’, 세탁통에 돌아가는 자음을 맞히는 ‘세탁멍’ 등 시민들이 일상의 멍과 관련된 체험들을 선보였다. 
'침대멍'을 체험하는 시민들 Ⓒ김진흥
'침대멍'을 체험하는 시민들 Ⓒ김진흥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자음을 맞히는 '세탁멍' Ⓒ김진흥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자음을 맞히는 '세탁멍' Ⓒ김진흥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

시민기자 김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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