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숲의 '나무의사'가 들려주는 아주 특별한 나무 이야기

시민기자 강사랑

발행일 2023.04.10. 11:00

수정일 2023.04.10. 14:26

조회 2,846

홍릉숲은 국립산림과학원이 관리한다. Ⓒ강사랑
홍릉숲은 국립산림과학원이 관리한다. Ⓒ강사랑

계절이 돌고 돌아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초록의 생명들을 보노라면 그 꿋꿋한 생명력에 마음의 위로를 얻게 된다. 특히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나무는 사람에게 때로는 느낌표를, 때로는 물음표를 던진다. 사람의 인생처럼 나무 또한 우여곡절을 겪을 터. 조금은 특별한 나무들이 살아가는 홍릉숲을 찾았다.

서울에서 벗어날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홍릉숲은 축복과 같다. 근방에 번화가인 청량리역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수풀이 우거진 도심 속 숲이다.

홍릉숲의 정확한 이름은 ‘홍릉 산림과학 연구시험림’으로 국립산림과학원이 관리하고 있다. 홍릉숲이라고 익히 알려진 이유는 이곳에 명성황후의 묘소인 홍릉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릉숲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으로, 자생수목을 무려 2,035종, 총 20만 본 이상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 수목원이다.
정문을 중심으로 천년의숲길과 문배나무길이 펼쳐진다. Ⓒ강사랑
정문을 중심으로 ‘천년의숲길’과 ‘문배나무길’이 펼쳐진다. Ⓒ강사랑

정문을 통과하면 대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천년의숲길’과 ‘문배나무길’이 펼쳐진다. 침엽수가 주종을 이루는 천년의숲길을 한 바퀴 돌고, 맞은편 문배나무길에서 주인공인 문배나무를 만났다. 이 문배나무는 ‘기준표준목’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땅에서 최초로 발견되어 이름 붙여진 나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무의 모습이 좀 이상하다. 나무 표면에 시멘트 같은 이물질이 덮여 있다. 이게 무엇일까. 혹시 말로만 듣던 나무 수술의 흔적이 아닐까?
기준표준목인 문배나무 Ⓒ강사랑
기준표준목인 문배나무 Ⓒ강사랑

궁금증을 뒤로 하고 제3수목원을 빠져나와 홍릉숲 내 국립나무병원 앞에 도착했다. 국립나무병원은 우리나라의 수목 진료 기술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곳이다. 민간 나무병원에서 처방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관리하여 수목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병원 앞에서 만난 '나무의사' 최광식 박사와 함께 문배나무 앞에 다시 섰다.

최광식 박사는 “전 세계의 모든 문배나무는 이 나무의 DNA가 표준이예요.” 라고 운을 떼었다. 문배나무는 현 위치에서 일본 식물학자인 나카이 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된 나무이다. 돌배나무와 닮기는 했지만 분명 다른 나무였기 때문에 새로운 종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이후 1966년 이창복 선생에 의해 ‘문배나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기준표준목으로 자격을 얻었다고 한다.
외과 수술을 받은 문배나무 Ⓒ강사랑
외과 수술을 받은 문배나무 Ⓒ강사랑

최광식 박사는 문배나무 목질부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나무가 백 살이 훌쩍 넘었잖아요. 늙은 나무이다 보니 밑에 있는 목질부들이 썩은 거죠. 이걸 그대로 방치하면 공간이 생기는데 바람이 많이 불거나 눈이 많이 내리면 부러질 수가 있어요.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외과 수술을 한 겁니다.”

설명에 따르면, 나무도 사람처럼 필요할 경우 외과 수술을 한다. 이 문배나무처럼 부패가 많이 진전되어 공동(빈 공간)이 발생하면 우레탄이나 실리콘, 시멘트 등으로 충전을 하는데, 여기에 성형 목적이 더해진다. 외관상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도록 마지막에 인공 수피(나무껍질)와 산화 방지 처리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술한 나무는 몇 년에 걸쳐 꾸준히 관찰하여 필요할 경우 재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과 마찬가지죠.”
문배나무 앞에서 설명하는 최광식 박사 Ⓒ강사랑
문배나무 앞에서 설명하는 최광식 박사 Ⓒ강사랑

수술 흔적을 간직한 문배나무를 뒤로 하고 걷기 시작한 지 3분쯤 지났을까. 최광식 박사가 한 소나무를 가리켰다. 나무의 가지가 대부분 부러져 사라진 상태로 위태롭게 서 있는 소나무였다. “이 소나무 수령이 사오십 년 되었을 겁니다. 2019년 11월 9일에 눈이 많이 내렸는데, 그때 가지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다 부러졌어요.” 

눈은 포함된 수분에 따라서 습한 눈(濕雪)과 건조한 눈(乾雪)으로 나뉘는데, 나무에 피해를 주는 눈은 습한 눈이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의 하중에 의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휘어지거나, 찢어지는 것이다. 소나무는 3분의 1 이상이 부러졌지만 놀랍게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나무의 놀라운 생명력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눈에 의한 피해를 입은 소나무 Ⓒ강사랑
눈에 의한 피해를 입은 소나무 Ⓒ강사랑

봄이 완연한 홍릉숲을 거닐며 꽃들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하얀 개나리’라고 불리는 천연기념물 ‘미선나무’와 꽃의 모양이 신라 왕족의 귀걸이를 닮은 ‘히어리’ 앞에서 꽃들과 눈을 맞춰보았다. 둘 다 세계적으로 1속 1종밖에 없는 희귀식물이다. 최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한때 멸종 위기를 겪었지만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대량으로 증식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그 위기를 벗어났다고 한다.

미선나무가 '미선'이란 고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열매가 특이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옛날 궁중에서 사용되던 둥그런 부채를 미선이라고 하는데, 미선나무 열매가 꼭 그것과 닮아서 같은 이름으로 불린 것이다.

히어리는 이름의 유래가 여러 가지이다. 그중에는 '꽃잎이 얇아 빛을 투과하거나, 꽃잎이 빛이 반사되면서 하얗게 보인다'라고 해서 ‘히어리’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봄의 전령 미선나무와 히어리는 우리나라 특산 식물로서 그 효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가진 미선나무 Ⓒ강사랑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가진 ‘미선나무’ Ⓒ강사랑
봄의 전령 히어리 Ⓒ강사랑
봄의 전령 히어리 Ⓒ강사랑

천년의숲길과 문배나무길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국립나무병원 앞에 도착했다. 하늘을 향해 쭉쭉 솟은 어린 금강송들을 살펴보고, 다시 맞은편에 자리한 장엄한 소나무 한 그루 앞에 섰다. 홍릉숲을 대표하는 장수 나무 반송이다. 반송은 줄기 밑 부분에서 많은 줄기가 갈라져 우산 모양으로 자란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가지를 살펴보니 푸르름 속에서도 오랜 시간의 흔적이 느껴졌다.

최 박사는 반송 앞에서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반송은 1980년대에 솔잎혹파리 때문에 수난을 겪었어요." 소나무는 솔잎혹파리나 재선충의 피해를 많이 입는 나무이다. 솔잎혹파리가 번지면 애벌레는 솔잎의 밑동을 갉아 먹고, 소나무 잎이 누렇게 뜨면서 결국은 고사하게 된다.

"그 당시에 약도 많이 치고 나무에 주사도 놓고 매년 관리를 했어요. 솔잎혹파리 방제에 힘쓴 결과 이제는 많이 안정화가 되었고요. 최근에는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반송의 아픈 사연을 듣노라니 반송이 자랑하는 푸르름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여러 번의 위기와 그때마다 발 벗고 나선 사람들의 손길이 지금의 반송을 만든 것은 아닐까.
홍릉숲을 대표하는 장수 나무 반송 Ⓒ강사랑
홍릉숲을 대표하는 장수 나무 반송 Ⓒ강사랑
솔잎혹파리와 재선충의 위협을 이겨 나가는 반송의 푸르름이 청년의 기상 못지 않다. Ⓒ강사랑
솔잎혹파리와 재선충의 위협을 이겨 나가는 반송의 푸르름이 청년의 기상 못지 않다. Ⓒ강사랑

최광식 박사와의 홍릉숲 산책은 노각나무 앞에서 마무리되었다. 노각이란 이름은 나무껍질이 녹각(鹿角), 즉 사슴뿔을 닮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름다운 회갈색 얼룩무늬 수피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나무는 남부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예요. 7미터에서 15미터로 우람하게 자라는 큰키나무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여기에 심은 지 벌써 삼십 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작고 초라해요. 적지에 심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여기는 시험림이고 연구 목적 때문에 심었지만 일반적으로 나무를 심기 전에는 항상 토양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무에게 알맞은 토양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최광식 박사 Ⓒ강사랑
나무에게 알맞은 토양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최광식 박사 Ⓒ강사랑

식목일이 포함된 4월은 특히 나무 심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기이다. 최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종에 따른 나무들의 특성을 이해하여 나무를 심을 땅에 맞는 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토양이 습한지 건조한지, 산성인지 염기성인지, 볕이 잘 드는지 그늘인지 등 다양한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여 그에 맞는 나무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일례로 도심의 가로수는 복토(覆土)되거나 심식(深植)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공간도 좁아서 나무에 피해가 발생한다. 적지적수(適地適樹), 즉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심어야 나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어린 금강송 나무들 Ⓒ강사랑
어린 금강송 나무들 Ⓒ강사랑

내가 애써 심은 나무가 시름시름 앓는다면, 나무의 건강을 위해 나무 병원과 나무 의사를 찾는 것이 현명하다. 2018년 산림보호법 개정에 따라 개인의 나무를 제외한 모든 나무의 진단과 치료는 나무 병원과 나무 의사, 수목 치료 기술자를 통해야 한다.

나무 의사는 국가 공인 자격을 취득한 전문가로서 작물이나 초화류가 아닌 나무 치료만을 목적으로 한다. 나무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나무 생리, 병해, 곤충, 토양, 농약, 생태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섭렵해야 한다. 단순히 나무를 심고 가지를 자르는 사람을 나무 의사라고 하지 않는다.
홍릉숲 내 국립나무병원 외관 Ⓒ강사랑
홍릉숲 내 국립나무병원 외관 Ⓒ강사랑

“숲의 나무뿐 아니라 아파트, 공원, 학교 등 우리 생활권에 있는 모든 수목이 진료 대상입니다. 그러니 내 주변의 나무가 앓고 있는 것 같다면 주저하지 말고 나무 병원에 연락하세요.” 최 박사는 나무를 ‘우리 삶의 동반자’라고 말하며 ‘나무가 잘 살아가는 곳은 사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홍릉숲과 나무들을 뒤로 하고 다시 번잡한 도심 속을 걷는다. 문득 대로변에 줄을 이어 서 있는 가로수들이 눈에 들어온다. 1년 365일 매연을 뒤집어쓰며 한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고도 대견하다. 나무와 사람들의 공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앞으로도 사람이 사는 곳에 나무들이 있고, 나무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있기를 바란다. 나무도 사람들도 신록의 계절을 맞이하여 더욱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홍릉숲(홍릉수목원)

○ 위치: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57 국립산림과학원
○ 교통: 지하철 6호선 고대역 3번 출구에서 도보 7분, 1호선 청량리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5분
○ 숲해설 프로그램: 화~금 10:30, 13:30, 15:30 / 주말 10:30, 14:00 (60~90분 진행) ☞사전 예약
○ 자유관람: 주말 09:00~18:00 (3~10월) / 09:00~17:00 (11~2월)
○ 휴무일: 매주 월요일, 5월 1일 및 모든 법정공휴일
누리집
○ 문의: 02-961-2777, 02-961-2522

시민기자 강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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