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기록하세요~ '기록활동가' 되고 싶다면?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3.04.04. 13:08

수정일 2023.04.05. 09:41

조회 3,150

서울기록원은 시민과 함께 기록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건립된 서울의 기록관리 전문 기관이다. ©윤혜숙
서울기록원은 시민과 함께 기록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건립된 기록관리 전문 기관이다. ©윤혜숙

지난 2월 24일 오후에 아이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엄마 이거 해봐. 엄마가 지금 하는 일과 잘 맞을 것 같아”라는 내용이었다. 아이가 보낸 문자의 링크를 통해 들어가 보니 서울기록원에서 3월 21일부터 5일간 ‘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진행한다고 했다.

5일 동안 오후 반나절을 꼬박 수강해야 해서 처음엔 좀 망설여졌다. 하지만 교육 과정을 살펴보니 전문가의 강의에 이어 기록활동가 사례, 구술채록 실습 등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교육이 꽤 내실 있어 보였다. 선착순 30명 모집이라고 해서 2월 27일 오전 10시에 맞춰서 신청서를 제출했다. 불과 하루 새 선착순 접수가 마감되었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에 서울기록원에서 참여자로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서둘러 신청하길 잘했다면서 교육이 시작되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기다렸다.
서울기록원에서 3월 21일부터 5일간 '기록활동가 양성 과정' 교육을 진행했다. ©윤혜숙
서울기록원에서 3월 21일부터 5일간 ‘기록활동가 양성 과정’ 교육을 진행했다. ©윤혜숙

드디어 3월 21일 오후 1시 30분 교육에 맞춰 서울기록원으로 향했다. 서울기록원은 서울혁신파크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 입구에서부터 교육장으로 가는 동선을 따라서 벽면에 ‘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안내하고 있었다. 서울시민기자로 활동한 지 여러 해가 지나가건만, 아직 서울기록원의 존재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교육이 서울기록원을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첫째 날은 서울기록원과 아카이브, 주요 시설 소개, 기록전문가의 역할과 사명을 주제로 강의가 이루어졌다.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17개 광역시도는 지방자치단체의 기록자치 실현 및 지방기록물의 체계적 보존을 위해 지방기록물 관리기관을 의무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2019년 5월에 지방기록물관리기관으로 서울기록원이 개원하게 되었다.

서울기록원은 시민과 함께 기록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건립된 서울의 기록 관리 전문 기관이다. 서울기록원은 보존장비, 전문처리실, 보조서고 등이 갖춰져 있다. 2022년 12월 기준으로 서울시 중요 기록 31만 7,000건, 자치구 중요 기록 3만 6,000건을 합해서 총 35만 3,203건을 소장하고 있다. 그 밖에도 기록하고 기억하는 서울을 만들어 가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기록물로 보존할 오디오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윤혜숙
기록물로 보존할 오디오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윤혜숙

서울기록원 직원들의 안내로 서울기록원에서 자료를 보존하는 방법을 실제 관찰할 수 있었다. 건물 4층에는 시청각 보존복원실, 종이 기록 보존복원실, 박물 보존복원실이 있었다. 담당 직원이 근무하면서 교육생들을 반가이 맞아주고 각 보존복원실에서 하는 일을 알려주었다. 지금은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오디오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등이 있었다. 불과 20년 사이에 과거의 유물이 된 듯한 테이프이다. 테이프에 저장된 데이터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서울기록원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교육생들이 보존복원실을 살펴보고 있다. ©윤혜숙
서울기록원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교육생들이 보존복원실을 살펴보고 있다. ©윤혜숙

둘째 날은 현장 연구의 의미와 사례 강의에 이어,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사례로 주공아파트 키즈의 기록 모으기 발표가 있었다. 기록은 ‘적는다’와 ‘가치가 있어서 영구 보존한다’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알 수 있듯 기록에 충실한 나라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기록 관리의 전통이 단절되다시피 했다. 이러한 때 기록전문가의 역할과 사명은 더욱 중요하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집단과 평범한 시민에 대한 가치 있는 기록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록전문가 못지않게 ‘기록활동가 양성과정’ 교육에 참여한 교육생들과 같은 기록활동가도 필요할 것 같다.
서울기록원 2층 전시실에 둔촌주공아파트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다. ©윤혜숙
서울기록원 2층 전시실에 둔촌주공아파트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다. ©윤혜숙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쓴 이인규 작가는 둔촌주공아파트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래서 유독 자신의 고향인 둔촌주공아파트에 애착이 컸다. 그곳을 떠난 후에도 다시 찾아가서 기록하기 시작했다. 지금 서울기록원 2층에는 둔촌주공아파트 기록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인규 작가야말로 기록활동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그는 서울시에서 재건축으로 사라져간 대단지 둔촌주공아파트의 기억을 담아 기록물로 남겼다.
기록전문가가 구술채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이 나왔다. ©윤혜숙
기록전문가가 구술채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이 나왔다. ©윤혜숙

셋째 날은 구술채록사업 운영 관리의 실제 강의에 이어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사례로 간판수집기록가의 발표가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기록할 수 없다. 기록하려면 현장에 가야 한다. 현장에 있는 연구대상자의 삶을 들어보고 기록해야 한다. 이때 심층 면담과 참여 관찰 등을 활용한 질적 연구 방법이 있다. 물론 연구대상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100% 신뢰할 수 없고, 연구자도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연구자와 연구대상자 간에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번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서울기록원 2층 전시실에는 오래된 간판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윤혜숙
서울기록원 2층 전시실에는 오래된 간판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윤혜숙

양두환 간판사진기록가는 한참 힘들었던 시기에 우연히 골목길에서 오래된 간판을 봤고, 거기서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오래된 간판을 찾아서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지금 서울기록원 2층에는 그가 찍은 사진을 기록물로 전시하고 있다. 양두환 간판사진기록가는 전문적인 기록활동가가 아니지만, 취미 활동으로 오래된 간판을 사진으로 찍고 기록했던 작업으로 간판사진기록가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아마도 ‘기록활동가 양성과정’ 교육에 참여한 교육생들 모두 그의 말에 고무된 것 같았다.
교육생들이 구술채록하고자 하는 관심사를 적어두고 있다. ©윤혜숙
교육생들이 구술채록하고자 하는 관심사를 적어두고 있다. ©윤혜숙

넷째 날은 구술채록 이론과 실제 강의를 듣고 구술채록을 실습해 보는 시간이었다. 구술채록은 말하는 내용을 적거나 녹음하는 행위를 뜻한다. 구술채록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말로 회상하여 연구의 주된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면담자가 구술자의 말을 제대로 듣고 올바르게 기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서울기록원에서 조를 편성하기 위해 장소의 기억, 사건의 기억, 동시대 사람들의 순간, 문화 예술 그리고 사람 4개의 범주로 나눴다.
디지털 전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주제로 구술채록 기획안과 실습지를 작성한 결과물 ©윤혜숙
디지털 전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주제로 구술채록 기획안과 실습지를 작성한 결과물 ©윤혜숙

구술채록 실습 주제를 ‘디지털 전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정했다. 하지만 주말에 여러 사람을 섭외해서 인터뷰까지 하는 게 쉽지 않아서 한 가족으로 한정했고, 디지털 기기도 스마트폰으로 일원화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쌍둥이 형제를 둔 50대 중년 부부의 가족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 디지털 전환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디지털 기기에 서툰 디지털 소외계층도 생겨나고 있다. 각 가정에서 스마트폰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지 들여다봤다. 10대 청소년은 주로 놀이와 학습을 위해 스마트폰을 보고, 50대 중년은 소통과 정보를 구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스마트폰 중독의 우려는 없었다. 스마트폰이 없다면 처음엔 불편하겠지만 책이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해결해 나간다고 대답했다.
조별로 구술채록을 실습한 결과를 정리해서 발표하고 있다. ©윤혜숙
조별로 구술채록을 실습한 결과를 정리해서 발표하고 있다. ©윤혜숙

마지막 날은 주말 동안 기획안에 맞춰 구술채록한 실습 내용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조별로 각자의 구술채록한 실습 내용을 공유한 뒤 결과를 정리해서 교육생들 앞에서 발표했다. 주말이라는 제한된 시간에도 각자 고심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어서 수료식이 있었다. 고경희 서울기록원장이 교육생 대표에게 수료증을 수여했다
교육생들이 구술채록 실습한 결과물을 공유하고 있다. ©윤혜숙
교육생들이 구술채록 실습한 결과물을 공유하고 있다. ©윤혜숙

3월 21일부터 28일까지 5일에 걸쳐 오후 1시 30분부터 4시간 이상 진행했던 ‘기록활동가 양성과정’ 교육이 끝났다. 교육생들 모두 마음은 후련하면서도 후속 심화과정 교육에 대한 요청이 이어졌다. 교육생들 대다수가 자신이 하는 일과 기록 활동이 연계될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고경희 서울기록원장이 교육생에게 수료증을 전하고 있다. ©윤혜숙
고경희 서울기록원장이 교육생에게 수료증을 전하고 있다. ©윤혜숙

함께 수강했던 이진주 씨는 “SNS에 교육 과정을 알리는 안내를 보고 지원했어요"라며 "공공 분야에서의 기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궁금했고 또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저는 앞으로 장애인과 같은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교육 과정에서 배운 구술채록을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해봐야겠다. 취재하면서 인터뷰하는 것과는 다른 구술채록만의 특징을 살려서 기록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 될 것 같다.

서울기록원

○ 위치 : 서울시 은평구 통일로 62길 7
○ 교통 : 지하철 3호선 불광역 2번 출구에서 도보 8분
○ 운영시간 : 10:00~17:00
○ 휴관 : 월요일
○ 입장료 : 무료
누리집 
○ 문의 : 02-350-5601

시민기자 윤혜숙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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