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광화문 월대 훼손해 만든 '전차 철로' 공개 현장
발행일 2023.03.20. 15:08
서울시는 문화재청과 함께 광화문광장 재조성사업부지 내 유적 정밀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광화문 월대 복원 및 삼군부(예조)와 의정부 영역인 주변부 정비를 병행하고 있다.
이번 시민 공개 행사는 사전에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누리집에서 ‘광화문 월대 및 주변부 고고학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참여 신청을 받았으며, 접수 시작 5분 만에 매진되는 등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 [관련 기사] 광화문 앞 전차철로 발굴 현장 공개…8일부터 선착순 접수
먼저 신희권 교수는 '광화문광장'이라는 이름에 담긴 ‘광장’의 개념을 설명했다. 본래 광장은 서양에서 도입된 개념으로 동양에서는 광장 대신 ‘길’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조선시대 때 광화문광장은 ‘길’이라는 뜻이 담긴 ‘육조거리’로 불렸다. 여기서 육조란 오늘날 행정기관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를 뜻하며, 행정부 최고 기관인 ‘의정부’와 군을 관리하던 ‘삼군부’가 존재했다.
당시 육조거리는 너비 50m 내외, 길이는 500m 내외로 10:1의 비율을 보였다. 현재 넓은 사람길로 변한 광화문광장에 대해 신희권 교수는 “과거 광장을 두고 양옆에 찻길이 있어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오명을 쓴 적이 있다”며 “현재는 과거 육조거리처럼 사람길로 변했다”고 전했다.
신희권 교수는 유교 사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국가는 중국의 ‘주나라’라며 당시 조선은 주나라 예법인 ‘주례’에 의거해 두 가지 원칙으로 한양도성을 설계했다고 밝혔다. 첫째, 임금의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놓았다. 이를 '좌묘우사(左廟右社)'라고 한다.
둘째, 앞에 관청을 두고 뒤에 시장을 두었다. 따라서 광화문을 기점으로 경복궁 앞에 육조와 삼군부, 의정부, 한성부 등 관청이 있는 셈이다. 다만 궁궐 뒤에 시장을 두지 않았고, 현재 종로 일대에 ‘시전’이라는 시장을 두었다. 그 이유에 대해 신희권 교수는 “한양 설계의 기준인 북악산이 경복궁 뒤에 있다”며 “산에 시장을 놓을 수 없으니 종로 일대에 시전을 형성하게 한 것”이라고 전했다.
전차 노선이 부설되면서 광화문 앞 돌로 만든 평평한 기단 위에 난간이 양쪽에 놓인 월대가 훼손됐고, 폭 29.7m의 월대 중앙부로 왕이 다니던 폭 7m의 어도는 허리가 잘려 나간 모습이 됐다.
월대는 궁궐의 정전(正殿), 묘단, 향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로, 19세기 흥선대원군에 의한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 탄생했다. 고종 때 중건된 경복궁에는 정문인 광화문 전면에 월대를 배치했고, 월대를 중심으로 서측에 삼군부, 동측에 의정부를 두었다.
이처럼 일제는 문무의 최고 통치 기구를 비롯해 조선 왕실의 모습을 상당수 훼손했다.
“조금 불편하지만, 자랑스러운 우리의 모습을 후손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한 신희권 교수의 말처럼, 이번 정밀발굴조사로 인해 자랑스러운 한양도성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복원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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