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일자리 통해 인생 2막 시작한 '시각장애인 운전원'의 하루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23.02.20. 17:20

수정일 2023.11.08. 14:30

조회 3,408

2023년도 보람일자리 운전원(보람기사)으로 멋진 인생 2막을 시작한 김보람(가명)씨 Ⓒ최용수
2023년도 보람일자리 운전원(보람기사)으로 멋진 인생 2막을 시작한 김보람(가명)씨 Ⓒ최용수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공들여 읽는다. 그들은 단 한 번밖에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독일 문학사에서 G.E.레싱이나 괴테에 비견되는 소설가 '장 파울(Jean Paul)'이 남긴 명언이다.

인생 전반전을 성공리에 마치고 2년 전 퇴직한 김보람(가명, 62세)씨. 그 동안 부족했던 잠도 원 없이 자 보고 여행도 하며 퇴직 후의 꿀맛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럭저럭 1년이 지나가니 넉넉한 시간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단 한 번밖에 읽지 못하는 인생이란 책, 나는 그 책장을 지금 아무렇게나 넘기고 있는 건 아닐까?  

서서히 고민이 깊어질 무렵, ‘서울시50+재단’을 알게 되었다. 서울시50+재단의 ‘서울시50플러스포털’에는 상담, 생애설계, 전환기 교육, 전직지원, 일자리 안내 등 재단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이중 지난 2월 초, ‘보람일자리 운전원(서울시각장애인 생활이동지원센터 운전원, 이하 보람기사) 모집 공고’를 보았다. ☞ 2023년 『시각장애인 생활이동지원센터 운전원』 모집

초등학교 시절 시각장애인 엄마와 유난히 정겹게 지내던 친구를 떠올리며 새로운 인생 후반기의 방향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냈다.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여 신청서를 제출했고, 서류 심사 및 면접 등 채용 절차를 거쳐 최종 합격을 통보 받았다.

내심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합격’이란 통보는 언제나 기쁨이다. 시각장애인 알기 체험, 고객 응대, 친절 교육, 차량 관리, 교통 법규 등 운전원으로서 필요한 교육을 받고 15일 현장 근무에 투입되었다.
서울시50플러스포털에는  중장년을 위한 다양한 일자리와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서울시50플러스포털
서울시50플러스포털엔 중장년을 위한 다양한 일자리와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50플러스포털

정규직과는 달리 보람기사는 일일 4시간 근무이다. 아침 근무조(06:00~10:00)와 저녁 근무조(18:00~22:00)로 나누어지는데 김보람 씨는 아침 근무로 배정되었다.

첫 근무일, 근무 시작 40분 전에 차고지에 도착했다. 정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배차 받은 차량 내부의 청소와 소독을 했다. 엔데믹에 접어든 코로나19 상황이지만 여전히 소독과 청소는 중요한 일이다.
이른 새벽 운행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인 보람기사 차량들(개화 차고지) Ⓒ최용수
이른 새벽 운행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인 보람기사 차량들(개화 차고지) Ⓒ최용수

운행 준비를 마친 후 대기 중 드디어 첫 콜이 떴다. 출발지는 마곡동, 목적지는  OO병원이다. 먼저 고객에게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김보람 기사입니다. 지금 댁으로 출발합니다. 대략 15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도착하면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차고지를 벗어나 고객의 집으로 가는 길, 첫 콜이라 설레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새벽 공기는 유난히 상쾌했다.
보람기사들은 근무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 과정을 거친 후 현장에 투입된다. Ⓒ최용수
보람기사들은 근무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 과정을 거친 후 현장에 투입된다. Ⓒ최용수

시각장애인 차량 운전원은 일반 택시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만을 지원하는 일반 택시와 달리 고객 중심의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한다.

출발지 현관에서 고객을 만난다. 차량을 요구한 고객임을 확인하고 한 팔을 내어준다. 이동 서비스가 제공되는 순간이다. 조심스럽게 차량 문을 열고 승차를 돕는다. 안전벨트와 마스크 착용을 확인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이른 시간이라 교통 흐름이 좋다.

올림픽도로에 올라서니 멀리 동쪽 하늘이 붉어진다. 퇴직 후 늦잠이 버릇이 되었는데 ‘이렇게 이른 시간, 내가 지금 일을 하고 있다니!’ 변화된 스스로에 놀라고 바쁘게 오가는 차량을 보고 또 놀란다. ‘오늘 하루, 내 인생 책장을 공 들여 읽고 있는 것 맞지!’

어느덧 고객의 목적지인 OO병원에 도착했다.
보람기사 아침조가 근무하는 시간은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다(여의도 인근 도로). Ⓒ최용수
보람기사 아침조가 근무하는 시간은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다(여의도 인근 도로). Ⓒ최용수

“고객님  OO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문을 열어 드릴 때까지 앉아 계세요. 주변에 오가는 차량이 많아 위험합니다.”
안전하게 주차를 하고 뒷좌석 차 문을 열었다. 비시각장애인보다 하차에도 시간이 더 걸린다. 하차 후 차 안에 두고 내린 물건은 없는지 살폈다. 그리고는 한 팔을 내어 준다. 지금부터 나는 다시 시각장애인의 흰 지팡이(white cane)가 된다. 

“엘리베이터 앞인데 몇 층 안내할까요?” “9층이요, 여기서는 제가 갈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기사님!”  “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첫 콜은 이렇게 끝이 났다. 휴~하며 한숨을 내뱉는데 보람이 느껴졌다. 

근무 종료 시간인 10시까지 이런 콜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마지막 콜 운행을 마치고 차고지로 복귀했다. 가스 충전을 하고 실내외 청소를 깨끗이 했다. 다음 근무자를 위한 작은 배려이다. 

첫 날 근무를 마친 동료 보람기사들이 믹스커피 한 잔씩을 들고는 첫 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오늘 커피 맛은 유난히 맛있고 달달하네요!” “첫날 근무를 잘 끝내서 그런 것 아닐까요? 하하 ” 
시각장애인을 태우는 차량은 운행 전후 청소와 소독이 필수이다. Ⓒ최용수
시각장애인을 태우는 차량은 운행 전후 청소와 소독이 필수이다. Ⓒ최용수

보람기사는 서울시각장애인 생활이동지원센터에서 관리 운영한다. 물론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보람일자리 중 하나이다. 서울시각장애인 생활이동지원센터는 '장애인복지법 제58조 제1항 제2호 및 동법시행규칙 제41조'에 의거, 일상생활에서 이동 불편을 겪는 시각장애인의 생활권과 이동권 향상에 기여하고자 1984년 12월 20일 설립되었고, 2020년 현재의 동작구 상도동(현 위치)으로 사무실을 이전하였다.

주요 업무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직장 출퇴근 ▴병원 통원 ▴ 처리 시 동행 ▴외출 및 나들이 등을 지원한다. 현재 운전원 175명을 비롯하여 센터장, 사무원, 배차원 등 200여 명이 정규직원들이 근무 중이며, 이에 더하여 보람기사 90명이 단시간 근무 중이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에는 여러가지 보람일자리들이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눈과 발이 되는 보람일자리 운전원은 인생 1막을 성공리에 마친 중장년들에게 한번쯤 도전해 보라 추천하고 싶다.

이 외에도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는 현재 ▴치매 길 벗잡이단, ▴독거어르신 후견지원단, ▴건강코디네이터 사업단, ▴중장년 미디어지원단 등 다양한 종류의 보람일자리를 모집 중이다.

인생 전반전에서 축적한 경험과 역량을 활용한다면 국가와 사회에는 기여가 되고 스스로에게는 보람이 되는 1석2조의 삶, 멋지지 않은가!
동작구 상도동 소재 서울시각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최용수
동작구 상도동 소재 서울시각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최용수

서울시50플러스포털

서울시50플러스재단

○ 위치 :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31길 21, 3층
누리집
○ 문의 : 02-460-5050

서울시각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 위치 : 서울시 동작구 상도로216 (인경빌딩 3, 4층)
누리집
○ 문의 : 1600-4477

시민기자 최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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