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심에 이렇게 많은 '표석'이? 걸음마다 역사이야기 가득!

시민기자 박민자

발행일 2023.02.14. 09:06

수정일 2023.02.14. 16:27

조회 1,651

조선시대 서울 행정을 담당하던 ‘한성부 서부관아 터’ 표석은 청계천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박민자
조선시대 서울 행정을 담당하던 ‘한성부 서부관아 터’ 표석은 청계천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박민자

서울 도심을 걷다 보면 대로변과 골목 등 거리 곳곳에서 표석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1번 출구 앞에선 조선 시대 사법기관인 ‘의금부’라고 새겨진 표석을 발견할 수 있다. 표석 문안에는 ‘조선조 관리 양반 윤리에 관한 범죄를 담당하던 관아 자리’라는 글귀가 쓰여있다. 대형 건물과 차량이 즐비한 번화가에 의금부 터가 있었다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의금부는 조선시대 임금의 명을 받들어 중죄인을 심문하던 일을 맡던 관아가 아닌가. 아찔하면서도 도시의 색다른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표석이 세워진 자리에 얽힌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종각역 4번 출구에서 출발한 걸음은 종로 사거리를 두고 전통 한옥 누각 앞에서 멈췄다. 바로 ‘보신각’이다. 서울의 상징이기도 한 이곳은 보신각종을 걸어 만든 것으로 정면 5칸과 측면 4칸의 구조로 돼 있다. 매년 12월 31일 밤 12시 보신각종을 33번 치는 타종 행사는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 새해맞이 행사다. 2023년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모두의 염원을 담은 제야의 종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이 외에도 3월 1일 삼일절과 8월 15일 광복절 등 국경일 낮 12시에는 기념 타종 행사가 보신각에서 진행된다.
정면 다섯 칸과 측면 네 칸으로 푸른 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 누각 ‘보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지하철 종각역 근처에 정면 5칸과 측면 4칸으로 지어진 ‘보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박민자

보신각의 편액은 고종이 직접 쓴 현판이었으나 6·25전쟁으로 전소됐다. 현재의 편액은 1953년 중건 당시에 걸렸고, 편액의 글씨는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썼다. 새 보신각 종을 만든 경위도 표지석에 새겨져 있다.

그 옆으로 1396년의 ‘보신각 터’에 대한 설명이 위치한다. 과거 조선 시대에 도성의 문을 열고 닫을 때와 화재 같은 긴급 상황 시에 종을 쳐서 알렸던 터임을 알려준다. 1396년 처음 설치한 종루는 옛 서울의 중심부인 지금의 인사동에 위치해 있었으나 태종 때 현 위치로 옮겨졌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호, 종로구 종로 54에 위치한 ‘보신각 터’이다. ⓒ박민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호, 종로구 종로 54에 위치한 ‘보신각 터’이다. ⓒ박민자

도성 문을 열 때 치는 종을 파루, 문을 닫을 때 치는 종을 인정이라 하는데, 파루는 불교의 33천에 따라 33번, 인정은 별자리의 28수에 따라 28번을 쳤다. 세종 때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초대형 누각이 지어졌으나 전란과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거듭하며 규모가 작아져 조선 후기에는 단층 전각이 됐다. 현재 보신각에 걸려있는 종은 1985년에 제작된 종이고, 옛 보신각 동종(보물 제2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보신각 주변에는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도 있다. 수도권 전철의 높이와 깊이의 기준이 되는 원점으로 서울특별시 시도등록문화재다. 이 수준점을 기준으로 지하철 선로의 깊이와 터널의 높이, 역으로 쓰는 건물의 높이를 가늠한다. 서울 지하철 계획의 첫 작업으로 1호선의 기준이 될 수준점을 설정하는 것이었고, 이 수준점을 기준으로 서울 시내 지하철 공사에 필요한 모든 측량 작업이 진행됐다. 그동안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적 전통 목조건물로서 보신각만 알고 있었다면, 이제는 보신각이 수도권 전철의 높이와 깊이의 기준이 되는 원점으로 지하철 1호선 사업의 시발점이었다는 상징적 의미로도 볼 수 있겠다.
지하철 1호선 사업의 시발점이었던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이 세워져 있다. ⓒ박민자
지하철 1호선 사업의 시발점이었던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이 세워져 있다. ⓒ박민자

보신각 주변에는 ‘3·1독립운동기념터’ 표지석도 만날 수 있다. 1919년 3·1독립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4월 23일 전국 대표들이 이곳에서 국민대회를 열어 조선의 독립을 준비할 목적으로 한성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한성정부에서는 당시 최고 지도자인 집정관 총재로 이승만을 선출했다. 같은 해 9월에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됐다. 한성정부 유적지 표지석은 지하철 경복궁역 7번 출구에 위치한다.
보신각 주변에 ‘3·1독립운동기념터’ 표석이 위치해 있다. ⓒ박민자
보신각 주변에 ‘3·1독립운동기념터’ 표석이 위치해 있다. ⓒ박민자

종로3가역으로 걸음을 옮기니 ‘신간회 본부 터’가 나타났다.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민족협동전선으로 출범된 신간회가 1929년 이후 본부를 두던 곳이다. 신간회는 일제치하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 단체이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제휴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민족협동전선이다. 그러나 신간회는 일제의 집회 불허로 이렇다 할 활동을 펼칠 수 없었다. 신간회 운동은 비록 4년 여만에 중단되고 말았지만, 3·1운동이후 처음으로 전개된 민족협동전선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기업은행 종로지점 버스 정류장 앞에 ‘신간회본부터’가 위치하고 있다. ⓒ박민자
기업은행 종로지점 버스 정류장 앞에 ‘신간회본부터’가 위치하고 있다. ⓒ박민자

인파를 뚫고 맞은 편으로 길을 건너 좌측으로 향하는데, 풀숲 사이로 ‘이문 터’를 볼 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다. 이곳은 조선 전기에 마을의 방범과 방재를 위해 서울의 주요 골목 입구마다 설치된 문이다. 일종의 방범 초소라고 할 수 있다. 문 위에 다락이 있어 마을 주민들이 번갈아 올라가 도둑과 화재를 살폈다. 현재 차량이 쌩쌩 다니는 도로인데, 과거 골목 입구마다 문이 있었다고 하니, 문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상상해보게 되었다.
조선시대 마을의 방범과 화재를 위해 각 마을 입구마다 문들이 설치됐던 ‘이문터’다. ⓒ박민자
조선시대 마을의 방범과 화재를 위해 각 마을 입구마다 문들이 설치됐던 ‘이문터’다. ⓒ박민자

이문터를 지나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지하쇼핑센터 8번 출입구 옆에는 ‘김상옥 의거 터’가 세워져 있다. 김상옥(1890~1923)은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해 의열단으로 활동했다. 1923년 1월 12일 이곳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일본 경찰과 격전을 벌이다 그 달 22일 효제동에서 순국했다. 1998년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김상옥 동상이 설치됐다.
의열단으로 활동했던 김상옥이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곳, ‘김상옥 의거 터’다. ⓒ박민자
의열단으로 활동했던 김상옥이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곳, ‘김상옥 의거 터’다. ⓒ박민자

지하철 1호선 종각역 5, 6번 출구 근처에서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을 만났다. 형형한 눈빛을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은 일본 영사관에서 조사를 받은 뒤 가마 위에 앉아 압송되던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우측을 바라보는 전봉준 장군의 시선을 따라 주름진 옷자락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순국 123년 만에 세워진 그 날의 풍경이 전봉준 장군의 굳은 눈빛을 보자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종로 네거리에 세워져 있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동상 ⓒ박민자
종로 네거리에 세워져 있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동상 ⓒ박민자

전봉준 장군이 갇힌 전옥서는 조선시대 죄인이 수감됐던 감옥으로 한말 항일 의병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곳이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6번 출구에 나오면 바로 우측 화단에 ‘전옥서 터’가 있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6번 출구에서 우측 화단에 ‘전옥서 터’가 위치한다. ⓒ박민자
지하철 1호선 종각역 6번 출구에서 우측 화단에 ‘전옥서 터’가 위치한다. ⓒ박민자

다음으로 향한 곳은 광화문 우체국 인근에 있는 ‘우포도청 터’이다. 포도청은 조선시대 도성 안팎의 치안과 순찰을 담당했던 관청으로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서쪽 지역을 담당했던 우포도청의 자리다. 특히 우포도청은 한국 천주교 순교 터이자 최대 신앙 증거터로, 한국 천주교회의 마지막 순교자들을 탄생시킨 장소다.
광화문 우체국 근처에 조선시대 치안과 순찰을 담당했던 ‘우포도청 터’가 있다. ⓒ박민자
광화문 우체국 근처에 조선시대 치안과 순찰을 담당했던 ‘우포도청 터’가 있다. ⓒ박민자

종로구와 중구 일대, 과거의 사대문 안에 세워진 표석에 얽힌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살펴봤다. 표석이 세워진 자리가 과거에서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과정과 배경이 흥미롭다.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사라진 역사문화 유적지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격동의 서울을 만나보길 바란다. 현장에서 몸소 체득하는 것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서울의 역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시민기자 박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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