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은숙이다" 비로소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되찾다!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2.12.12. 13:45

수정일 2022.12.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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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에서 이은숙 선생의 생애를 엿볼 수 있다.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에서 이은숙 선생의 생애를 엿볼 수 있다. ⓒ윤혜숙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다.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딱 들어맞는 분들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6형제이다.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제에 항거해서 독립운동을 벌인다. 이때 이회영 형제들은 가산을 정리하고 압록강을 넘어 서간도로 떠난다. 거기서 청년들의 교육을 위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중국 곳곳을 오가면서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그 당시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은숙 선생이 쓴 <서간도시종기>이다.
이회영기념관의 입구에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6형제를 상징하는 6개의 문이 있다.
이회영기념관의 입구에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6형제를 상징하는 6개의 문이 있다. ⓒ윤혜숙

명동역 1번 출구에서 내려 남산자락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 이르면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그곳엔 작년 6월에 개관한 남산예장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겪어야만 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다. 남산예장공원 지하이회영기념관이 있다. 지금 이회영기념관에서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남산예장공원 지하에 있는 이회영기념관에서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남산예장공원 지하에 있는 이회영기념관에서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윤혜숙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의 주인공인 이은숙 선생은 누구일까? 그동안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으로 소개되어 왔다. 그래서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이다. 하지만 그는 남편과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가 육필로 쓴 <서간도시종기>는 독립운동에 관한 기록물이자 우리 역사의 자료이다.

그동안 이은숙 선생은 이회영 선생의 부인으로 거론될 뿐 주체적인 독립운동가로서 주목받지 못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이 그러하듯 우리 역사는 여성을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았다. 독립운동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남편을 내조하는 역할에 머문다고 간주했던 탓이 컸다.
이회영기념관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이회영기념관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윤혜숙

2022년 12월 현재 우리나라에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은 사람이 1만 7,644명인데 그 중 여성 독립운동가는 607명이다. 나라를 잃고 일제로부터 억압받는 상황에 처한 것은 남녀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남녀 구별 없이 저마다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이은숙 선생의 특별전이 주는 의의가 있다. 이은숙 선생의 특별전을 계기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이름 없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조명해 볼 수 있으리라.
이은숙 선생이 쓴 육필원고 <서간도시종기>를 전시하고 있다.
이은숙 선생이 쓴 육필원고 <서간도시종기>를 전시하고 있다. ⓒ윤혜숙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은 이은숙 선생이 쓴 <서간도시종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먼저 <서간도시종기>의 뜻을 알아보자. ‘서간도’는 백두산 왼쪽으로 압록강을 따라 신의주 건너편 단둥까지 이어진 지역이다. ‘시종기’란 시작과 끝을 기록했다는 뜻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서간도에서의 시작과 끝을 기록하고 있다. 이회영 선생 형제가 서간도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것을 골자로 해서 제목을  따왔다.   

전시는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물에 이은숙 선생이 쓴 <서간도시종기>의 일부를 발췌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글을 차례대로 읽으면서 이은숙 선생의 생애를 엿볼 수 있었다. 1장 <영구, 은숙이 되다>에서는 이은숙 선생이 충남 공주에서 서울 저동 대갓집으로 시집오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때만 해도 이은숙 선생은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의 여성이 그러하듯 집안에 머물면서 조신하게 지낸 듯하다.

“한산 이씨가 여러 대를 서대문 평동에서 살아서 옛 노인들은 평동 이씨라고 하였다. 우리 증조 시대에 임오군란이 일어나 충남 공주군 정안면 사현으로 낙향하여서 나의 고향은 공주이다.” (<서간도시종기>에서)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6형제의 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화이다.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6형제의 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화이다. ⓒ윤혜숙

2장 <나의 길, 곧은 길>에서는 이은숙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겪은 고난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은숙 선생은 결혼 후 삼 년째 조국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저 멀리 서간도로 향했다. 남편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형제들의 결단이 있었지만, 부인들의 묵시적인 동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은숙 선생은 어린 자녀와 함께 서울을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은숙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부인으로 지내면서 밥하고 빨래하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때로는 죽음을 무릅쓴 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과 서울을 오가면서 삯바느질, 고무신 공장에서 일해야만 했다. 이은숙 선생이 그때의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매일 빨래하고 만져서 주야로 옷을 지어도 한 달 수입이란 겨우 20원 가량 되니, 그도 받으면 그 시로 부쳤다.”(<서간도시종기>에서)
이은숙 선생이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일화를 볼 수 있다.
이은숙 선생이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일화를 볼 수 있다. ⓒ윤혜숙

3장 <나는 나를 쓴다>에서는 <서간도시종기>를 통해 이회영 선생과 형제들의 항일투쟁을 기록하고, 자신의 노정을 밝히며 수기작가로 거듭난 이은숙 선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제를 상대로 독립 투쟁을 벌이는 독립운동가들은 기록을 남길 수 없었다. 그래서 이은숙 선생이 육필로 써 내려간 기록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여성 독립운동가로선 유일한 육필본 기록인 셈이다. 아래 이은숙 선생은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맞이한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날이 새자 (만주로 가던) 기차는 봉천도 못 가고 철령에 못 미쳐 정거장에 도착한 후 다시는 움직일 생각도 안 하는데... 수군수군하는데 또 한 사람이 오더니 '이제는 살았다. 일본 천황이 손을 들고 항복을 했다'고 하니 모두들 희희낙락하더라.”(<서간도시종기>에서)
이회영 선생과 이은숙 선생은 부부이지만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
이회영 선생과 이은숙 선생은 부부이지만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 ⓒ윤혜숙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을 기획했던 서해성 작가의 전시해설을 들으면서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이은숙 선생의 존재가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다. 이은숙 선생의 사진을 보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눈매와 입매가 다부져 보인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이은숙 선생은 대갓집 새댁에서 독립운동가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그의 이름이었던 이은숙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을 기획했던 서해성 작가의 전시해설을 들었다.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을 기획했던 서해성 작가의 전시해설을 들었다. ⓒ윤혜숙

서해성 작가는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을 보러 오는 시민들에게 “이은숙 선생 특별전을 보면서 이은숙 선생뿐만 아니라 수많은 여성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을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한다. 남성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했던 어머니, 부인 등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남성과 동등하게 독립 투쟁을 벌여온 여성들도 많았다. 유관순을 비롯한 몇 분을 제외하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지금껏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했다. 이제 우리가 그분들을 발굴해서 조명해야 한다는 책무가 생겼다.
2023년 10월 31일까지 이회영기념관에서 이은숙 선생 특별전이 열린다.
2023년 10월 31일까지 이회영기념관에서 이은숙 선생 특별전이 열린다. ⓒ이회영기념관

전시는 이회영기념관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주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지금의 특별전은 2023년 10월 31일까지이니 남산예장공원을 방문하면서 이회영기념관에서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을 꼭 관람해 보자. 

이회영기념관

○ 주소 : 서울시 중구 퇴계로26길 36
○ 운영시간 : 화~일요일 10~18시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연휴, 12월 25일, 선거일 휴관)
○ 정기해설 : 매주 토~일요일 14:00~14:50, 16:00~16:50 ☞ 정기해설 예약 바로가기
누리집
서간도시종기 육필원고
○ 문의 : 02-755-0610

<나는 이은숙이다> 특별전

○ 장소 :  이회영기념관(남산예장공원 내) 
○ 기간 : 2022. 11. 17. ~ 2023. 10. 31. 

시민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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