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 지극했던 정조대왕의 행적 따라 역사문화답사

시민기자 박칠성

발행일 2022.11.17. 09:16

수정일 2022.11.17. 17:30

조회 1,302

지난 11월 12일, 서울역사편찬원의 주관으로 서울과 수도권 주위의 유적지를 시민들과 함께 답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행사는 매년 혹서기와 혹한기를 제외한 봄 가을에 ‘역사 속 한 장면을 따라 서울의 길을 걷다’라는 주제로 운영해 오고 있다. 이번 코스는 2022년 마지막 답사로,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용양봉저정부터 만안교 → 지지대비 → 영화정(만석거) → 화성행궁 → 융릉·건릉으로 이어졌다. 
용양봉저정에서 열심히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시민들
용양봉저정에서 열심히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시민들 ©박칠성

집결지인 9호선 노들역 3번 출구에 시민들이 하나둘 모였다. 참가자 확인 후 이곳에서 100미터 떨어져 있는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이라는 누정(사방을 볼 수 있도록 다락식으로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만든 정자)을 방문했다. '용이 뛰놀고 봉이 높이 난다'는 의미를 가진 이 누정은 정조대왕이 수원 화산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 현륭원을 참배하러 갈 때 노들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건넜는데, 잠시 휴식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들렀던 곳이라고 한다. 
만안교는 옛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멋진 다리이다.
만안교는 옛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멋진 다리이다. ©박칠성
만안교 비각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만안교 비각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박칠성

다음 방문지인 '만안교(萬安橋)'는 정조대왕이 현륭원을 참배할 때 편안하게 건너기 위해 가설한 다리로 옆에 만안교비가 세워져 있다. 현재 위치는 1980년에 국토확장공사로 원래 남쪽 약 200m 떨어진 만안로 입구에 있던 것을 옮겨 복원한 것이라는 사실을 안내 게시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리 아래에 설치된 아치형 모양의 수문과 다리 전체의 모양은 완전한 반원형을 이루고 있고, 그 위에 아스팔트 포장과 콘크리트 난간으로 덧붙어 놓아 원형이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지지대 고개 비각에 얽힌 일화를 듣고 있는 참가자들
지지대 고개 비각에 얽힌 일화를 듣고 있는 참가자들 ©박칠성
일제강점기에 없어졌다가 복원시킨 '영화정' 전경
일제강점기에 없어졌다가 복원시킨 '영화정' 전경 ©박칠성

이어 '지지대(遲遲臺)비' 앞에 도착했다. 안내 게시판에는 정조대왕이 전배를 마치고 환궁하는 길이며 이곳에서 항상 휴식을 취하고도 떠나기를 아쉬워하면서 행차에 늑장을 부려서 느릴 '지(遲)' 자를 두 번 붙여 '지지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설명되어 있었다. 지금은 큰 도로가 된 지지대 고개를 관광버스를 타고 지나 오래 전에 허물어졌다가 만석공원이 조성되면서 1996년 10월 복원된 '영화정(迎華亭) 만석거'를 찾았다. 원래의 영화정은 만석거 남단의 약간 높은 곳에 만든 정자로 1795년 가을에 완성되었고, 1796년 1월 원행 시에 정조대왕이 영화정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정조대왕이 즐겨 찾았던 화성행궁 정문 위에는 '신풍루(新豊樓)'란 글귀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정조대왕이 즐겨 찾았던 화성행궁 정문 위에는 '신풍루(新豊樓)'란 글귀의 현판이 걸려 있다. ©박칠성
 일제강점기에도 훼손되지 않고 무사히 보존된 '낙남헌'의 모습
일제강점기에도 훼손되지 않고 무사히 보존된 '낙남헌'의 모습 ©박칠성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화성행궁 관광안내소 앞 화성광장에 하차하였다. 이곳에서 시민들 각자 입맛에 맞춰 점심을 즐기고 오후 2시에 다음 방문지인 화성행궁 입장권 매표소에 모였다. 

'화성행궁'은 1789년 수원부 읍치 자리에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면서 팔달산 아래로 옮겨져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어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 사용된 곳이다. 행궁 정문 위 현판에 적힌 '신풍루(新豊樓)'란 글귀는 ‘임금님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1795년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년을 치르기 위해 건물의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지었고, 1796년에 전체 600여 칸의 규모로 완공되었으며 현재 '낙남헌(落南軒)'과 '노래당(老來堂)'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을 참배하러 가는 시민들 모습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을 참배하러 가는 시민들 모습 ©박칠성

마지막 방문지는 장조(莊祖) 사도세자와 현경황후(혜경궁 홍씨)의 '융릉'과 정조대왕과 효익왕후 김씨의 '건릉'이다. 융릉은 본래 현륭원이었는데 사도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되자 능으로 격상되어 능호를 융릉이라 하였다고 한다. 장조(사도세자)는 왕세자로 책봉을 받았으나 세자 대리청정을 시작하면서 영조대왕과의 갈등과 나경언의 세자 비행 글로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난 불운한 세자였다. 왕위에 오른 정조대왕이 여러 가지의 효행으로 일생을 이어간 행적 이야기는 화성행궁에서에서 마무리되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곳도 일제강점기 때 만행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용양봉지정을 일본인 이케다는 건물 일부를 철거하고 부근 5,300여 평에 온천, 욕장, 운동장, 식당 등을 건립해 용봉정을 오락장으로 운영했다고 한다. 또한 화성행궁은 1911년부터 병원과 경찰서로 쓰기 시작하여 1920년에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다. 1919년 3월 29일 검진을 받으러 가던 김향화를 비롯한 기생 30여 명이 경찰서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했다는 아름다운 애국활동 이야기 한 편이 필자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처럼 역사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되새기게 하는 하루였다. 비록 올해 서울역사편찬원의 프로그램은 마무리되었지만 내년 봄부터 시작될 '역사 속 한 장면을 따라 서울의 길을 걷다' 행사에 꼭 한번 참여하기를 권한다. 

서울역사편찬원

○ 주소 :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홈페이지
○ 문의 : 02-413-9511

시민기자 박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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