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박수근·백남준 흔적 따라…창신동 '서울문학기행'

시민기자 박지영

발행일 2022.08.25. 13:05

수정일 2022.08.25. 16:46

조회 2,774

문학작품 속의 서울을 찾아가는 '서울문학기행'은 11월까지 진행된다. ⓒ박지영
문학작품 속의 서울을 찾아가는 '서울문학기행'은 11월까지 진행된다. ⓒ박지영

문학작품 속 서울을 찾아가는 문학여행 '서울문학기행'이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다가, 올해 다시 재개되었다. 필자는 2022년 서울문학기행 ‘박완서 나목’ 편에 다녀왔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경험해 보지 못했던 관점으로 서울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울문학기행 '박완서 나목' 편

서울문학기행 제9회 ‘박완서 나목’ 편은 박수근 집터-동신교회-백남준기념관-창신동 절개지를 답사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집결지인 6호선 동묘앞역 6번 출구로 향하는 계단부터 박수근 화백의 집터를 알리는 안내가 있어 이곳이 박수근 화백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토요일 오전에 모인 시민들은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연령이 다양했고, 혼자서 또는 친구와 함께 기행에 참여했다.
토요일 오전 10시, 참석자들이 문학기행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박지영
토요일 오전 10시, 참석자들이 문학기행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박지영

간단한 참석자 확인과 체온 체크, 오리엔테이션을 끝내고 처음 이동한 곳은 박수근 화백의 집터였다. 박수근 화백은 1952년부터 1963년까지 11년 동안 가족들과 창신동에 거주했는데, 당시 땅은 소유하지 못한 채 집만 소유한 상태로 계약을 했다. 1962년 도시계획으로 도로가 생기면서 집이 반토막 나고 땅 주인이 집 철거를 요구하여 법정 싸움까지 간 사연이 있다고 한다.

현재는 순대국집으로 바뀐 박수근의 집터에는 그 위치를 기억하게 하는 설명판과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골목에 세워진 안내판과 누군가가 배수관에 적어놓은 기록을 보며 당시 상황을 조금이나마 추측해 볼 수 있었다.
현재 터만 남아있는 박수근 화백의 집은 설명판 내용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박지영
현재 터만 남아있는 박수근 화백의 집은 설명판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박지영
박수근 집터에 설치된 유비호·이수진 작가의 작품 <기억>. 창신동 집 마루에 앉아 있는 박수근 화백의 가족사진을 통해 그의 소박하고 친근한 삶과 예술을 기억하게 해준다. ⓒ박지영
박수근 집터에 설치된 유비호·이수진 작가의 작품 <기억>. 창신동 집 마루에 앉아 있는 박수근 화백의 가족사진을 통해 그의 소박하고 친근한 삶과 예술을 기억하게 해준다. ⓒ박지영

소설 <나목>은 작가 박완서를 탄생시킨 작품이다. 전업주부였던 그는 40세가 되던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 소설의 탄생은 박수근 화백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쓰여졌기에 답사에서도 당시 상황과 소설 <나목> 속 이야기, 그리고 미술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시대 및 지역 배경도 중요하기에 역사 이야기도 곁들여져 그야말로 도보여행 종합 선물 세트 같았다.

1956년 2월 22일 삼일 기도회로 첫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된 동신교회는 현재의 건물이 1957년 7월 15일 머릿돌을 놓으며 이곳에 쭉 자리했다. 박수근 화백이 창신동에 거주하면서 다녔던 곳으로, 당시의 내부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사전 허락을 얻어 참가자들도 참관이 가능했고, 안에 들어가 당시 박수근 화백의 마음이 되어 예배당 안을 돌아보며 잠시 쉬어 갔다.
동신교회 내부는 정해진 시간 외에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지만 사전 협조를 구해 들어갈 수 있었다. ⓒ박지영
동신교회 내부는 정해진 시간 외에는 공개되지 않지만 사전 협조를 구해 들어갈 수 있었다. ⓒ박지영

답사에는 백남준기념관도 포함되었다. 백남준기념관은 세계적 아티스트인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성장기를 보낸 곳이다. 옛집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과 도시개발을 거치며 파편화된 집터에 자리 잡은 가옥들 중 하나에 조성되었으며, 서울시립미술관이 조성과 운영을 맡아 2017년 3월에 개관했다.

답사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전시도 둘러보고 마당에 둘러 앉아 박수근 화백과 소설 <나목>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백남준기념관은 창신동을 상징하는 또 한 명의 한국 대표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박지영
백남준기념관은 창신동을 상징하는 또 한 명의 한국 대표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박지영

창신동은 질 좋은 화강암이 많이 채굴되어 ‘돌산마을’이라는 별명이 있다. 1924년 경성부 직영 채석장이 되었고, 그 이전에도 이곳에서 채굴된 돌을 바탕으로 1910년 완공된 덕수궁 석조전을 비롯하여 한국은행, 1920년대 조선 총독부, 경성역, 경성부청 등, 대규모 공사에 창신동 채석장에서 채굴된 돌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서울 시내 석조건물이 이곳에서 채굴한 돌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는 창신동 절개지가 답사 마지막 장소였다.

해방 이후 채석장 사용은 중단되었고, 1960년대 무렵 폐쇄된 채석장 자리에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아 지금과 같은 마을을 이루었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 이후 근대화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서울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돌산마을 표지. 지대가 높은 창신동엔 절개지를 볼 수 있는 장소들이 많다. ⓒ박지영
돌산마을 표지. 지대가 높은 창신동엔 절개지를 볼 수 있는 장소들이 많다. ⓒ박지영
돌산마을 표지에서 바라본 절개지 전경. 흐린 날씨였지만 산을 깎은 표면이 확연히 드러난다. ⓒ박지영
돌산마을 표지에서 바라본 절개지 전경. 흐린 날씨였지만 산을 깎은 표면이 확연히 드러난다. ⓒ박지영

동대문 문구완구거리

소설가 박완서, 화가 박수근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필자는 이 기행에서 만나게 된 창신동의 여러 장소들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서울 남산자락과 서울 성곽, 흥인지문과 같은 문화재와 전태일, 박수근, 백남준 등의 인물들, 소규모 봉제공장 등의 유산들도 떠오르지만, 주의깊게 살펴볼 만한 일상의 장소들도 많다. 

먼저 '동대문 문구완구거리'다. 답사에 참여한 시민들 중 반 정도는 동대문 문구완구거리를 처음 방문했다고 한다. 시중보다 저렴하게 완구나 문구를 구매할 수 있는 데다가, 종류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여러 상점들이 모여 있어 필요한 것들을 한 번에 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답사에서는 박수근 집터를 본 후 동신교회로 이동할 때 이곳을 지나쳤다. 토요일과 공휴일 11:00~18:00까지는 보행전용거리가 되어 더 편안하게 볼 수 있다. 
동대문 문구완구거리.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아동용품 및 캐릭터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박지영
동대문 문구완구거리.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아동용품 및 캐릭터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박지영

창신동 골목시장

동네 여느 시장처럼 친숙한 창신동 골목시장에는 ‘창신동 매운족발’이라는 고유명사가 된 시장 명물 음식이 있다. 필자 역시 이곳에 매운족발을 사기 위해 여러 번 들렀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찾고 있는 곳이지만 그밖에도 소소하게 들러 볼 곳들이 많아 보는 재미가 있다. 

답사에서는 백남준기념관에서 채석장으로 향할 때 지나갔는데, 일반적으로는 동대문 문구완구거리를 벗어나 맞은편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입구를 찾을 수 있다. 
매운족발이 유명한 창신동 골목시장 ⓒ박지영
매운족발이 유명한 창신동 골목시장 ⓒ박지영

산마루놀이터

봉제산업의 상징인 골무를 형상화한 산마루놀이터는 2019년 개관했다. 임옥상 미술연구소와 조진만 건축사무소 등이 디자인 및 설계에 참여한 이곳은100m 가량의 나선형 길을 올라가면 서울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내부엔 높이 9m의 육각 정글 짐이 있다. 

황토로 만들어진 어린이 전용의 열린 광장은 운동장으로, 황토와 모래가 깔려있는 놀이터에서 소꿉장난도 할 수 있다. 현재는 이동식 수영장을 설치해 사전 예약을 통해 물놀이도 가능하니, 초등학생 아이를 둔 가정이라면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이곳을 지나면 채석장 전망대이다.
산마루전망대 내부와 외부. 독특한 외관과 큐빅 형태로 구성된 정글짐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박지영
산마루전망대 내부와 외부. 독특한 외관과 큐빅 형태로 구성된 정글짐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박지영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는 서울 시내는 물론 채석장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장소로,  전망대와 카페 낙타로 구성되어 있다. 주민들은 낙타 전망대라고도 부르는데,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가 원래 이름이다. 

답사한 날은 비가 오고 날이 흐려 깨끗한 전경을 보긴 어려웠지만 채석장은 또렷이 보였다. 이곳에서 기행 일정을 마무리하고 참가자들은 자율적으로 카페 낙타로 내려가 차를 음미하며 서울 전경을 감상하고 돌아갔다. 낙산 서울성곽과 N타워, 동대문 DDP, 북한산까지 감상할 수 있는데, 흐린 날이라면 밤에 야경을 보러 가길 추천한다. 
채석장 전망대 외관과 2층의 카페 낙타. 서울 시내 전경을 통유리를 통해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박지영
채석장 전망대 외관과 2층의 카페 낙타. 시내 전경을 통유리를 통해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박지영
채석장 절개지 표지. 표지판 아래엔 아이를 업은 소녀 '단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주변 곳곳에서 창신동 홍보대사로 활약중이다. ⓒ박지영
채석장 절개지 표지. 표지판 아래엔 아이를 업은 소녀 '단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주변 곳곳에서 창신동 홍보대사로 활약중이다. ⓒ박지영

서울문학기행 참가 신청 방법

6월 11일부터 11월 19일까지 총 20회 진행되는 서울문학기행은 매주 월요일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을 통해 예약이 진행된다. 현장 답사는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30명의 참가인원이 도보로 주제와 관련된 공간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관련기사] 작품 속 서울을 걷다! '서울문학기행' 참여자 모집

참가가 확정되면 단톡방에 초대되어 안내사항과 변동사항을 공유 받게 되는데, 개인사정으로 취소하는 사람도 생기니 꼭 참석을 원하는 분은 별도 대기자 신청을 하면 좋다. 필자도 이전에 몇 번 신청하고 싶었으나 마감되어 포기했는데, 이번 기행 참석자 중 몇몇 분은 대기자로 올려 답사에 참여했던 경험을 가진 분도 계셨다.
남은 일정 동안 서울 곳곳에서 문학기행은 계속된다. ⓒ박지영
남은 일정 동안 서울 곳곳에서 문학기행은 계속된다. ⓒ박지영

서울문학기행을 통해 서울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었으며, 잘 알지 못했던 서울의 여러 장소들을 조명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곳들도 많아 다음 기회에 따로 한 번 더 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답사가 궁금한 분들은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의 유튜브 채널 '어반티비'를 찾아보면 된다. 곧 걷기 좋은 가을이 다가오니, 문학 정취에 빠져 보고 싶은 시민들은 꼭 참여해 보길 바란다.

2022 서울문학기행

○ 기간: 2022.6.11.(토) ~ 11.19.(토) (총 20회 진행)
○ 대상: 서울시민 누구나
○ 시간: 토요일 10:00~13:00
○ 예약: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 서울도시문화연구원 홈페이지
○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어반티비'
○ 문의: 010-4137-2441

시민기자 박지영

시민의 입장에서 조금 더 가까이 서울을 들여다보는 시민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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