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품으로 돌아온 ‘광화문광장’ 속 숨은 이야기
발행일 2022.08.17. 10:45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광화문광장 ©조수연
지난 8월 6일, 광화문광장이 시민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광화문광장'은 과거 조선시대 육조거리로 불렸던 곳으로 다양한 관청이 들어섰던 곳이다. 현재도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주한미국대사관 등 국내외 기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사헌부, 육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사헌부, 삼군부, 의정부 등이 있다.
서울시는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광화문광장의 역사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이곳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시는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광화문광장의 역사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이곳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역사물길과 사헌부 문터
먼저 새롭게 선보인 부분은 역사물길이다. 역사물길은 물길 아래 연도와 함께 역사적 사실을 적어놓은 것으로, 1392년 조선 건국부터 2022년 광화문광장 조성까지 우리나라 주요 역사를 새겼다. 예를 들어, 1592년은 임진왜란, 1910년은 경술국치 등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서울시의 역사도 함께 새겨넣었다.
역사물길 속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는 시민 ©조수연
역사물길은 평소에 물이 흐르고 있어 무더운 여름날에는 잠시 발을 담가도 좋다. 족욕까지는 아니더라도 발이 물에 잠길 정도로 약 10cm 내외 높이의 물길이기 때문이다. 바닥에 새겨진 역사 기록을 읽으며 저절로 우리나라의 역사도 학습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다.
역사물길에는 연표와 함께 내용이 적혀 있다. ©조수연
사헌부 문터는 이번 광화문광장을 준비하면서 문화재를 최대한 보존한 대표적인 사례다. 사헌부가 있던 곳에서 발굴된 유구(유적을 이루고 있는 개개의 장소)를 확인할 수 있고, 배수로와 우물, 사헌부 출입문 터 등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헌부는 어떤 곳일까? 사헌부는 나랏일에 대해 논쟁하고 비리 관원을 탄핵하는 기관이다. 현재로 따지면 감사원과 검찰의 기능이 함께 있는 곳으로, 5품 이하 관원의 임명과 법률 제정에 대한 동의권을 가지고 있고, 금령(禁令,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 집행 등의 사법 기능을 담당했다.
특히 사헌부는 사간원, 홍문관과 함께 조선시대 언론 ‘삼사’라고 불리며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임금이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이는 조선시대 정치의 특징으로 사헌부의 문화재 조성으로 조선시대의 독특하고 공정한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사헌부는 어떤 곳일까? 사헌부는 나랏일에 대해 논쟁하고 비리 관원을 탄핵하는 기관이다. 현재로 따지면 감사원과 검찰의 기능이 함께 있는 곳으로, 5품 이하 관원의 임명과 법률 제정에 대한 동의권을 가지고 있고, 금령(禁令,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 집행 등의 사법 기능을 담당했다.
특히 사헌부는 사간원, 홍문관과 함께 조선시대 언론 ‘삼사’라고 불리며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임금이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이는 조선시대 정치의 특징으로 사헌부의 문화재 조성으로 조선시대의 독특하고 공정한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헌부 문터. 시민이 볼 수 있도록 유리벽으로 전시했다. ©조수연
육조거리와 병조, 형조, 공조 터
광화문거리인 세종로가 조선시대 육조거리라고 불렸던 이유는 조선시대 중앙 행정기관인 육조 관청들이 있는 관청가였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에서 나오는 “육조 앞 넓은 거리를 울며 뛰며 뒹굴러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서 말하는 ‘육조 앞 넓은 거리’가 세종로인 셈이다.
흔히 ‘판서’라는 직책은 육조 중 각 조의 수장으로, 이조판서, 병조판서, 호조판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각 조의 직제는 판서, 참판, 참의, 정랑, 좌랑 등으로 구성됐는데, 우리나라 붕당정치의 시작인 ‘이조 전랑’ 인사에 대한 다툼은 이조의 정랑과 좌랑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흔히 ‘판서’라는 직책은 육조 중 각 조의 수장으로, 이조판서, 병조판서, 호조판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각 조의 직제는 판서, 참판, 참의, 정랑, 좌랑 등으로 구성됐는데, 우리나라 붕당정치의 시작인 ‘이조 전랑’ 인사에 대한 다툼은 이조의 정랑과 좌랑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물이 샘 솟는 모두의 식탁에 모여 시민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수연
현재 광화문광장에는 병조, 형조, 공조 터가 남아있는데, 병조는 군사 업무와 도성 방위 등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오늘날 국방부, 방위사업청이 이에 해당한다. 형조는 재판과 형률 집행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법무부에 해당된다. 공조는 토목과 건축공사, 산림, 항만 등 대부분의 업무를 담당했는데, 오늘날 국토교통부가 대표적이며, 해양수산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환경부 등의 업무와도 중첩된다.
공조 터 옆에 있는 터널 분수 ©조수연
현재 병조, 형조, 공조 터는 사계 정원과 문화쉼터, 놀이마당, 열린마당 등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공조 터 옆에 있는 터널분수에선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고 주변에 앉아서 쉬기도 했다.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 조선 시대의 두 인물
광화문광장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인물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다. 세종대왕 동상 옆의 문화회관 이름은 ‘세종문화회관’이고, 도로의 이름은 ‘세종로’이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시민들 ©조수연
또한, 세종대왕 뒤에는 여섯 개의 기둥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과 글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바로 세종대왕의 업적을 그림과 글로 새겨놓았고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을 창제한 모습, 이천과 장영실로 하여금 앙부일구, 혼천의, 자격루 등을 발명하게 한 모습 등이 나와 있다.
세종대왕의 업적과 세종대왕 동상 ©조수연
이순신 장군 동상 앞과 옆에 분수와 비석이 조성됐다. 비석은 총 23개이고 이순신 장군이 일본에 맞서 23전 23승을 거둔 것을 기념해 23개의 비석을 놓았다. 비석에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담긴 <난중일기>와 같은 역사적 사건이 소개되어있어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담긴 비석 ©조수연
총 23개의 비석이 이순신 장군을 설명하고 있다. ©조수연
이순신 장군 앞에는 12개의 큰 분수와 23개의 작은 분수가 있다. 23개는 역시 23전 23승을 의미하는데 12개의 분수는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바로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이 거느렸던 12척의 배를 뜻한다.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이 떠오른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 분수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 ©조수연
이 외에도 광화문광장 곳곳에 미디어파사드를 통해 한글의 근본인 ‘천지인(天地人)’을 주제로 하는 콘텐츠 <광화화첩>을 선보인다. 이처럼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광화문광장. 시민의 사랑을 넘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광화문광장의 다채로운 매력에 흠뻑 빠져들면 좋겠다!
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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