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닦는 사람, 황승용 닦장이 '꽁초어택'하는 사연은?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2.03.16. 15:15

수정일 2022.03.16. 15:43

조회 2,451

[우리동네 시민영웅] ② 지구를 닦는 사람들의 모임 '와이퍼스' 리더 황승용 씨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내 손안에 서울> 에서는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영웅,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영웅, 우리동네 화제의 영웅을 찾아 소개합니다. 세상을 훤하게 비추는 '우리동네 시민영웅' 그 두 번째 시리즈로 지구를 닦는 남자, 황승용 씨를 만나 보았습니다.  
황승용 씨가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있다. ⓒ윤혜숙
황승용 씨가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있다. ⓒ윤혜숙

시청광장에서 을지로 입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서울시 NPO지원센터가 있다. 그 건물에 가까워지니 길바닥에 수그리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그는 길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에는 쓰레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이 시릴 만큼 쌀쌀한 날씨인데도, 그는 쓰레기를 줍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지구를 닦는 남자, 황승용 씨다.

수시로 쓰레기를 줍는 그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를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다.
'와이퍼스' 오픈채팅방을 통해서 회원들의 플로깅 활동을 공유한다. ⓒ윤혜숙
'와이퍼스' 오픈채팅방을 통해서 회원들의 플로깅 활동을 공유한다. ⓒ윤혜숙

황승용 씨는 ‘와이퍼스(Wiperth)’를 이끌고 있다. '와이퍼스'는 ‘닦는 사람들(Wipers)’과 ‘지구(Earth)’의 합성어로, '지구를 닦고 지키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처음에 4명으로 시작했던 모임이 지금은 거의 500명 가까이에 이른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와이퍼스 회원들은 '플로깅' 및 '제로웨이스트' 관련한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황승용 씨는 와이퍼스의 '닦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와이퍼스에선 리더를 닦장으로, 회원을 닦원으로 부르고 있다.
황승용 씨가 퇴근길에 쓰레기를 주워서 귀가하고 있다. ⓒ황승용
황승용 씨가 퇴근길에 쓰레기를 주워서 귀가하고 있다. ⓒ황승용

황승용 닦장은 본업이 따로 있다. 그는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아침에 눈 뜨면 출근한다. 그는 서울시 광진구 소재 카지노에서 근무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한 그가 와이퍼스 닦장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문예창작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며, 공모전에 관심을 갖고 자주 응모해 왔다. 지난 '2019년 자원 및 환경에너지 수필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환경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때 거북이 코에 빨대가 꽂혀 있는 영상을 보면서 충격에 빠졌다. 이어서 KBS1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지구’ 편을 보았다. 그는 8살 소년, 라이언 힉맨이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 정화 활동을 하는 걸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대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황승용 씨가 주운 쓰레기를 재활용하기 위해 세척하고 있다. ⓒ황승용
황승용 씨가 주워온 쓰레기를 재활용하기 위해 세척하고 있다. ⓒ황승용

황승용 닦장은 지금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기로 했다. 장갑을 낀 손으로 비닐봉지를 들고 주변에 널린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퇴근하면서 두 손 가득 쓰레기를 들고 오니까 가족이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쓰레기 종류가 다양하고 많았다.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것에서 나아가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고, 사회 인프라와 엮어서 지속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쓰레기 줍기 활동을 SNS에 공유했다. 그러니 댓글로 관심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2020년 3월 21일 ‘와이퍼스’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과 인스타그램을 개설했다. 처음엔 회원이 황승용 씨, 그의 부인, 2명의 환경활동가 이렇게 총 4명에 불과했다. 별도로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도 전국 곳곳에서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황승용 닦장처럼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관심사를 공유할 공간이 없었다.
산책하는 길에 버려진 수많은 담배꽁초들. ⓒ윤혜숙
산책하는 길에 버려진 수많은 담배꽁초들. ⓒ윤혜숙

황승용 닦장은 와이퍼스 회원들과 같이 플로깅을 하면서 두 가지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먼저 플로깅하면서 이곳에는 왜 이런 종류의 쓰레기가 많은지 원인을 따져본다. 그러면 해결방안도 도출할 수 있다. 또한 플로깅하는 과정에서 회원들과 같이 몸을 움직이면서 관심사를 나누는 등 소통에 애쓰려 한다. 그 결과 현재 담배꽁초와 관련해서 유의미한 성과를 끌어내고 있다. 
플로깅 활동으로 수거한 담배꽁초를 손편지와 함께 담배 제조사에 보냈다. ⓒ황승용
플로깅 활동으로 수거한 담배꽁초를 손편지와 함께 담배 제조사에 보냈다. ⓒ황승용 제공

국내 흡연자 수는 약 1,000만 명에 이른다. 그들이 하루에 피우는 담배가 약 8,000만 개비에 이른다. 문제는 이중에 최소 1,200만~5,000만 개비 정도는 길거리에 버려진다는 데 있다. 그러니 쓰레기에서 담배꽁초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담배꽁초 필터엔 플라스틱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흡연자가 무심코 버리는 담배꽁초의 양만큼 재활용되지 않은 채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양이 늘어나는 셈이다.
'꽁초어택'이라는 프로젝트로 담배꽁초를 줄이기 위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황승용
'꽁초어택'이라는 프로젝트로 담배꽁초를 줄이기 위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황승용 제공

황 닦장은 와이퍼스 회원들과 함께 수거한 담배꽁초가 그대로 버려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어떻게 해야 담배꽁초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지 고심했다. 그래서 담배 제조사인 KT&G에  4가지 요청사항을 담은 손편지를 보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담배꽁초 필터를 생분해 필터로 교체해 주세요. 
당장 담배꽁초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알려 주세요. 
버려지는 담배꽁초를 수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세요. 
꽁초를 모아오면 담뱃값을 할인해 주는 등 보상안을 마련해 주세요
- 와이퍼스가 담배 제조사인  KT&G에 보낸 손편지 -

플로깅 활동으로 모은 담배꽁초를 세 차례에 걸쳐서 편지와 함께 담배 제조사에 보냈다. 두 번까지 묵묵부답이었던 담배 제조사가 거의 1년 만에 답변을 보내 왔다. 담배 제조사는 “지금껏 모아서 보내준 담배꽁초를 잘 받았다”라는 말과 함께 앞서 와이퍼스가 요청한 사항을 주제로 미팅을 하자고 제의해 왔다. 

황승용 닦장은 환경부 장관에게도 요청사항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담배꽁초 무단투기를 단속해 달라. ‘담배꽁초가 플라스틱이다!’라는 사실을 알리는 공익캠페인을 전개해 달라. 담배꽁초 제조사에서 납부하는 폐기물 분담금을 담배꽁초 문제 해결을 위한 곳에 사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와이퍼스' 회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쓰레기 줍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황승용
'와이퍼스' 회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쓰레기 줍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황승용 제공

황승용 닦장은 플로깅 활동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만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제도, 정책,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 전 국민의 10%만 실천해도 바뀔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와이퍼스에 가입한 회원들은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플로깅 활동 및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은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면서 활동하고 있다. 와이퍼스는 성별, 연령별, 국적을 초월해서 모여 있다. 미취학 아동에서부터 60대 이상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와이퍼스는 소속은 있지만 강압은 없다. 그는 이것을 “느슨한 연대”라고 표현했다.

기자도 작년 겨울 서울시자원봉사센터와 와이퍼스가 주최하는 플로깅 활동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거기서 황승용 닦장과 와이퍼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한강공원이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였지만 가까이 길바닥을 살펴보니 담배꽁초, 마스크, 스티로폼 조각, 비닐, 일회용 컵 등 각종 쓰레기가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와이퍼스는 서울시자원봉사센터와 함께 한강반포공원에서 플로깅 활동을 진행했다. ⓒ윤혜숙
와이퍼스는 서울시자원봉사센터와 함께 한강반포공원에서 플로깅 활동을 진행했다. ⓒ윤혜숙

와이퍼스는 비영리단체로 서울시 NPO지원센터에 입주하고 있다. 지금 와이퍼스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사단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사회의 문화를 바꾸기 위한 소소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첫째, ‘지구 닦는 착한 가게’를 선정해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등록할 예정이다. 이곳은 회원들이 플로깅하다가 들르는 거점 공간이 될 것이다. 

둘째, 오는 3월 말에 황승용 닦장의 이야기를 담은 ‘지구 닦는 황대리(가제)’가 출간된다. 평범한 사람도 충분히 세상을 위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며, 결국 이를 통해 본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얼수데이-닦원이 빛나는 밤에’를 통해서 매월 회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이 내용을 영상으로 게시하고 추후엔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목표까지 가지고 있다.
황승용 씨를 비롯한 와이퍼스 회원들은 쓰레기 줍기가 일상화되어 있다. ⓒ황승용
황승용 씨를 비롯한 와이퍼스 회원들은 쓰레기 줍기가 일상화되어 있다. ⓒ황승용 제공

황승용 닦장은 퇴근한 후에도 바쁘다. 밤 9시 운영진과의 미팅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 비해 여가활동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나중에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될 것 같단 생각에 오늘도 사회적 가치를 위한 와이퍼스 활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와이퍼스는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혼자 활동하기 어려운 분들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와이퍼스’를 검색하면 가입할 수 있다. 시간을 내어서 자신의 주거지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벌어지는 환경 정화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다. 
평범한 직장인인 황승용 씨가 지구 환경을 정화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윤혜숙
평범한 직장인인 황승용 씨가 지구 환경을 정화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윤혜숙

인터뷰 말미에서 황승용 닦장은 예전에 읽었던 책 <파타고니아>의 문장을 인용하며 그의 심정을 에둘러 표현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게 환경이다. 
누구를 탓한다면 문제 해결은 더 늦어진다. 
내가 먼저, 나로 인해 내 주변 환경이 바뀔 수 있다.
- 책 <파타고니아> 중에서 - 

인간의 이기심이 지구의 환경을 망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바이러스의 습격, 지구온난화, 이상기후 등 지구는 우리의 이기심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다면 결국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고스란히 안게 될 것이다. 황승용 닦장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사회의 작은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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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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