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홍제동, 오래된 골목과 아파트 사이를 걷다
발행일 2021.10.22. 10:00
서울의 역사를 품은 홍제동 오래된 아파트를 찾아서
오래된 골목길과 더불어 발전해 가는 서울의 동네는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안고 있다. 오랜 역사와 특별한 이력을 안고 있는 홍제동으로 나만의 도보여행을 떠나보았다.
서대문구 홍은1동 북한산자락길에서 바라본 서대문구 홍제동 일원 ⓒ박찬홍
다양한 이야기가 쌓여있는 동네,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동은 서대문구에 속한 동이다. 동쪽으로는 인왕산, 남쪽으로는 안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숲세권 마을이다. 홍제동은 조선 시대 중국 사신이 머물던 우리나라 첫 번째 국립여관인 홍제원(弘濟院)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홍제동은 의주로와 세검정길 주위로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두 길이 만나는 로터리에는 동의 명물인 유진상가가 있다. 최근 유진상가 하부시설에는 ‘홍제유원’이라는 특별한 예술공간이 조성됐고, 유진상가 뒤편으로는 5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청과물 도매 전통시장인 인왕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홍제동은 의주로와 세검정길 주위로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두 길이 만나는 로터리에는 동의 명물인 유진상가가 있다. 최근 유진상가 하부시설에는 ‘홍제유원’이라는 특별한 예술공간이 조성됐고, 유진상가 뒤편으로는 5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청과물 도매 전통시장인 인왕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홍제동 골목길에는 오랜 한옥과 더불어 다양한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박찬홍
세검정길 주변에는 ‘문화촌’이 있다. 1950년 말 양옥들이 들어서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중심에는 지금은 리모델링이 되었지만 1980년대만 해도 연탄보일러를 사용했던 이색적인 역사를 안고 있는 문화촌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고은초등학교 자리는 서울시 장재장(화장터)이 있던 곳이다. 이 장재장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아현동, 신당동의 화장장이 주택가로 둘러싸이게 되자 1929년 이전한 것인데 1970년 경기도 고양군 벽제리로 다시 이전했다. 하지만 지금도 택시를 타고 “홍제동 화장터 길로 가주세요”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고은초등학교 자리는 서울시 장재장(화장터)이 있던 곳이다. 이 장재장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아현동, 신당동의 화장장이 주택가로 둘러싸이게 되자 1929년 이전한 것인데 1970년 경기도 고양군 벽제리로 다시 이전했다. 하지만 지금도 택시를 타고 “홍제동 화장터 길로 가주세요”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서대문구 홍제동 문화촌길에서 바라본 문화촌의 흔적 ⓒ박찬홍
문화촌아파트 남쪽에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사현사(沙峴寺)라는 절이 있었다. 사현사는 홍제천의 옛 이름이 사천(沙川)에서 기원이 된 사찰이다. 남아 있던 사현사의 5층 석탑(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오층석탑 보물 166호)도 1970년에 시가지를 확장하면서 경복궁으로 옮겨갔다.
이제 서울의 도시발전과 건축물의 발전과정과 흔적들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 홍제동 현장을 자세히 살펴보자.
이제 서울의 도시발전과 건축물의 발전과정과 흔적들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 홍제동 현장을 자세히 살펴보자.
1968년에 건축된 홍제동의 인왕아파트 전경 ⓒ박찬홍
홍제동 아파트와 맨션들…오랜 세월의 흔적 고스란히 간직
먼저 지하철 3호선 1번 출구로 나오면 1968년에 건축된 인왕아파트, 1974년에 건축된 인왕궁아파트, 1972년 건축된 안산맨션아파트를 만날 수 있다. 세 아파트는 한데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한번에 만나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각 아파트는 53년, 47년, 4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들이다. 아파트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대를 지나던 빠른 성장기 모습과 거주문화의 변화과정, 그 흔적과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각 아파트는 53년, 47년, 4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들이다. 아파트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대를 지나던 빠른 성장기 모습과 거주문화의 변화과정, 그 흔적과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49년의 역사를 안고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안산맨션아파트와 골목길 풍경 ⓒ박찬홍
안산맨션아파트 옆으로 오래된 대중목욕탕의 굴뚝이 보인다. ⓒ박찬홍
특히 안산맨션아파트는 총 6층에 1층은 상가가 위치하고 나머지 층에서는 44세대가 거주하는 주상복합 형태의 아파트로, 건축서적 등에 중정이 아름다운 아파트로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다. 건물 안에 있는 오래된 대중목욕탕은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특별한 아파트를 뒤로하고 홍제동 골목길을 탐방하며 서울인왕초등학교를 지나 홍일아파트에 도착했다.
이렇게 특별한 아파트를 뒤로하고 홍제동 골목길을 탐방하며 서울인왕초등학교를 지나 홍일아파트에 도착했다.
홍일아파트 찾아가는길, 맞은 편에 새로운 아파트가 건축돼 60년대와 현재의 아파트가 대비된다. ⓒ박찬홍
1969년에 지어진 홍일아파트는 1동의 건물에 총 44세대가 사는 홍제동 나홀로 아파트의 시초라 할 수 있다. 6층까지 계단을 이용해 올라야 하는 계단식 아파트다. 또한, 대지 자체가 부정형으로 주변 지형에 맞추어서 건축한 모습이 특별해 보인다.
1969년에 건축된 계단식 홍일아파트는 홍제동 나홀로아파트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박찬홍
홍일아파트 옆 작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오래된 서울의 주택들과 한옥들을 만나게 된다. 홍일아파트에서 문화촌아파트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편에 제일주택이 나온다. 역시 1980년에 건축된 주택으로 외관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과 감흥을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안고 있다.
홍제동의 제일주택. 1980년대 서울의 거주문화,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박찬홍
이어서 만나게 된 문화촌아파트. 1960년대 세워진 문화촌아파트는 당시 부흥주택이라고 불렸다. 15~20평 규모의 흙벽돌집이었지만 당시에는 고급주택에 속했다. 특히 주로 문인들이 많이 거주하며 문화촌이라는 별명이 생겨나기도 했다. 현재는 지난 2002년에 새롭게 증·개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문화촌아파트 건너편 홍제천 위로는 유진상가와 함께 유진맨션이 자리했다. 유진맨션은 1970년에 지어진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오랫동안 서대문의 랜드마크 같은 아파트다. 세대 면적이 33평~60평으로 건립할 당시 초대형 고급아파트로 이름을 날렸다.
유진맨션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1970년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로 건물 자체가 ‘방어기지’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까닭이다. 1층 가로변에 세워진 기둥들은 간격이 넓어 전차가 몸을 숨길 수도 있고, 유사시 기둥을 부수면 아파트가 넘어지면서 일종의 바리케이드가 된다고 한다.
문화촌아파트 건너편 홍제천 위로는 유진상가와 함께 유진맨션이 자리했다. 유진맨션은 1970년에 지어진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오랫동안 서대문의 랜드마크 같은 아파트다. 세대 면적이 33평~60평으로 건립할 당시 초대형 고급아파트로 이름을 날렸다.
유진맨션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1970년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로 건물 자체가 ‘방어기지’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까닭이다. 1층 가로변에 세워진 기둥들은 간격이 넓어 전차가 몸을 숨길 수도 있고, 유사시 기둥을 부수면 아파트가 넘어지면서 일종의 바리케이드가 된다고 한다.
유진맨션은 홍제천을 복개하면서 건축된 주상복합아파트다. ⓒ박찬홍
이 맨션은 홍제천을 복개해 지어진 건축물이다보니 대지지분이 없다는 게 특이하다. 원래는 A동과 B동 두 개의 동이었으나 1999년 내부순환도로가 생기면서 B동의 4,5층이 잘려나갔다. 서울의 발전과 시대의 흐름 속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안고 있는 아파트다.
지금의 아파트는 가격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세상이다. 홍제동을 한 바퀴 둘러보다 보면 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동네의 가치와 정겨운 문화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아파트는 가격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세상이다. 홍제동을 한 바퀴 둘러보다 보면 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동네의 가치와 정겨운 문화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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