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에서 김구선생을 떠올리다

시민기자 이영남

발행일 2021.06.24. 14:54

수정일 2021.06.2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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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삼성병원 내 자리한 서울경교장, 사전예약과 현장 접수로 방문이 가능하다.
강북삼성병원 내 자리한 서울경교장, 사전예약과 현장 접수로 방문이 가능하다. ⓒ이영남

6월 호국영령보훈의달을 맞이해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선생을 떠올리며 경교장을 방문했다. 

6월 26일은 조국의 자주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한 백범 김구선생의 서거 72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날 김구선생이 서거한 서울 경교장을 방문하고자 사전 예약을 하려고 하니 당일 오전 추모행사가 있어 일반 관람이 안 된다고 했다. 또 코로나19로 불시에 휴관을 하는 경우도 있기에 미리 현장접수로 답사를 했다. 
입구에 백범 김구선생의 흉상과 오디오 해설안내, 관람순서가 나와 있다.
입구에 백범 김구선생의 흉상과 오디오 해설안내, 관람순서가 나와 있다. ⓒ이영남
1층 영상실에서 전시 안내를 시청했다.
1층 영상실에서 전시 안내를 시청했다. ⓒ이영남

입구에서 QR코드 등록과 발열체크를 한 후 실내화를 갈아 신고 들어가면 김구선생의 흉상과 오디오 해설안내, 관람순서가 안내돼 있다. 필자는 1층 영상실, 지하전시실, 1층 응접실, 귀빈식당, 선전부 활동공간, 2층 집무실, 서거 현장, 김구 침실, 오토마타 체험실을 관람해보기로 했다. 
금광업자 최창학의 사저였던 경교장에는 지하 부엌에서 음식을 담아 1층으로 올려지는 덤웨이터가 있다.
금광업자 최창학의 사저였던 경교장에는 지하 부엌에서 음식을 담아 1층으로 올려지는 덤웨이터가 있다. ⓒ이영남
전시관인 경교장 지하공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당시에는 보일러실과 부엌 등으로 사용됐다.
전시관인 경교장 지하공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당시에는 보일러실과 부엌 등으로 사용됐다. ⓒ이영남

종로구에 자리한 경교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의 숙소이자 환국 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다. 일제강점기 부호 최창학의 주택이었던 이 곳은 김구선생이 1945년 11월 23일 환국해 1949년 6월 26일 서거할 때까지 3년 7개월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경교장에서 임시정부 요인들이 모여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반탁운동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는 등 해방 후 혼란정국을 수습했다. 백범 서거 후 외국 대사관저, 미군 시설, 병원으로 사용되다가 2005년 사적 제465호로 지정됐다. 이후 1·2층과 지하를 원형대로 복원해 2013년 3월 전시관으로 문을 열었다.  
1938년 건립된 경교장은 백범 서거 후 외국 대사관저, 미군시설, 병원 등 여러 변화를 거쳤다.
1938년 건립된 경교장은 백범 서거 후 외국 대사관저, 미군시설, 병원 등 여러 변화를 거쳤다. ⓒ이영남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하기 직전 귀국에 대한 감회를 적은 기념 서명이 있다. 화평(和平), 건국(建國), 자강(自强) 등의 구호가 적혀 있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하기 직전 귀국에 대한 감회를 적은 기념 서명이 있다. 화평(和平), 건국(建國), 자강(自强) 등의 구호가 적혀 있다. ⓒ이영남

경교장 지하공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당시에는 보일러실과 부엌 등으로 사용됐다. 보일러실 북측에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1948년 4월19일 김구가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으로 갈 때, 김구의 북행을 만류하는 사람들을 피해 정문이 아닌 이 지하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 지하공간은 경교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조성돼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및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의 숙소로 사용된 경교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및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의 숙소로 사용된 경교장 ⓒ이영남

1938년 지어진 경교장은 원래 이름은 일본식 이름인 '죽첨장' 으로 불렸는데, 김구 선생이 서대문 부근의 다리인 ‘경교(京橋)'의 이름을 따서 한국식으로 개명했다. 건물을 지은 최창학은 일제강점기 광산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인물로,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에게 비행기를 헌납하고 거금을 기부하는 등 친일행위를 했다. 194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환국준비를 위해 조직된 임시정부환국봉영회에서 최창학이 소유하고 있던 경교장을 임시정부에 제공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마지막 활동지이자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로 사용된 곳이 친일행각을 한 최창학의 저택이었다니 참 안타까운 임시정부의 현실이 느껴졌다.
국무위원회 등 임시정부의 대표적인 회의들이 개최되고, 김구 주석이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접견했던 1층 응접실
국무위원회 등 임시정부의 대표적인 회의들이 개최되고, 김구 주석이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접견했던 1층 응접실 ⓒ이영남
김구 주석이 평상시 공무를 보거나 접견 장소로 사용하던 집무실
김구 주석이 평상시 공무를 보거나 접견 장소로 사용하던 집무실 ⓒ이영남
김구 주석이 서거했을 때 빈소로 사용되었던 귀빈실
김구 주석이 서거했을 때 빈소로 사용되었던 귀빈실 ⓒ이영남

이후 경교장은 중화민국 대사관저로, 한국전쟁 중 미군특수부대 및 임시의료진 주둔지로, 또 월남대사관, 고려병원, 강북삼성병원 등으로 사용되다가, 1960년대 경교장을 보존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1990년대 문화재 지정을 검토해 2001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됐다. 2005년 6월에는 국가 사적 제465호로 승격했고 2010~2013년까지 실제 복원을 진행했다. 
임시정부 요인과 수행원들이 환국하여 머문 임시정부 요인 숙소
임시정부 요인과 수행원들이 환국하여 머문 임시정부 요인 숙소 ⓒ이영남
임시정부 당시 욕실로 사용되던 공간으로 벽체, 바닥(타일), 천정, 창문 등이 건축 당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임시정부 당시 욕실로 사용되던 공간으로 벽체, 바닥(타일), 천정, 창문 등이 건축 당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영남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영·소 3개국 외상회의에서 한국의 즉각적 독립이 아닌 5년 동안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 이 사실이 국내에 전해지자 임시정부는 긴급하게 국무위원회를 소집했다. 그리고 밤샘 회의를 통해 단순히 신탁통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는 것을 넘어서 제2의 독립운동 전개를 천명했다. 경교장 2층 오토마타체험실에서는 버튼을 눌러 모스크바3상회의 신탁통치 결정에 따라 개최된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 모습을 체험해볼 수 있다.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된 후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 모습이 인형을 통해 재생할 수 있다.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된 후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 모습이 인형을 통해 재생할 수 있다. ⓒ이영남
대한민국임시정부 회고록
대한민국임시정부 회고록 ⓒ이영남

조국에 돌아온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은 이 곳에서 자주 통일의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무위원회를 개최하고,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추진했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남북협상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정치 활동을 하는 중,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게 된다. 김구선생의 통일에 대한 바람은 비록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 뜻은 경교장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어서 관람객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울린 총성이 백범 김구의 생명을 앗아갔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울린 총성이 백범 김구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영남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울린 총성은 평생을 조국 광복과 통일 국가 수립을 위해 온몸을 바친 백범 김구의 생명을 앗아갔다. 2층 집무실 남쪽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던 선생은 인사를 하고 싶다고 찾아온 주한미군방첩대(CIC) 요원이자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가 쏜 네발의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한 발은 인중을 또 한 발은 목을 관통했으며 다른 두발은 앞가슴과 하복부를 뚫고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선생의 죽음에 3천만 동포 모두 슬픔에 빠졌고 국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 후 7월5일 효창원에 안장됐다.
효창원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선생의 묘역.
효창원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선생의 묘역. ⓒ이영남

김구 주석이 평상시 공무를 보거나 접견 장소로 사용하던 집무실에는 벽에 남은 총탄의 흔적이 실감나게 표현돼 있다.  전시실에서도 김구선생이 저격을 받아 서거할 당시 입고 있는 저고리와 바지에는 혈흔과 탄흔이 선명하게 남아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게 한다. 
김구 선생이 서거한 곳으로 집무실 창문에는 여전히 탄흔이 남아 있다.
김구 선생이 서거한 곳으로 집무실 창문에는 여전히 탄흔이 남아 있다. ⓒ이영남
김구선생이 안두희의 저격을 받아 서거할 당시 입고 있었던 저고리와 바지
김구선생이 안두희의 저격을 받아 서거할 당시 입고 있었던 저고리와 바지 ⓒ이영남

6월 호국영령보훈의달을 맞아 경교장은 이달의 문화재로도 선정되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의 중심지이자 주석 김구의 최후 거처로서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경교장을 찾아 뜻 깊은 하루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 경교장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평동 108 (강북삼성병원 내)
○ 가는법 : 광화문역 7번 출구, 서대문역 4번 출구
○ 관람시간 : 화~일요일 10:00~17:30(월요일 휴무)
○ 입장료 : 무료
○ 관람예약 바로가기 : ☞바로가기
○ 문의 : 02-735-2038

시민기자 이영남

서울시의 정책 상황을 직접 체험해보고 기사를 작성하는 서울시민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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