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앞둔 달동네 '백사마을'에도 소박한 봄이 왔어요~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21.03.19. 10:39

수정일 2021.03.19. 17:29

조회 772

 불암산이 보이는 노원구 백사마을의 모습
불암산이 보이는 노원구 백사마을의 모습 ⓒ박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이 마침내 재개발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았다. 백사마을은 추운 겨울이 되면 연탄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의 온정이 담긴 활동으로 언론에 자주 소개되던 곳이다. 노원구 중계동 산104번지로, 번지수가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된 백사마을을 찾았다. 

주차된 차량과 오가는 행인들로 인해 마을 어귀는 다소 어수선해 보였다. 재개발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축하하는 거리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들이 요즈음 백사마을의 분위기를 감지케 한다.
 불암산이 보이는 노원구 백사마을의 모습
불암산이 보이는 노원구 백사마을의 모습 ⓒ박분

순조롭게 사진촬영을 할 수는 있을지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언덕진 마을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마을 안은 의외로 무풍지대처럼 조용하고 한적했다. 서두름 없이 길을 가는 마을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마을 오르막길에서 내려다보니 바위가 하얗게 드러난 불암산과 함께 허름한 집들이 서로 의지한 채 줄지어 늘어서 있다. 
백사마을 골목길에서 마주한 벽화
백사마을 골목길에서 마주한 벽화 ⓒ박분

한 골목길에서 시름에 찬 모습의 집 짓는 사람이 그려진 벽화를 발견했다. “1967 철거민 집단이주, 정든 집을 뒤로 하고 불암산자락 계곡과 천막에서 비를 피하며 200장의 시멘트블록으로 손수 집을 지었답니다.” 벽화에 쓰여진 글귀다. 백사마을이 처음 형성되었던 때의 모습을 담은 벽화였다. 
연탄 보관창고로 쓰이는 ‘서울연탄은행’, 백사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다.
연탄 보관창고로 쓰이는 ‘서울연탄은행’, 백사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다. ⓒ박분

백사마을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게 하나 있다. ‘서울연탄은행’이라는 간판이 붙은 창고로 연탄을 보관하는 곳이다. 서울연탄은행은 연탄지원사업을 하는 복지기관으로 백사마을에 연탄보관함을 마련해 두고 있다. 겨울철 연탄을 이 보관함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골목길을 돌다가 서너 곳에서 연탄은행을 볼 수 있었다. 
연탄이 쌓인 연탄광, 백사마을에서는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연탄이 쌓인 연탄광, 백사마을에서는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박분

연탄이 쌓인 연탄광도 백사마을에서는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연탄불 아궁이에서 엄마가 지어주신 밥을 먹고 자란 세대인 필자에게 연탄은 꽤나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백사마을 지붕위에 올려진 타이어
백사마을 지붕위에 올려진 타이어 ⓒ박분

백사마을은 집집마다 지붕위에 기왓장이나 타이어를 올려놓은 집이 많다. 비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을 덮어씌운 비닐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누르기 위함이다.  
백사마을 자원봉사캠프에 마을의 행사 장면을 담은 사진들이 빼곡하다.
백사마을 자원봉사캠프에 마을의 행사 장면을 담은 사진들이 빼곡하다. ⓒ박분

골목길을 지나다 중계본동 자원봉사 캠프가 눈에 띄었다. 백사마을에 관한 자세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노크하니 어르신 한 분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캠프 벽면에는 마을의 이모저모 행사 장면을 담은 사진들이 빼곡하다.
백사마을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계본동 자원봉사 캠프장 이병열씨
백사마을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계본동 자원봉사 캠프장 이병열씨 ⓒ박분

캠프장으로 8년이 넘도록 봉사활동을 해온 이병열씨는 마을의 재개발사업시행계획 인가가 발표된 이후로 요즘은 마을 주민들과 그동안 수집했던 마을사진과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몇 년 전만해도 700가구가 살았던 백사마을은 현재 200 여 가구가 남아 있을 뿐,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그는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 준  ‘쌈지마당’과 마을이 형성될 당시에 세워져 동고동락한 ‘중계교회’를 안내해 주었다. 
폐식용유로 이웃과 나눌 비누를 만들고 계신 할머니
폐식용유로 이웃과 나눌 비누를 만들고 계신 할머니 ⓒ박분

쌈지마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고 계신 할머니를 만났다. 빈 우유곽에 가득 들어찬 액체를 굳히면 노란 빛깔의 빨래비누가 되는데 이웃들과 나눠 쓸 것이라고 한다. 산비탈의 달동네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서로 나누는 훈훈한 인심을 느껴진다.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과 동고동락을 함께한 백사마을의 쉼터 ‘쌈지마당’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과 동고동락을 함께한 백사마을의 쉼터 ‘쌈지마당’ ⓒ박분

돌담으로 싸인 쌈지마당은 정말 쌈지처럼 작고 아담한 모습이다. 정자나무도 몇 그루 있어 더운 여름철에 나무그늘에서 어르신들이 장기도 두셨을 모습을 상상해본다. 
백사마을 주민들을 따뜻하게 품어준 중계교회
백사마을 주민들을 따뜻하게 품어준 중계교회 ⓒ박분

노원구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청계천과 남대문 일대 재개발로 오갈 데 없는 이들이 하나 둘씩 모이면서 형성됐다. 마을이 생기면서 산자락 높은 언덕에 교회도 세워졌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달픈 삶을 살았던 백사마을 주민들을 따뜻하게 품어준 게바로 중계교회다. 백사마을에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이자 재개발되기 전 마지막까지 백사마을 주민들과 함께 한 교회로 기록될 것이다.  
백사마을 어느 집 담벼락에서 만난  봄 풍경
백사마을 어느 집 담벼락에서 만난 봄 풍경 ⓒ박분

양지바른 어느 집 담벼락에 자리한 장독대에 올망졸망 옹기 항아리들이 나앉아 봄볕을 쬐고 있다. 빨래 줄의 빨래도 질세라 봄볕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칠이 벗겨진 집 대문으로 당사실 같은 햇살이 쏟아지는 소박한 풍경은 백사마을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런 풍경이다. 머잖아 재개발이 되면 백사마을 주민들은 편리한 아파트에서 살게 될 것이다. 비록 아파트 숲을 이룬 도심 속 마을로 바뀔지라도 지금 이 풍경처럼 따뜻한 햇살이 언제까지나 이 자리에 함께 하기를 바라며 언덕길을 내려왔다.

시민기자 박분

현장감 있는 생생한 기사를 전달하겠습니다.

#백사마을 #도시재생사업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