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자취를 따라서…앨버트 테일러 가옥 '딜쿠샤'에 가다

시민기자 이주원

발행일 2021.03.03. 14:32

수정일 2021.03.08. 11:46

조회 1,175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DILKUSHA 1923)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DILKUSHA 1923) ⓒ이주원

딜쿠샤는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미국인 AP통신원 앨버트 테일러 가족의 가옥이다. 딜쿠샤(DILKUSHA)의 의미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다.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한 이 가옥에 앨버트 W. 테일러와 메리 L. 테일러 부부가 살았다.  행촌동의 행(杏)은 은행나무의 행과 같다. 메리 테일러가 은행나무에 반하여 이곳에 가옥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딜쿠샤 옆에는 아주 큰 보호수(수종: 은행나무)가 있다. 아직 날이 추워서 잎이 하나도 없었지만, 날이 따뜻해지고 가을이 되면 딜쿠샤 주변에 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2005년 부부의 아들인 브루스 T.테일러가 서일대학교 김익상 교수에게 딜쿠샤를 찾아줄 것을 의뢰하였다. 김익상 교수는 가옥에 새겨진  'DILKUSHA 1923'를 결정적인 단서로 이 가옥을 찾아내게 되었다고 한다. 2007년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로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등록되었다. 2020년 복원공사를 완료하고, 드디어  2021년 3월 1일 삼일절에 정식으로 개관하였다.
딜쿠샤 찾아가는 길
딜쿠샤 찾아가는 길 ⓒ이주원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을 찾아 걷고 있다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을 찾아 걷고 있다 ⓒ이주원

딜쿠샤를 방문하는 방법

딜쿠샤 방문을 위해서는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https://yeyak.seoul.go.kr/main.web)을 통해 미리 예약해야한다. 온라인으로  선착순 15명까지 예약을 받는다. (참고로 현장에서  최대 5명까지 선착순으로 접수가 가능하다.)
딜쿠샤는 3호선 독립문역과 경복궁역 사이에 있는 사직터널 근처에 있다. 독립문역쪽 방향의 사직터널 입구에 가면, 위의 사진과 같은 언덕길이 보인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걷다보면 딜쿠샤를 찾아갈 수 있다.
빨간 벽돌의 외관이 인상적인 딜쿠샤
빨간 벽돌의 외관이 인상적인 딜쿠샤 ⓒ이주원

AP 통신원 앨버트 테일러, 3.1운동을 뉴욕타임즈 기사로 세계에 알리다

앨버트 테일러는 광산  사업을 하던 사업가이자 AP(Associated Press, 연합통신) 통신원이었다. 아내인 메리 테일러는 연극배우였다. 1919년 2월  28일 메리 테일러가 아들을 출산하였고, 아내와 아들을 보러 세브란스 병원에 방문한 앨버트 테일러는 우연히 침대 속에 감춰져 있던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앨버트 테일러는 한국어에 능통하여 그 종이문서가 독립선언서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후 동생인 윌리엄 테일러에게 전달하였고, 윌리엄 테일러가 이를 몰래 숨겨 일본 도쿄에 가져간 후 전신으로 미국에 보냈다. 이렇게 전달된 독립선언서를 통해 3.1운동은 New York Times(뉴욕타임즈) 신문을 통해 1919년 3월 13일자 신문의 기사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딜쿠샤 가옥의 여러 방에서 딜쿠샤에서 앨버트 테일러의 편지와 기사, 테일러 일가의 기증품, 당시의 상태를 재현한 가구들, 메리 테일러의 그림 작품 등을 작은 테마별로 관람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방은  2층의 '연합통신 통신원 앨버트 W.테일러'에 대한 전시관이었다. 앨버트 테일러는  3.1운동 외에도 제암리 학살사건 현장을 취재하였다.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 취재에 대한 실제 자료(편지, 기사, 보고서, 사진)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3.1 독립선언서의 해외타전
3.1 독립선언서의 해외 타전 ⓒ이주원
뉴욕타임즈 기사 입니다.
3.1운동에 관한 뉴욕타임즈 기사 ⓒ이주원

딜쿠샤에서는 금강산과 한옥이 담긴 풍경부터 초상화까지 다양한 메리 테일러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그림 작품으로 인해, 딜쿠샤에서 3.1운동을 세계에 전한 언론인의 진정함과 그림 속 우리나라의 풍경과 사람이 주는 아름다움을 한 공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 거주하던 테일러 부부는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후  일본군에게 끌려가 수용소에 구금되었고, 1942년 외국인추방령에 따라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1948년 6월 앨버트 테일러는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그후 아내 메리 테일러가 남편의 유해와 함께 일제로부터 추방된지  6년 만인 1948년 9월 한국에 입국하였으며,  앨버트 테일러의 유해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치되었다.
메리 테일러의 그림입니다
메리 테일러가 그린 여러 그림 작품들ⓒ이주원

세심한 복원 노력이 빛을 발한 앨버트 테일러 가옥

복원과 재현을 위해 배치되어 있는 가구들은 동시대의 가구를 직접 구입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전시된 자수화조도병풍과 주칠원반 모두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정성스럽게 딜쿠샤 복원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한다. 딜쿠샤는 붉은 벽돌과 한국전통 가구와 서양식 가구와 가옥구조가 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었다.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인 제니퍼 테일러는 대한민국과 관련된 가문의 유물들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딜쿠샤에 전시된 기증품 중에는 진품도 있지만,  온도 및 습도 관리와 도난 방지를 위해 진품은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하고 복제품을 전시한 것도 있다고 한다. 딜쿠샤에 담긴  더 자세한 이야기는 사전예약한 시간에 맞추어 해설과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자수화조도병풍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복원된 자수화조도병풍 ⓒ이주원
2층 가족의 거실이다. 가운데에 주칠원반이 있다.
2층 가족의 거실이다. 가운데에 주칠원반이 있다. ⓒ이주원

딜쿠샤는 3.1운동이 일어난 역사 뿐 아니라 3.1운동 소식을 전세계로 전달해준 고마운 인물인 앨버트 테일러의 삶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는 뜻깊은 곳이었다. 또한 딜쿠샤에 전시된 사진들을 통해 당시에 대한민국에 거주하던 외국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전시된 편지와 신문기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소중한 독립운동을 알린 외국 인물들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벽난로 위 테일러 가문의 사람들의 액자가 있습니다. 그 왼쪽에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벽난로 위 테일러 가문의 사람들의 액자가 있다. ⓒ이주원

딜쿠샤는 사전예약을 통해 무료관람을 할 수 있다. 딜쿠샤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나라 3.1운동의 역사를 언론에 알리고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세계에 알렸던 앨버트 테일러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지면 의미있을 것이다. 나아가 딜쿠샤를 통해 우리나라의 아프지만 자랑스러운  3.1운동의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언론이 가지는 가치와 영향력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딜쿠샤 전시관

○ 위치 : 서울 종로구 사직로 2길 17
○ 운영시간 : 09:00-18:00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입장료 : 무료
○ 관람신청: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https://yeyak.seoul.go.kr/main.web)에서 '딜쿠샤'로 검색, 사전 예약을 통한 해설 관람

시민기자 이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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