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경'이란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미국인
하이서울뉴스 박혜숙
발행일 2011.08.10. 00:00
미국인인 그녀가 자주 쓰는 한국어 중 하나인 '인연'. 처음 그 단어를 알게 된 것은 워싱턴에서 주한미국대사로 지명되었을 때, '그녀와 한국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라고 쓰인 한 신문을 보고서였다고 한다. 정말 그 '인연' 때문일까? 그녀는 70년대엔 젊은 대학생 봉사단으로, 80년대엔 열정 있는 외교관으로 한국 땅을 밟았고,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주한미국대사라는 직함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어느 누구보다 한국과 미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힘써왔으며, 익숙한 도구는 아니었지만, 트위터와 블로그 등 인터넷을 통해 많은 한국 사람들과 소통해온 주한미국대사, 캐슬린 스티븐스(한국 이름, 심은경). 이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아름다운 인연의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다. 인터넷을 통해 소통을 즐겼던 그녀답게, 서울시 파워블로거 몇 명과 함께 하이서울뉴스를 그녀의 집, 하비브 하우스(Habib House)로 초대해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 것. 장장 1시간 30분 넘게 진행된 서울을 떠나는 그녀의 이야기, 지금부터 만나보자.
처음 배운 한국말, "다방 갑시다!"
Q. 이번이 3번째 방문이셨습니다. 10년에 한 번꼴로 방문했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중에서도 서울의 첫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A. 1975년 여름, 예산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내려가기 전에 서울에 2~3일간 머물렀답니다. 지금 세종문화회관 맞은편에 작은 골목과 여관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여관의 작은 방에서 봉사단원으로 온 친구들과 함께 생활했어요. 짧게 생활했지만 많은 부분에 놀랐어요. 서울이 한 나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하수도 시스템이 없어서 사람들이 우물물을 길어 먹었고, 날도 찌는 듯 더웠지만 방엔 에어컨도 하나 없었죠. 에어컨이 있는 유일한 곳은 지금은 많이 사라진 다방뿐이어서 처음 배운 한국말이 "다방 갑시다!" 이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다방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죠. 다방은 커피숍으로 바뀌고 작은 집들은 아파트로 변신했어요. 무엇보다도 한강의 변화에 감동받았습니다. 예전엔 애물단지처럼 여기던 한강을 서울의 줄기로 인식하고, 서울시와 시민 모두가 한강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여 이젠 공원도, 푸른 녹지도 많아졌습니다. 과거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골목과 시장 몇 곳이 남아있는 건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Q. 서울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하는 곳이 있으신지요?
A. 제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가봐야 한다고 강요하는 곳은 북악산입니다.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가벼운 산행이지만, 여러 가지를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서울 전체를 보고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풍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죠. 사실 미국인에게 풍수는 가구의 위치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산에 올라보면 풍수를 통해 조선시대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생각해볼 수 있고, 남북전쟁 및 나무에 남은 흔적 등을 보며 1968년에 북한간첩단이 어떻게 내려왔는지부터 서울 전반의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서울시민들의 자신감입니다. 사실, 지난 60년 동안 북한과 긴장상태라는 안보문제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민들은 놀라운 경제성장과 번영을 이뤄냈고, 자유를 추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용기 있게 선택해왔습니다.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자유를 누리며 삶을 즐겨온 한국인의 자신감을 가르쳐주는 곳이 북악산입니다.
Q. 인기블로거로서 대사님은 블로그를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또한 한국의 여러 곳을 다니며 다양한 이야기를 올려주시는데, 탐방 장소 또는 글을 쓸 때 특별히 선정방법이 있으신지요?
A. 우선 아시다시피 저는 인터넷 세대는 아니에요. (웃음)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는 것을 결정하고 시도한 자체가 제겐 도전이었죠. 그래서 주변의 많은 대사관 직원들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 많은 한국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보통은 제가 영어로 쓰고 난 다음에, 다른 직원이 제가 한국어로 쓴다면 어떻게 글이 완성될까를 고려해 글을 완성해줍니다. 글의 주제나 탐방 장소의 경우 제가 고를 때도 있고 직원들이 소개해줄 때도 있어요. 사실 지난주의 경우에도 평창, 동강, 영월 등 여러 곳을 다녀오면서 각각의 매력에 빠져 모두 블로그에 소개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을 다 쓸 시간도 없고, 다 쓴다면 너무 지나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미국대사라는 사람의 앵글을 통해 비춰진 모습과 블로그를 접하는 독자층을 고려해 어떤 글을 쓸 지 선정합니다.
Q. 대사님 블로그에서 최근에 예산중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분을 다시 만났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 외에도 한국과 가진 특별한 만남의 인연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처음으로 알게 된 한국 여성이 떠오르네요. 제가 대학생 때 1972~73년까지 교환학생으로 홍콩에 갔던 적이 있었어요. 당시 중국사나 언어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다른 학생처럼 돈이 없다보니 영어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 때 제가 가르쳤던 분이 홍콩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그곳에 온 'Mrs. 도'라는 한국 여성이었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 그녀의 집에 가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그녀로부터 이화여대, 그녀가 기억하는 한국 전쟁, 그리고 자녀들에 대해 갖고 있는 희망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제가 영어를 많이 가르쳐드린 것 같진 않지만, 그분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의견을 명백히 표현할 수 있는 분이셨죠. 그리고 그분을 통해 들은 이야기로 인해 한국이 제게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됐습니다. 물론, 그 후에 아시아의 역사, 정책, 문화에 대해 직접 공부했지만, 그녀를 통해 경험한 한국의 이야기 덕분에 실제 한국에 왔을 때 더욱 느낄 수 있는 점들이 많이 있었어요.
유일하게 본 드라마, 대사관 직원이 빌려준 '가을동화'
Q.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드라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혹시 요즘 관심 있게 보신 한국 드라마가 있으시다면 소개해주세요.
A. 솔직히 드라마 볼 시간이 없어서 한 드라마를 꾸준히 보진 못했어요. 또한, 미국에 갔다가 최근 한국에 온 제 친구 말이 한국 드라마는 한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웃음) 그러나 2년 전 설날 즈음에 대사관 한국 지원이 '가을동화'라는 DVD를 빌려줬어요. 보통은 매일 밤 바쁜데 당시는 설날 즈음이라 주변도 조용해서 이틀 내내 드라마를 봤답니다. 내용은 여러분도 아시죠? 그 둘이 남매인데 남매가 아니고...(웃음) 반복적이며 몽환적인 그 드라마의 힘이랄까 계속 잔상에 남더군요. 개인적으로는 한국 영화를 좋아해서 DVD로 빌려 종종 보는 편이에요.
Q. 서울이 더욱 살기 좋은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무엇이 더욱 더 열려져야 한다고 보시나요?
A. 여성의 입장을 떠나, 과거에 한국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서울은 남녀노소 모두 살기에 좋은 곳으로 변했습니다. 대기질, 인프라, 문화 등 여러 면에서 놀랍도록 발전했고, 해마다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성들이 더욱 살기 좋은 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해결책은 꼭 서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일하는 여성의 육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노동력의 절반이 여성인 만큼, 또한,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의 경우 남성들과 커리어 패턴이 다를 수밖에 없는 만큼, 기업과 정부가 이 점에 대해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또 없습니다. 한국의 여성들이 더욱 긍정적인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 정치참여가 반드시 요구됩니다. 그런 면에서 누구든 앞에 나가서 이야기해야 하며, 그런 자를 비판하기보다 도리어 그들의 용기를 높이 사야한다고 봅니다. 물론 항상 앞에 서는 사람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만큼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 앞으로 나가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자리에 많은 여성들이 포함되길 바랍니다.
Q. 서울시가 4년 연속 UN공공행정상을 수상한 걸 알고 계신지요? 혹시 기억나는 정책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고, 앞으로 서울시에서 개발되어졌으면 하는 정책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먼저, 서울이 많은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에 대해 축하 인사를 전합니다. 한국에 사는 미국이자 외국인으로서 한국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해왔는데, 그 중 하나가 기술의 사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곧 워싱턴으로 돌아가는데 한국만큼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자동차등록 등이 한국만큼 편할 것 같진 않습니다. 서울에서 살았던 외국인으로서 한 가지 부탁을 하자면, 주민등록번호문제입니다. 외국인들은 영화예매 등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도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이유로 많은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서비스를 기획할 때, 외국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주민번호가 아닌 다른 식별번호(예, 외국인번호)를 입력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것이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부탁하는 문제입니다.
Q.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대사로 기억에 남고 싶으신가요?
A. (잠시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한 번 질문을 되새긴 후) 열심히 진정성을 갖고 일하면서, 양국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양국관계에 기여한 사람으로. 또한, 한국이 너무나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이뤄낸 업적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도 기억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과 새롭게 오실 성 김(Sung Kim)대사님께 조언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지난 3년 동안 저에게 열린 마음으로 조언해주신 많은 한국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또한, 제가 이곳에 있으면서 한미관계가 매우 강력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는 두 나라가 지난 수년 동안 중요한 역사를 공유해왔기 때문이겠죠. 이에 대해 당연시 여기기보다 지금까지 이룬 것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것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미래적인 관점을 갖고 노력해주길 부탁드립니다. 또한, Sung Kim 대사님은 스스로가 이 자리가 큰 특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일단은 이곳에 있으면서 즐기란 말을 전하고 싶고, 양국의 두 나라 국민들이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의 역할 잘 해내어 앞으로 더욱 견고한 관계가 되도록 힘써주길 바랍니다.
185cm쯤으로 보이는 큰 키, 노란 머리, 파란 눈. 분명 외모는 미국인이다. 하지만, '인연'이란 단어를 설명하면서 미소를 머금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영어로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대사님의 내면만큼은 한국인의 정서로 물든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을에 워싱턴으로 돌아가 우선은 조지타운 대학에서 한미관계에 관해 글을 쓰고 싶다는 그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겠지만, 어디에서든 한미관계에 기여하고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소망은 한국과의 '인연'을 끝까지 아름답게 지키고 싶다는 다짐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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