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주눅 들지 말자!

하이서울뉴스 이효순

발행일 2011.05.04. 00:00

수정일 2011.05.04. 00:00

조회 4,473

“아니, 이게 뭐야? 이럼 무대가 안 보이잖아. 저기 의자 좀 줘봐” 몇몇 스태프들만 오가던 여의도 한강공원의 하이서울페스티벌 공연 리허설 현장이 갑자기 시끌시끌해진다. 빨간 ‘츄리닝’에 치렁치렁 쉬폰 스커트를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빡빡머리 여자 때문이다. 앗, 그녀다.

객석 한 중간에 괴짜 무용가 안은미(49)와 나란히 앉았다. “하하하~ 이 패션이 20년 쯤 됐어요. 대단한 고집이죠. 다른 건 마음에 안 들어 못 입겠는데 어쩌겠어. 가끔 농담으로 요새 유행하는 거 내가 옛날에 다 입었던 거라고 해요. 실제 그렇기도 하고...”

모두 나와 즐길 수 있는 핑계 하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노처녀 춘향’ 등 그의 무용은 주제도 엉뚱하다. 공연에서 상반신 탈의쯤은 고민거리도 아닌 ‘자유로운 영혼’ 안은미. 그녀는 사람들이 살면서 별로 접할 일 없을 것이라 여기는 현대무용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거리감을 좁힌 사람이다. 이런 그녀가 2011하이서울페스티벌에 내놓은 작품은 <렛미세이섬씽>.

"현대의 사람들은 어떤 변화가 내 몸을 스쳐지나가는 지도 모르고 살죠. 요즘엔 이와같은 빠른 소통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는데 과거엔 책이 그 역할을 했어요. 그런 종이 책이 조금씩 자리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몇 천 년 우리의 친구였던 책을 떠나보내는 ‘사미인곡’같은 거라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내놓은 작품이에요. 책을 막 못살게 굴다 보내줘요. 책과 안 친한 사람들은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을 거고 책과 많이 살아온 사람들은 아마 감동이 있을 거예요.”

그녀는 하이서울페스티벌과 인연이 남다르다. 2008년과 2009년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던 것. 당시 ‘궁’(宮)이라는 주제를 정해 페스티벌에 우리만의 색을 넣었다. 아마도 이 축제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 지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를 가지고 놀러 나올 목적을 제공해야 움직이잖아요. ‘서울에서 페스티벌을 하니 와서 즐겨라’라고 그 이유를 하나 준거죠. 특히 한 번 움직이면 다 돈인데 공연이 무료니까 와서 편안하게 놀면 됩니다. 라이브 공연 보고 정신적인 치유도 좀 하고 밖에 나가 한 두 시간 자전거 타다 와서 또 다른 공연 보고... 우리가 가진 공감대를 같이 향유할 일이 많지 않은데 이번은 좋은 기회예요. 또 극장도 이런 천막이니 마음이 편해 좋아요. 괜히 돈 많이 내고 보면서 예술에 주눅 들 필요 없어요.”

좀 다른 질문이지만 그녀에게 자신 인생 최고의 페스티벌은 언제였는지 물었다.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피나 바우쉬 선생님에게 초대받아 공연한 거. 벌써 8년 전 일이지만 그런 세계적인 거장이 하는 페스티벌을 함께 공유했다는 건 어우~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라고 한다. 피나 바우쉬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무용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독일의 무용수. 당시 피나 바우쉬가 초청한 것을 계기로 안은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 후 사람들은 그녀를 아시아의 피나 바우쉬라고 했다. 안은미는 얼마 전에도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인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서울시향, 극단 목화와 함께 초청 받기도 했다.

저보다 괴짜 많아요
너무 열심히 무대를 휘저어 쉬어버린 목소리, 받아 적기 어려운 빠른 말투, 차려 입는데 1분도 안 걸릴 것 같은 옷차림 그리고 민낯이 그녀의 넘치는 에너지를 대변한다. 파격, 도발, 예측불허 등 자신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로 인한 중압감은 없는 지 물었더니 “없어요”라는 대답이 곧바로 이어진다.

“파격이라고 해서 꼭 뭘 깨부숴야 하나요? 제 공연은 모두 삶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다 나오는 생각들이에요. 다만 어제 누가 했던 것을 가지고 제 얘기를 할 순 없어요. 어제 했던 얘기를 또 하면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특히 요즘 사람들은 시청각이 너무 발달됐어요. 그래서 웬만한 걸로는 안 된다니까.”

알고보면 자신의 성격이 되게 무난하다며 눙치는 그녀의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난다. 옆에 앉아 있으니 괜히 몸이 들썩여지고 가라앉았던 기분이 붕붕 뜨는 것 같다. 그녀가 가진 에너지가 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저보다 괴짜 많아요. 뭐 물론 보통 사람이 가진 에너지 데시벨보다는 높겠죠. 이런 일 하는 사람이니까. 제가 가끔 특강이라도 가면 사람들이 ‘들어올 때부터 전기가 온다’고 말하기도 해요.”

아무리 ‘센’ 사람이고 놀면서 공연하고 공연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 죽겠다지만 그래도 창작의 고통마저도 모른 척 할 순 없을 것이다. “매일 머리 써서 뭘 결정하고 만들어 내는 건 중노동이에요. 일주일 정도의 에너지를 몰아서 하루 하루를 사는 느낌이랄까. 저희는 쓰는 뇌 근육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근육 무게 때문에 거의 매일 죽음의 능선을 왔다 갔다 하죠. 그래도 공연 하나씩 만들 때마다 느껴지는 전율, 바로 그것 때문에 이걸 계속할 수 있는 거죠.”

어떤 사람은 뭔가 집중해야 하거나 창작의 고통을 느낄 때 머리를 빡빡 미는데 자를 머리가 없으니 반대로 길러보는 건 어떠냐고 했더니 “가발도 쓰고 모자도 쓴다. 요샌 헤어밴드를 하는데, 얼마나 귀엽다고...”란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자, 오케이. 나 이제 일해야되요.” 그녀가 손벽을 한번 퍽 친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역시, 사라지는 뒷모습까지도 강렬하다. 그게 알록달록 의상과 빡빡 깎은 머리 때문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무용가 안은미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후 1990년대 초 뉴욕대 대학원에서 유학했다. 서울무용제 연기상, 맨해튼 예술재단 안무가상 등을 수상했다. 2000년대, 그녀가 10년 뉴욕 생활 10년을 접고 귀국,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2008, 2009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다. 영국의 한 비평가는 안은미를 “아시아의 피나 바우쉬”라며 극찬했다. 안은미의 춤은 몸으로 표현되는 섬세하고 특별한 언어, 신비한 색감, 역동적인 에너지, 유머를 보여준다. 그녀는 영화 <비트>와 <무사>를 만든 김성수 감독의 단편 <비명도시>(1993년)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했고 이재한 감독의 <컷 런스 딥>에도 출연했다. 영화 <미인>에서는 주인공들의 몸 연기를 연출했고 영화 <인터뷰>에서는 주인공 심은하의 춤을 지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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