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은 국익을 위한 태극전사가 아니다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07.01. 00:00

수정일 2014.07.01. 00:00

조회 2,887

김수현(사진 뉴시스)

[서울톡톡] 요즘 최고의 한류 스타로 떠오른 김수현이 동북공정 논란에 휩싸였다. 김수현과 전지현은 <별에서 온 그대> 이후 폭발한 인기를 바탕으로 중국에서 광고모델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간의 매출만 5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 헝다그룹의 생수 광고가 문제가 됐다. 이 생수가 취수원을 장백산이라고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장백산이 백두산을 중국권역으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사용되는 명칭이어서 결국 김수현 등이 중국 동북공정에 이용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놀란 김수현의 소속사는 광고 계약을 철회하겠다고 하였으나 이번엔 중국 쪽과 마찰이 생겼고, 결국 광고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자 이번엔 한국의 네티즌이 돈 때문에 말을 바꾸고 나라를 저버렸다며 김수현을 더욱 비난했고 국내의 많은 매체들도 이에 동조한 사건이다.

여기엔 오해가 있다. 동북공정은 현대에 생긴 것이나 장백산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름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장백산이 등장한다. 따라서 장백산을 동북공정의 일환이라고만 단정하기는 힘들다. 네티즌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사건을 독도 문제와 겹쳐보기 때문인데, 이 또한 오해의 여지가 있다. 독도는 우리 땅인데 일본이 멋대로 이름을 바꿔 부르며 영토침탈의 야욕을 보인다. 반면에 백두산은 우리만의 땅이 아니다. 한중국경이 백두산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중국 땅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영토에 대해 이름 짓고 수자원을 이용하는 것이 우리 자유인 것처럼, 중국도 그들의 영토에 대해 자유롭게 이름 부르고 이용할 권리가 있다.

다만 역사적으로 우리가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신성시해왔기 때문에 이 산이 남의 땅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한류 스타가 나서서 그 산이 한민족의 백두산임을 확고하게 알려주길 바라는데, 거꾸로 중국 쪽 이름이 새겨진 상품의 모델로 나선다니 비난이 폭주한 것이다.

여기엔 대중문화인이 국익을 위해 나서주기를 원하는 우리의 기본정서가 깔려있다. 싸이가 국제가수로 떴을 때 싸이에게 '독도는 한국땅'을 선언하라고 요구하는 네티즌 여론이 있었다. 카라가 일본에서 인기 가수로 뜨자 이번엔 카라에게 '독도는 한국땅' 선언을 요구했다. 심지어 카라가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일개 네티즌도 아닌 국내 매체의 정식 기자가 카라에게 독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한 적도 있다. 이런 일들이 다 대중문화인을 국익 증진을 위한 태극 전사, 국위 선양의 첨병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그러나 대중문화인은 국정원 요원도 아니고 외교부 직원도 아니다. 그저 엔터테이너일 뿐이다. 그들에게 국제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뛰어들어 태극전사의 역할을 하라고 해선 안 된다. 한국에 수많은 팝가수, 헐리우드 스타들이 오지만 그중에 아무도 아메리카의 국익을 내세우며 행동하지 않는다. 아메리카의 영토 문제로 열을 올리지도 않는다. 그저 작품 홍보 정도만 할 뿐이다.

대중문화인은 국제적인 차원에선 이렇게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단지 즐거운 엔터테이너 정도로 활동해야 한다. 그래야 각국의 대중에게 물처럼 스며들어 인기를 극대화할 수 있다. 만약 이번에 김수현이 생수 광고를 취소했다면 중국의 반한감정을 부채질하는 결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면 한류의 확산에 치명적인 해가 된다.

단지 즐거운 콘텐츠로 물처럼 스며든 후 무의식적으로 그 나라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 대중문화의 진정한 힘이다. 바로 그래서 대중문화를 소프트파워라고 하는 것이고, 국가의 이해를 직접적으로 관철시키는 것은 하드파워로서 소프트파워의 영역이 아니다. 대중문화인이 국제정치적 문제와 분리돼야 문화적 영향력이 극대화돼 진정한 국익 증진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연예인에게 대놓고 국익을 외치라고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국익을 저해하는 자살골이다. 보다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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