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스케이팅의 살아있는 전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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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0.04.16. 00:00
김대진: 그런데 말이예요. 이규혁 선수를 보면, 성격이 매우 차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성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무래도 스피드 스케이팅이 기록경기다 보니까 차분해 보이기도 하고, 냉정하게 보이기도 할 거예요. 실제로도 개인마다 성격의 차이는 있지만 신중하고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 종목이죠. 시합에 나가면서 성격도 이쪽으로 바꾸어 가야 하구요. 굉장히 심도 깊은 질문이십니다.(모두 웃음). 조윤주: 요즘 근황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 주세요. 한 달 정도 계획해서 여행 비슷하게 혼자 쉬고 있어요. 가끔 주말에는 시간되면 친구들도 만나고 평소 못 봤던 TV 프로그램이나 책도 보구요. 밴쿠버에서 오자마자 좀 바빴거든요. 좀 뒤죽박죽이었어요. 지금은 제게 주어진 휴식기간인 것 같아요. 문명선: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책, 자기 계발서를 읽어요. (공무원들이랑 비슷하다는 진행자의 말에) 아, 제가 그 쪽에 있으니까요. 서울시청 소속이니까요.(모두 웃음). 조윤주: 문화생활도 좋아하시는지요? 영화감상도 좋아하고 연극이나 뮤지컬도 좋아해요. 저 같은 경우엔 시간이 한정돼 있어서 주중에는 훈련을 하고 주말에만 잠깐씩 시간을 낼 수 있잖아요. 물론 연극 볼래 친구들이랑 술 마실래 그러면 친구들이랑 술마시는 편이예요(모두 웃음).
조윤주: 스피드 스케이팅 말고 좋아하는 운동 있으세요? 웨이크보드 아세요? 수상스키요. 여름에는 그거 하고 있어요.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야 되니까 스노우보드나 스키는 못타죠. 웨이크보드는 부상이 많아서 감독 선생님은 별로 안 좋아하시지만요.(모두 웃음) 아직까지는 큰 부상 없이 잘 놀고 있어요. (모두 웃음) 박민정: TV 출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얼마 전 KBS '승승장구'란 프로에 나와서 백지영 씨와 쿨의 유리 씨랑 친하다고 하셨는데 혹시 두 분 중 이성으로 느끼신 분이 있으신지요? 이성이요? 둘 다 오랜 친구들이예요. 물론 저보단 연상이긴 하지만 편하게 지내다 보니 친구 하기로 했죠. 굳이 두 분을 평가하자면 모두 다른 매력이 있어요. 그 매력은 다른 분들도 예상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번 올림픽에서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슬프다는 내색을 못했어요. 그때 그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마음 속 감정을 털어 놓을 수 있었어요. 그만큼 저에겐 편한 친구입니다.
박민정: 부모님과 특히 외할머니께 굉장히 잘 하시는 걸로 소문나 있는데요. 결혼을 생각하시더라도 가족들의 생각을 존중하실 것 같아요. 혹시 현재 여자친구가 있으신지, 혹은 결혼은 언제쯤 생각하시고, 배우자는 어떤 분이시길 바라시는지 궁금해요. 요즘 들어 부쩍 여자 친구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요. 현재 여자친구는 없지만 나이가 있는 만큼 이젠 누군가를 만나면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우선 대화가 잘 통했으면 좋겠고, 취미생활을 함께 공유했으면 해요. 가령 제가 좋아하는 웨이크보드를 같이 즐긴다든가, 저도 상대방의 취미가 있다면 시간 내서 배워보고 싶구요. 사실 외할머니께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아낌없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 분이거든요. 훈련하면서 자주 못 뵜는데 외할머니께서는 제가 운동하는 데 지장이 있을까봐 전화도 쉽게 못하세요. 분명 휴식 시간인데도 쉬는 것까지도 방해 할까봐 신경 쓰시죠. 제가 전화하면 너무 반가워 하시면서도 전화비 많이 나온다며 금방 끊으시는 분이세요. 그런 사랑을 받고 자라서인지 특히 배우자는 외할머니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사실 제가 좋아서 데려온 사람이라면 무조건 좋아해 주실 분이지만요. 만약 결혼을 한다면 2~3년 후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배우자는 자기 일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두었으면 좋겠고,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해요. 김대진: 이제까지 선수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와 메달은 어느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운동 선수라면 모든 메달을 기억할 거예요. 그 순간 때문에 오랜 시간 수많은 고통을 이겨 내면서 운동을 하게 되니까요. 의미있는 대회를 꼽으라면, 2008년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두번째 우승했을 때예요. 왜냐하면 전년에 이미 우승을 했었고, 우승후보였지만 더 강력한 후보가 있었거든요. 그 선수도 주니어 때부터 훈련을 해왔고, 국제대회 경력이 화려했고, 기록도 저보다 더 좋아 사실 저조차도 2위일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을 뛰어넘고 역전 우승을 했기에 그 어느 대회보다 기억에 남아요. 장두현: 이규혁 선수는 세계 스피드 스케이팅 스프린트대회 3회 우승, 3차례 세계신기록(주니어대회 포함) 경신, 대한민국 국가대표 생활 20년, 올림픽 5회 연속 출전에 빛나는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맏형이자 국민적 영웅이죠.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배들도 이규혁 선수에게 상당 부분 금메달의 공을 돌렸습니다. 비록 올림픽에선 메달이 없지만, 함께 달리고 울었던 국민들로부터 메달리스트 이상으로 인기 있는 이규혁 선수가 스피드 스케이팅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많은 분들이 아시는 내용인데, 아버지는 스피드 스케이팅, 어머니는 피겨 스케이팅으로 두분 다 선수로서 정상에 서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스케이트를 타게 됐구요. 피가 남다르기 때문에 잘할 거라는 얘기를 부모님 아닌 다른 분들에게서 많이 듣고 자랐어요. 그래서 난 다르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어린 시기에 대표팀으로 선발됐고, 저보다 나이 어린 선수들과 시합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성장하고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부터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당연히 제가 올림픽 메달을 딸 거라는 얘기가 나왔죠. 하지만 정작 올림픽에 실패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요. 그게 아마 전환점이 됐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 고대에서 특강을 하게 돼 옛날 일들을 정리하다 보니 저한테 롤 모델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예전에도 롤 모델에 관한 질문은 많이 받았지만 "없다"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잊고 살았던 거예요. 1994년도 월드컵 시리즈였어요. 올림픽 전에 월드컵 시리즈가 있어요. 지금도 각국을 순회하면서 세계 랭킹전이라고 항상 보도되고 하는데,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월드컵 시리즈에 제가 처음 출전했던 거죠. 외국 선수들이 다 잘생기고 덩치도 좋고 멋있어서 구경하는 것 자체로 너무 재미있었는데, 그 때 한 미국선수를 봤어요. 댄 젠슨. 지금도 유명한 선수인데요. 1988년도인가 프랑스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우승 후보였는데 가족 중 한 분이 돌아가셔서 경기 당일날 심리적 변화 때문에 결국 실패했고, 그것이 마지막 도전이었죠. 그 선수가 맨 마지막 시합을 하는데, 스타트에서 피니시까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키가 2미터에 가깝고 덩치가 좋은 선수인데도 극도로 섬세한 스케이팅을 했었어요. 그 선수가 500미터 골인했을 때 한 동안 적막이 흐르더라구요. 그러고 나서 함성이 들렸죠. 세계 신기록이 나온 거죠. 그것도 인간이 35초대 벽을 깬 거였어요. 하지만 관중들과 선수들의 모습이 더 인상 깊었어요. 처음에는 놀라서 관중들도 아무 말 못했어요. 원래 끝나자마자 함성이 나오고 그러는데 잠깐 소름끼치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열광의 환호가 들렸죠. 다 자기 일처럼 기뻐했는데, 심지어 메달을 따려고 나왔던 다른 선수들까지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어요. 그 때 스피드 스케이팅에 대한 매력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중3때였어요. 두 달 뒤 올림픽 경기를 했죠. 500미터 시합을 또 했어요. 그 선수가 메달을 못 따더라구요. 자기가 하던 대로만 했으면 1등인데, 어린 맘에도 안타까웠어요. 결국 1000미터에서는 마지막으로 우승하더라구요. 1000미터에서 우승할 확률이 없었는데두요. 당시 메달을 받으면서 그 선수가 짓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나는데, 웃고 있지만, 너무 환하게 웃고 있지만, 그 안에 뭔가 다른 게 있었어요. 어릴 때는 메달 따면 기쁜 표정이 그런 얼굴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 표정의 의미를 좀 알 것 같아요. 사실 밴쿠버에서 500미터 실패했을 때도 그 선수 생각을 좀 했었어요. 500미터에 실패했지만 1000미터에서 성공했으니까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명선: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인 이상화 선수 등 후배 선수들은 하나같이 이규혁 선수를 멘토라고 지명했습니다. 정작 이규혁 선수에게 직접 큰 도움을 줬던 멘토는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한 사람을 지명하기는 참 어려워요. 운동을 오래 한 만큼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그리고 후배들이 저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지만 저도 후배들에게 배운 게 있거든요. 만약 그 친구들이 없었으면 제가 세계 선수권을 제패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아요. 세계 선수권을 제패한 시기가 후배들이 저를 이기기 시작한 때부터거든요. 그 전엔 저 혼자였었어요. 라이벌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에 해설하셨던 제갈성렬 형은 오랜 시간 같이 있었는데요. 제가 막내일 때 대표팀 주장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고생할 때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반면 제가 개인적으로 맺힌 것도 많아요. 저를 괴롭히기도 했으니깐요. (모두 웃음) 지금도 무슨 일이 있으면 형하고 많이 상의를 하구요. 많은 힘이 되죠. 박민정: 선수 생활을 하시면서 후회도 있으셨을 텐데요. 혹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선수로서 또는 다른 어떤 일에 도전해보고 싶으신지요? 스케이트를 시작하고 단 한 번도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사실 저는 스케이트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후회는 올림픽에서 실패할 때마다 했었어요.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과거에 성공을 했다면 현재의 제가 없을 테니까요. 사실 20살 때부터 저에겐 기회가 계속 있어 왔어요. 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때부터죠. 그 해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2002년 1500m 세계신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에 충분히 메달권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유로 올림픽 때마다 메달을 획득할 거라는 예상들이 나왔는데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죠. 하지만 그 때 메달을 땄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예요. 지금처럼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선수는 안됐을 거예요. 그냥 대충 있다가 은퇴하지 않았을까요? 박민정: 선수에게 목표와 동기는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대단한 기량을 보여준 김연아 선수마저도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이 두려웠다고 해요. 이규혁 선수 또한 큰 경기였던 만큼 부담감이 컸을 겁니다. 심리전이 선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번 올림픽에 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심리전이에요. 세계대회 선수들의 수준은 거의 대등하고, 100분의 1초 싸움에서 기록의 차이는 크게 없다고 봐요. 결국 심리전이 결정적 요소인데 제가 그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패한 게 아닌가 싶어요. 김연아 선수도 올림픽에서 집중한 만큼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똑같은 집중력으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실력을 발휘하기란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는 분명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수임에 틀림없어요. (* 다음 호에 인터뷰 후반부가 이어집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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