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로 세상을 껴안다!

admin

발행일 2010.03.29. 00:00

수정일 2010.03.29. 00:00

조회 3,644

삶은 누구에게든 어렵다. 더하고 덜할 뿐. 이를 극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극과 극을 향해 소용돌이친다. 그래서일까.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에게선 깊이가 느껴진다. 다져진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편안함이 주변을 감싼다. 삶의 궤도를 벗어나 다시 찾기까지 인내로 버틴 자신과의 싸움. 한 사람을 원숙하게 만들기엔 부족함이 없었을 터. 여기 이 사람도 그렇다! 무에타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승화시킨 밝음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두 팔이 없는 무에타이 체육관 이기섭 관장, 그가 껴안은 세상은 어떤 형태일까?

무에타이의 본고장인 태국에서 더 유명한 임수정 선수 키워내

서대문구에 위치한 삼산이글 무에타이 체육관. 텅빈 체육관에서 오후 훈련 준비를 하고 있는 이기섭 관장.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른 체육관과 별반 다른 건 없지만 즐비하게 늘어선 트로피가 무언으로 말한다. 그 동안의 노고를. 운동으로 단련되어서 그런지 동안인 이기섭 관장(43). “미안합니다. 차를 대접하고 싶은데 팔이 이래서…….”라고 첫 인사를 전한다. 그가 말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트레이닝복 속의 양 팔이 의수(義手)임을. 주인 대신 객이 자연스럽게 차를 준비하는 것도 그가 가진 편안함 때문이리라. 마주앉아 시작된 그의 삶과 무에타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어떤 스포츠든 체육관에서 큰 수확은 우수한 선수를 배출하는 것이다. 또한 적절한 수의 관원이 있고 이 중에서 선수로 발굴할 수 있는 인재들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래야 체육관 운영의 즐거움이 생기는 법. 그러니 무에타이 미녀 선수로 잘 알려진 임수정 선수 발굴은 이기섭 관장이 가진 노하우의 결정체였다. 임수정 선수가 이곳 체육관을 찾은 계기는 다이어트 때문이었지만 그 후 상위권을 주름잡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무에타이는 옛 전쟁에서 사용한 전투기술인 만큼 과격할 터. 그러나 여성들도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과격하기만 한 것은 아닌가 보다. 이기섭 관장은 “임선수는 다이어트 때문에 왔지만 기질과 가능성을 봤죠. 그래서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경찰, 군인 등이라고 말해서,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진짜 성실하게 열심히 하는 친구입니다. 오늘도 일본 대회 참가하려고 출국 준비 중”이라며 임 선수의 소식을 전한다.

사고와 방황, 그리고 한 사람으로 다시 서기까지

격투기를 배운다는 건 쉬운 선택도 아니지만, 꾸준히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살면서 한번씩은 영화처럼 악당을 물리치는 공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것은 일대 일이어도 좋고, 몇 대 일이어도 좋다. 주인공처럼 팔다리를 시원스럽게 뻗어 악당을 쓰러트리는 ‘나’. 지치지 않는다. 돌려차기, 옆차기 심지어 날아서도 상대를 제압한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과연 영화에서처럼 시원스럽게 처치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게 되려면 아주 오래 수련을 해야 할 터. 그러니 스크린을 통하거나 경기 관람으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에타이 뿐만 아니라 K1, 권투 등의 격투기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기섭 관장의 가르침은 의외다. “꿈이 뭐니? 꿈이 있어야 목적이 생기고 나아갈 방향이 생기는 거야. 무에타이도 왜 하지?” 새로 온 관원에게 묻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그 자신이 방황했던 시절, 무기력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풀 수 없는 숙제였다.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은 뒤 건축학도로서의 꿈도 접고, 두려움에 몇 년을 방황했던 그 시간. 처절하게 혼자였고 멈춰버린 시간은 떼밀어도 가지 않아 초 단위로 곱씹을 만큼 고통의 시간이었다. 감전사고는 보상 한푼 받지 못한 채 두 팔로 내주었고, 고통의 시간 뒤 겨우 잡은 당구장 운영도 화재로 불타버려 설 곳을 잃었다. 살면서 ‘사람 도리’라는 것이 곧 돈 아니겠는가? 하다못해 결혼식, 돌잔치, 장례식조차 돈 없이는 마음만으로 사람 도리를 다 했다고 말할 수 없는 세상 아니겠는가? 더구나 두 팔이 없는 이기섭 관장에게는 더욱 가혹한 시간임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런 고통의 시간 앞에 빛을 비춰준 것은 친구였다.

무에타이를 접하며 삶의 희망 얻어

친구가 운영하던 체육관에서 가볍게 운동이라도 시작해보라고 권유했던 것이 이기섭 관장에겐 기회였다. 그저 관원에 불과했고 열심히 땀을 흘리다 보니 사범이 되었고, 또 체육관 관장이 된 것. 살면서 운이 다해 쇠할 때는 끝도 없는 추락을 하더니, 운이 상승할 때도 여러 기회들이 몰려온다. 삶이 주는 보상이다. 이기섭 관장은 “죽고 싶을 때 많았죠. 산에 올라 뛰어내리기도 했고……. 그것도 뜻대로 되는 건 아니더군요. 친구가 운동하자고 권유하지 않았음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고마운 친구예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장애를 가진 분들이 가끔 찾아와요. 부모님 손을 잡고 끌려오는 어린 친구도 있고. 저는 그들에게 말해요. 나도 사는데 넌 뭐가 부족하니? 그렇게 살려면 나가 죽어라.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말해요. 가혹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현실이고 사실이거든요. 그 좌절의 원인은 하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꿈! 꿈만 있으면 이런 장애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죠”라며 환하게 웃는다.

이기섭 관장의 손이 되어주는 이승현(16) 관원. “구기종목을 하다 바꿨는데 성취감도 느끼고 일단 나 자신이 강해지는 걸 느껴요. 그리고 관장님이 좋은 말씀을 자주 해주셔서 학교생활에도 도움이 되요. 제일 좋을 때는 운동 끝나고 맛있는 것 사주실 때”라며 부끄러워한다. 여려 보이지만 이승현 관원에게서 침착함이 느껴지는 것도 무에타이를 배운 효과일 것이다.

긍정의 마음가짐으로 두 손을 모아 이마에

가끔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에 '그릇' 크기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 그 크기를 가늠해보는 것 자체가 어쩌면 호기심 섞인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기심에는 안타까움, 격려와 희망, 일종의 안도감 등이 뒤섞인 아낌 없는 박수 또한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중요시하는 탓이거나, 현대병인 인간관계의 단절, 편견이란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탓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저마다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장애를 가지고 있어 희망을 찾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릇 크기로 본받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하는 머릿속 산수로 셈하고 있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나와 다른 타인. 오히려 두 팔이 없으면서도 자유로운 이기섭 관장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놓아야 할 것과 쥐어야 할 것들이 명백해질 터. 이 또한 타인을 통한 삶의 교훈이 아닐지. 삶은 생방송이기 때문이다. 희망전도사 닉 부이치치에게서 뿜어 나오는 긍정의 힘. 그리고 이기섭 관장에게서 느껴지는 긍정의 힘. 그 원천은 ‘마음가짐’에 있다고 결론 내어본다. 무에타이의 인사법인 두 손을 모아 이마에 대고 '반복이 곧 힘이다'라는 관훈을 되새긴다.

시민기자/장경아
jka5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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