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의사`를 깨울 때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5.09. 00:00

수정일 2014.10.05. 20:02

조회 1,549

꽃(사진 wow서울)

모든 환자 안에는 자신을 고칠 수 있는 의사가 살고 있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서울톡톡] "내 병은 내가 안다"는 말은 때로 진찰이나 치료를 거부하는 미련한 고집으로 들리곤 한다. 자가 진단이나 자가 처방이라는 위험한 착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물론 뚜렷한 병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지 않으려 버티다가 치료 시점을 놓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니 대체의학이니 하는 방법에 의존하다가 병을 더 키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말하는 환자 자신 속에 있는 의사는 이런 고집쟁이나 미련퉁이와는 다르다. 스스로 질병을 진단하고 돌보아 고칠 수 있는 의사란 바로 자연의 힘이다. 자연의 복원력과 생명력이야말로 질병의 진정한 치유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히포크라테스는 또 다른 말로 이러한 환자 안의 의사를 격려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때로 좋은 처방이 될 수 있다고.

과학의 발전에 발맞추어 의학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던 전염병의 예방약이 발명되고, 소아마비나 천연두처럼 평생의 삶에 흔적을 남기는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도 광범하게 시행된다. 예방의학뿐만 아니라 외과적 수술과 약물 치료에 의한 치료의학도 비약적으로 발전해, 바야흐로 '100세 시대'라는 놀라운 수명 연장의 효과를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질병에 시달린다. 원인 불명의 불치병과 난치병이 존재하고, 어떤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와 신종 바이러스가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우울증과 조울증, 공황장애 등 육체의 질병 못지않게 삶을 위협하는 정신질환이 나날이 증가한다. 질병은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인 듯, 숙명인 듯도 하다.

어쩌면 질병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사실보다, 삶의 근본을 뒤흔든다는 의미에서 더 고통스럽다. 환자복을 입는 순간 그의 생애 전부는 지워지고 오로지 병명과 진행 경과만이 남는다. 환자는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로서, 때로는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려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거나 죽는다. 바야흐로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잃고 '타자화'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이채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악성종양을 판정받은 암환자들에게 장애인과 노숙인 등 타인을 돕는 봉사 활동을 시켰더니, 안정과 휴식이라는 명분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환자들보다 수술이나 항암치료의 효과가 훨씬 좋았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보살핌을 받기보다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데서 기쁨이 생긴다. 세상에서 밀려난 덤받이가 아니라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의식이 면역력을 높인다. 그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의지와 욕구야말로 스스로를 살리는 명의(名義)인 것이다.

그래서 히포크라테스는 가만히 덧붙인다. 의사로서 이미 의사인 이들을 곁에서 돕는 방법은 때때로 치유하고, 종종 치료하고, 항상 위로하는 것뿐이라고(Cure Sometimes, Treat Often, Comfort Always). 몸만이 아니라 마음을 돌볼 의사가 절실한 나날이다. 내 병을 내가 알기 위해 진중히 성찰하고, 내 병을 내가 고치기 위해 힘껏 북돋울 일이다. 끝끝내 아픈 나를 껴안아 일으킬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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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자연치유 #마음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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