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리의 아버지
admin
발행일 2010.01.27. 00:00
다락방에 숨어서, 이불 속에서 몰래 만화 그리던 소년 테가 다 떨어진 모자, 낡은 점퍼, 그리고 빛이 바랜 금테 안경이 강주배 화백의 첫인상이었다. 그는 추운 날씨에 몸을 구부린 채 점퍼에 손을 집어넣고 걸어왔고, 그 모습은 흡사 만화 속의 무대리와 비슷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문하생으로 시작했으니 올해로 30년이 됐지." 강주배 화백이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순수미술을 통해 전국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화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에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흰 종이에 만화 캐릭터를 그리곤 했는데, 집안에서는 그런 강주배 화백을 탐탁해 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교육자 집안이었어. 아버지는 교장 선생님, 형들은 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지." 교장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형들과 다른 막내가 언제나 걱정거리였다. 그래서 만화를 그리는 광경을 들킬 때마다 혼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물론 강주배 화백은 수없이 혼이 나면서도 만화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만화에 대한 애정은 커져만 갔다. "재미있었기 때문이었지. 몰래 다락방에서 숨어서 그리기도 하고, 혼자 밤새 이불 속에서 그리기도 했어." 무작정 상경해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이 되고, 서른 한 살에 드디어 등단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서울로 도망치듯 올라왔지. 그리고 당시 '독고탁'으로 유명했던 이상무 선생님을 찾아갔어." 고향에서 만화를 그린다는 게 힘들 것 같았던 강화백은 집을 나와 서울로 향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만화 소년이 갈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다가 당시 '독고탁'으로 유명한 이상무 선생을 찾아갔다. 그리고 문하생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상무 선생은 그 자리에서 만화를 그려보라고 하고는 그를 문하생으로 받아들였다. 그것도 단순히 문하생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일반 문하생보다 한 단계 높은 자리의 역할을 맡겼다. 만화가 문하생은 초기에 주변을 정리하고 구석에서 그림 연습을 하게 마련이었는데, 강주배 화백은 그 단계를 넘어 스토리를 짜고 중요한 그림을 그리는 일을 맡은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와서 2년간 작품 활동을 했지. 그리고 군대에 갔고, 군대를 전역하면서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알았지." 제대 후 다시 문하생으로 들어가 6년 정도 수련을 했을 무렵이다. 드디어 서른 한 살의 강주배는 <아이큐점프>라는 만화잡지에 입문해 첫 연재를 시작하게 된다. 이 연재가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해 서른 아홉이 되었을 때는 신문사에서 청탁이 들어왔다. "사실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거절했지. 그런데 세 번 네 번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거야. 어쩔 수 없이 하기로 했어. 그러고 보면 내가 거절이 취미인 듯도 해(웃음)." 최초의 시트콤 만화 <무대리>의 탄생 "사실 만화를 그리면서 난 그리 큰 어려움이 없었던 거 같아. 새로운 이야기를 매일 떠올리기가 힘들지 않냐고 하지만, 그건 고통이 아니라 재미지." 강주배 화백이 <무대리>를 만든 것은 몇 편의 장편만화를 마친 다음이었다. 모 스포츠신문에서 연재를 하기 시작한 것인데, 매일 마감을 하다보면 이야기가 연속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는 생각을 전환해 다음 회를 기대하지 않고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시트콤형 만화를 처음으로 시작하게 됐다. 이런 방식이 인기를 얻으면서 지금은 대부분의 신문만화가 시트콤형을 따르고 있다. "99년 처음 연재 당시에 어떤 걸 해야 하나 고민을 좀 했지. 신문사에서 성인만화를 요구하니까 여자는 예쁘게 그리면 될 것 같았고, 남편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아기자기하고 엉뚱한 캐릭터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지. 하루 밤 고민으로 덜컥 무대리가 탄생하게 된 거야." 만화에도 그림의 섬세한 정도에 따라 그 종류가 구분된다. 신문연재의 경우에는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 섬세하게 그리는 실화는 불가능했고, 되도록이면 선이 간결한 그림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리고 보니 좀 못생겼지만 정이 가는 캐릭터가 생겨났는데, 그게 지금의 무대리였다. "처음 신문 연재를 할 때 선배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 당시 선배들은 그에게 신문 연재의 장단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줬다. 아마도 일주일 안에 신문사에서 고쳐야 할 점들에 대해 전화가 올 거라는 거였는데, 정말로 3일째 되던 날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은 있었는데, 그도 막상 전화가 오니까 놀랐다. '그림에 뭐가 잘못된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이야기가 너무 식상했나?' 하는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을 때 신문사 직원이 전해 온 건 다른 이야기였다. "독자들 난리가 났다.", "이대로면 대박 나겠다" 등의 말이었다.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이후 무대리 이야기에 매진을 하게 된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무대리가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사실 난 직장생활도 해 본 적 없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지 않는 편이지." 강주배 화백은 매일 신문연재를 하다 보니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주변에 그와 함께 술을 마셔 줄 수 있는 친구들 몇 명 그리고 문하생과 만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그에게 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회사생활도 안하고, 사람들도 잘 안 만나는데 그렇게 사실적인 직장생활을 그릴 수 있느냐고. "사실 난 아직도 무대리가 다니는 회사에서 뭘 파는지 몰라. 배경이 직장이지만, 사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 거 아니겠어." 강주배 화백은 자신이 그리는 그림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워 할 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 사는 모습이 대체로 다 똑같다는 말이다. 고민하는 것도 비슷하고, 갖고 싶은 것도 비슷하고, 하고 싶은 일도 비슷하다는 말이다. "10년 정도 무대리를 그리다보니까 이제는 무대리가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도 해. 그냥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려주고, 그가 울 때 함께 슬퍼해주고, 그가 웃을 때 함께 기뻐해주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지." 강주배 화백은 많은 사람들이 무대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가진 솔직함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무대리라는 엉뚱한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 "얼마 전부터는 무대리가 서울을 알리기 시작했지. 그러고 보면 무대리 참 많이 컸어." 강주배 화백은 얼마 전부터 서울시 홍보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실 만화를 그리면서 자신도 배우는 게 많단다.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 한번쯤 이용해 보고 싶은 곳들이 생긴다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무대리가 알려주고 있는 걸 보면, 무대리가 참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기도 한다. 아직도 컴퓨터가 아니라 종이에 연필과 펜으로 그리는 만화
"종이, 연필, 잉크, 펜, 손, 머리만 있으면 돼." 현재 강주배 화백은 모든 작업을 수작업을 통해서 진행하고 있다. 요즘 만화는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수작업이 편하다. 그렇게 종이, 연필, 잉크, 펜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서 보내곤 한다. 또 그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을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오후 3시에 잠에서 깨어난다고 말을 하곤 한다. 그 또한 일을 하는 동안에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강주배 화백은 이제 후배들이 더욱 재미있는 만화를 그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만화협회라는 곳에도 최근에 가입했다. 혼자서 작업을 하던 그가 자주 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만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만화가가 지속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도록 돕는 건 만화책을 사주는 거지(웃음)." 그는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후배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와의 편안한 대화 속에는 웃음과 재미가 있었고, 또한 한번 더 생각해 볼만한 의미가 있었다. 강주배 화백과 무대리, 그들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전해주면 좋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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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김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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