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을 가진 목소리

admin

발행일 2009.11.10. 00:00

수정일 2009.11.10. 00:00

조회 3,841

넓은 언덕과 그곳을 지나는 아기자기한 길은 오래된 꿈길을 닮은 듯했고, 전시장, 정자, 한옥, 카페, 그리고 전망대까지 이르는 리드미컬한 길은 누구라도 편안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국악인 김용우 씨와의 인터뷰 장소로 북서울 꿈의 숲을 선택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잠깐! 김용우라…. 낯선 이름이신가? 오늘의 젊은 예술가 상, KBS 국악대상 민요상, 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 등의 수상 경력과 데뷔 10주년을 맞기까지 꾸준히 작업해온 앨범 활동, 그리고 재밌기로 소문 난 콘서트 이력만으로 아직 그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41세지만 아직도 젊은 소리꾼으로 통하는 그는 뭔가 달랐다. 김용우라는 괴짜에게는 국악인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몇 가지 선입견들을 경쾌하게 벗어버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피리소리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했다

"제가 태어난 곳이 충북 영동이에요. 영동은 아시다시피 박연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죠. 그러다보니 어려서부터 국악을 자연스럽게 접한 것 같아요." 김용우 씨는 영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국악이 대중음악보다도 듣기 쉬운 곳이었던 영동은 그를 자연스럽게 국악의 세계로 이끌었다. 김용우 씨는 어린 시절 길가에서 놀다가, 또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악기 소리에 이끌려 오랫동안 그 주변에 앉아서 듣곤 했다고 회상한다.

"중학교 때 피리라는 악기를 알게 됐어요. 피리는 정말 대단한 악기에요. 그 조그만 녀석이 내는 소리를 듣다 보면 정말 놀랄 수밖에 없죠."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국악기를 배울 수 있는 특별활동에 가입했다. 자신이 들어오던 소리를 직접 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은 그리 좋지 못했다. 대부분 선배들이 쓰다가 두고 간 악기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도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입에 맞게 불기 위해 깎고 또 깎아 놓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김용우 씨는 마냥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그때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김용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국악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어요. 피리소리가 저를 국악이라는 세상으로 더욱 깊이 이끌었던 것이죠.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소리꾼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국악에는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피리에서 시작된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점점 다양한 악기로 옮겨가게 되었고, 악기 소리를 넘어서 사람들의 목소리에 매료되게 된다. 우리가 쉽게 알고 있는 판소리도 그의 관심을 끌었지만, 그보다도 그는 서민들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있는 민요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게 된다.

소리채집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나를 키웠다

"녹음에는 모든 것이 담기지 않습니다. 특히 소리는 파도와 같습니다. 그 잘게 부숴지는 물방울을 모두 주워서 담을 수 없는 것이죠. 기계음으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많은 것들에 소리의 진정한 매력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도 합니다." 김용우 씨는 댄스가수와 비교해서 소리의 매력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댄스가수들이 자신들의 파워와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앨범이라기보다는 무대 위에서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리도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순수 아날로그 소리다. 그렇기 때문에 앨범이나 TV에서는 진정한 소리를 경험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는 정말 우리의 소리를 듣고 싶다면 무대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우리의 소리라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변하기 때문에 똑같은 소리라도 수백, 수천 가지의 느낌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곳곳을 다녔죠. 그때 만난 사람들이 아직도 제 안에서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는 대학시절의 대부분을 소리를 채집하러 다녔다. 막걸리 몇 병을 들고, 때로는 돼지고기를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다닌 그 시절은 그에게 무엇보다도 값진 시간이었다. 그는 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어르신들을 찾았지만, 그 분들은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선물로 들려줬다. "많은 분들이 저를 직접 보시면 왜 이리 젊냐, 라고 말씀하세요. 노래를 들을 때는 온갖 애환을 다 겪은 사람 같은데, 겉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그런 말을 들을 때 그는 한번 웃는다. 김용우 씨는 자신이 소리를 찾으러 다니면서 만난 많은 분들의 이야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것이 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가 수집한 자료는 대부분 민요들로, 각 지방의 애환이 위트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 듣다 보면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재미도 있다고 한다. 특히 제주도 민요인 너영나영의 한 구절인 '백록담 올라갈 때 누이동생 하더니 한라산 올라가니 신랑각시가 된다'는 건 민요의 재미가 그대로 드러난 곡이기도 하다.

퓨전은 NO! 단지 섞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발견하고 싶다

"저는 다양한 음악을 듣고 즐겨요. 그러나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을 섞는 일은 하지 않아요." 요즘 많은 음악인들이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음악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김용우 씨에게 그건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젊은 소리꾼, 또는 퓨전 국악인이라는 이름도 달갑지만은 않다. 그는 그 나름의 매력을 더 살릴 수 있는 조합을 찾는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퓨전이라기보다는 새로움을 찾는 여정인 것이다. 서양악기, 국악기를 구분하지 않고, 베이스에 장구 하나만으로도 멋진 연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섞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의 발견이다.

"무언가를 가득 채워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이 만족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제 경우에는 그런 부분을 고집하다 종종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4집 <질꼬냉이>에 실린 '용천검'이라는 노래는 믹스다운 작업을 150번이나 해서 녹음비만 3천 만원 가까이 나오기도 했죠." 모르는 사람들은 김용우 씨를 보면 돈이 많아서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서 1년 내내 돈을 모으면서 기다린 적이 있다.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국악을 좀더 편안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거에요. 지금까지는 너무 어렵지 않았나 해요. 민요의 경우에는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노래입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국악인 김용우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예술가들에게는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할 법한 롤모델이 없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가르친 많은 스승들이 모두 롤모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기에 성공한 누군가를 닮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새로운 무언가? 그건 곧 민요였다. 노래를 부를 때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안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김용우 씨. 그의 목소리에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는 건, 목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소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목소리로 기억되는 사내가 여기 있다. 그와 만날 때, 그의 노래를 들을 때조차도 그 사실을 미처 몰랐다. 하지만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김용우란 남자를 떠올려 보려고 하는 순간,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오버랩 됐다. 굉장한 미남의 젊은이가 떠오르기도 하고,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또는 할머니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목소리가 허공 속에서 만들어 내는 마법인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요로워지는 국악인 김용우의 소리를 무료로 들어보고 싶다면 사이트(http://www.soriggun.co.kr/)를 방문하면 된다

시민기자/김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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