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admin

발행일 2009.09.29. 00:00

수정일 2009.09.29. 00:00

조회 3,818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분명 한 명이지만,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는 사람이다. 무슨 신기한 재주를 가진 기인일까? 아니다. 서울 시내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렇다면 연륜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인물일까? 결코 아니다. 이정화 주임은 이제 막 삼십줄에 들어선 경력 3년차의 공무원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회복지담당자로 일하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돌파구를 찾으려는 주민들과 최일선에서 만나며, 몇 년간의 짧은 세월 동안 평생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인생들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이 시대에 더욱 간절히 의지하게 되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오감으로 체험하고 있다. 이정화 씨로부터 복지를 필요로 하는 우리 이웃들의 목소리를 간접적으로 들어본다.

신수동주민센터를 찾은 시간은 그래도 좀 여유 있다는 오후 2시. 사회복지담당자 이정화 주임은 분주한 일손을 잠시 미루고 인터뷰를 위해 동주민센터 안에 준비된 작은 마을문고에서 기자와 마주 앉았다. 아기자기한 책들이 알록달록 꽂혀 있는 마을문고는 어린시절 책을 읽으며 오롯이 품고 있던 추억과 낭만을 떠올리게 할 만큼 정겨웠다.

“인터뷰 전화를 받고 나니 많이 긴장되던데요.” 선한 미소가 전화로 미리 접했던 목소리만큼 부드럽게 다가왔다. 가냘픈 몸이지만 야무진 눈매를 가진 그녀는 올해로 공무원 경력 3년째를 맞이하고 있단다. 요즘 그녀는 제3차 희망플러스통장 가입 신청기간인 관계로 아침 출근 이후부터 울려대는 문의 전화와 방문 상담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매일 5~15건 전화상담, 방문상담도 하루에 3~8건 정도 진행하고 있었다. 1,2차 희망플러스통장 접수 중에는 이런 상담 중에서 요건을 갖춘 80명 정도가 신청을 했고, 여기서 다시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거치게 되는데 최종 선발인원은 60%~70%선에 이른단다. 10월 6일까지 3차 가입자를 모집 중에 있는데 경쟁률은 1,2차의 경우와 비슷하게 약 3:1정도의 경쟁률을 예상하고 있었다.

“제 자신이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사실 공무원이란 직업이 꽤 편하고 조금은 쉬운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밖에서 보는 공무원 생활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단다. “첫 근무지가 마포구청 복지과였는데, 책상 앞에서 하는 일들보다는 현장에서 몸으로 뛰어야 하는 일들이 많았고, 넘기 어려운 제도의 벽 때문에 실망도 했었어요.” 처음엔 야심 차게 뭔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며 큰 힘이 되고 싶은 욕심이 앞서, 날마다 저소득 빈곤층에 대한 경제적, 물질적 지원을 위해 발 벗고 뛰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그녀는 업무상 주로 저소득 빈곤층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을 하게 되는데 그런 분들 중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알코올중독, 폭력, 우울증 등으로 생활을 포기하고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 많다고 귀띔한다.

“한번은 알코올 중독증이 심해 가족들도 다 떠나고 어렵게 혼자 사시는 박철호(가명) 씨를 담당하게 되었어요. 여러 가지 물질적인 지원도 하고, 술,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금주, 금연 교육프로그램과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었죠.” 처음에 박씨는 “정말 이 지긋지긋한 술을 꼭 끊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로 알고 열심히 치료도 받겠습니다”라고 다짐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 치료도 받지 않고 다시 예전의 무절제한 생활로 돌아가 버렸다. 이정화 주임은 “그 때는 정말 힘이 다 빠지고 허탈해서 한동안 맘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라고 회상한다.

이런 여러 번의 현장경험을 통해 그녀는 “무엇보다도 수혜자들의 자립의지가 어려운 생활을 떨쳐 버리는 데는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그녀가 맡고 있는 희망플러스 통장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또는 차상위복지급여자를 대상으로 한 일회성 복지 정책에서 벗어나 자립의지가 있는 분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개념의 복지정책이라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란다.

근로 능력이 있는 저소득 가구가 매월 정기적으로 5만원~20만원의 액수를 적립하면, 서울시와 민간 후원기관이 협력해서 같은 액수만큼을 추가로 적립해 주는 '희망플러스 통장'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면, 저소득 자녀를 위해서 같은 매칭 방식으로 교육자금을 적립해 주어 아동기부터 성년까지 빈곤을 벗어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데 '꿈나래 통장'은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2차 '희망플러스통장'에 선발된 김미영(가명) 씨 얘기를 들려주었다.

5년 전까지 김씨도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넉넉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남편의 갑작스런 암 발병으로 평온하던 가정은 순식간에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남편은 회사를 그만 두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시작했고, 실질적인 가장이 된 김씨가 늦게나마 작은 회사에 경리로 취업하여 생계를 꾸리기 시작하였다. 차상위 의료급여 수급자 책정을 통해 의료급여를 지원받긴 했지만, 계속되는 암 치료로 인해 가계 빚은 늘어갔고 전셋집도 규모를 줄여야만 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큰아들은 건설현장에서 시간제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진학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고, 고3인 작은아들은 어머니가 일을 나가면서 집안 살림과 아버지 간병을 불평 없이 도맡아 했다. 김씨는 그런 자녀들을 볼 때마다 늘 마음 아팠다. 현재의 어려움 그 자체보다 현재의 어려움 때문에 미래의 꿈을 키울 수 없음, 그것이 김씨의 남은 힘마저 잃게 하는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러던 중 '희망플러스 통장'을 알게 되고, 이것만은 꼭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라고 했다.

신청서의 저축목적과 계획을 써내려가면서 대학교 학사모를 쓰고 있는 작은 아들, 그런 동생을 보고 환히 웃고 있는 큰 아들, 모든 병을 훌훌 털고 우뚝 일어선 남편, 또 늦었지만 사회복지공부를 시작하는 김씨 본인의 모습을 꿈꾸며 희망으로 마음이 벅찼다. 그 마음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맘 졸이며 기다리던 최종 선발을 통보받고 김씨는 “이제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이 생겼어요”라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고, 현재의 어려운 상황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지만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늘 웃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정화 주임의 이야기는 계속 됐다. 특히 합격자 발표가 나고 나면 희비가 엇갈린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합격한 거 맞죠?'하며 몇 번이나 확인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좋아서 목이 매여 차마 말씀을 못하시는 분들이 있다. 반대로 자신처럼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을 몰라주고 탈락시켰다며 배신감과 분함을 분출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이것마저 떨어졌으니 이제는 어떡하냐며 울먹이시는 분들이 있다. 어느 쪽이건 이정화 주임은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그녀뿐이 아니라 '희망플러스 통장'의 일선에 있는 모든 담당자들이 느끼는 것일 거라고 덧붙인다.

그녀는 정말 많은 분들이 가입을 원하고 있지만 신청서 작성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은 신청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리고 1차 서류 접수 때 탈락했다가 다시 2차 '희망플러스 통장' 모집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하신 분들도 있으니 결코 '희망플러스 통장'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희망플러스통장에 선발되신 분들은 좀 힘들다고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적립해서 모두가 꼭 꿈을 이뤘으면 좋겠어요”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더불어 복지담당자의 업무 또한 늘어나지만 업무가 늘수록, 정책과 사업이 늘수록, 어려운 분들에 대한 도움과 지원 또한 늘어나 그분들의 웃음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절로 힘이 솟아난다는 이정화 주임.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가을의 오후 볕이 참 따뜻했다.

시민기자/이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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