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가장 슬픈 비극의 주인공

시민기자 이승철

발행일 2014.05.07. 00:00

수정일 2014.05.07. 00:00

조회 3,302

배봉산 아래 자리한 서울시립대학교 생태연못

[서울톡톡] 5월의 첫 주말과 이어진 어린이 날,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있는 서울시립대학교를 찾았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 건물들 사이로 잘 가꾸어진 화단과 나무들이 싱그럽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나지막한 언덕 아래 주변이 온통 화사한 꽃들로 뒤덮인 아담한 생태연못이 아름답다. 연못 뒤편에 있는 해발 110미터의 높지않은 언덕이 배봉산(拜峰山)이다.


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옛 '경성공립농업학교'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일제 때인 1918년에 가건물로 처음 세워졌던 서울시립대학교의 전신임을 말해주고 있다.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따라 오르자 그 길가 오른편에는 '배봉산 토루지'라는 또 다른 안내판이 서있다. 이 토루지(土壘址)는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는 유적지로 조선시대의 말을 사육하고 왕의 가마를 관리했던 사복시의 '살곶이 목장' 서편 경계로 알려진 유적이다.

조금 걸으면 곧 정상이 나타난다. 아주 낮은 산이어서 정상이래야 그저 평탄한 능선길일 뿐이다.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노라면 길가에 아담하고 예쁜 정자 하나가 나타난다. 그 정자 앞에 아주 슬픈 역사를 기록한 안내 표지판 하나가 서있다. 영우원(永祐園)터 표지판이다. 안내판을 읽어본 일행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슬픈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한다.


사도세자의 묘 '영우원' 터

정말 그랬다. 임금의 아들로 태어나 아직 젊은 나이에 임금인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왕세자, 작고 비좁은 뒤주 속에 갇혀 참혹한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비극은 일행의 말처럼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능가하는 참으로 슬픈 비극 중의 비극이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자신의 아들, 그것도 다음 보위를 이어갈 세자를 죽이다니, 그 죽임은 아버지인 왕이 자식에 대한 미움과 분노 때문에 저지른 일이었을까? 아니면 노론과 소론의 당쟁에 왕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정치적인 희생양이었을까? 아니면 역사의 숨은 뒷얘기처럼 나이 많은 영조임금의 치매 때문이었을까?

그 슬픈 역사가 묻혔던 동대문 밖의 나지막한 배봉산, 절하는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산 이름은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른 정조임금이 아버지 세도세자에 대한 안타까운 효심에서 날마다 부친의 묘소를 향해 절하였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이곳 산기슭에 영우원과 휘경원 등 왕실의 묘원이 마련되면서 길손들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기 때문에 배봉(拜峰)으로 불렸다는 설과 함께 산의 모양이 도성을 향하여 절하는 모습이어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싱그러운 5월의 숲속 길에서 만난 세도세자는 조선시대 가장 슬픈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간편구독 신청하기   친구에게 구독 권유하기


#배봉산 #동대문구 #영우원터 #토루지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