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저씨들의 사랑방, 효자동 `형제 이발관`
발행일 2013.04.16. 00:00
[서울톡톡] 봄을 맞아 집안 대청소와 함께 이발을 했다. 정말 오래간만에 미용실이 아닌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았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영화 <효자동 이발사>가 연상되는 '형제 이발관'이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가 이발소에 들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서울에 남아있는 이발관을 보면 참 반갑고 향수에 젖게 된다. 지금이야 남녀노소 누구나 자연스럽게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을 다듬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용실로 구분 지어졌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남자들도 미용실에 가기 시작하면서 동네에 성행하던 이발소는 시대에 밀려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
일명 '효자동 이발소'라고 불리는 형제 이발관은 옛날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운영 중이라 더 반가운 곳이었다. 이젠 지방의 소읍 동네나 서울역사박물관이나 가야지 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여전히 손님들로 북적이며 동네 아저씨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푹신한 쇼파에 앉아 진한 커피 믹스를 마시며 같이 기다리는 동네 아저씨,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는 시간도 흥미로웠다. 형제 이발관은 한 60년 정도 되었고, 지금의 김재호 이발사가 운영한 지는 25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손님 머릴 깎을 때도 늘 미소를 짓는 주인 아저씨는 원래 다른 곳에서 일하셨는데, 자꾸만 이발소가 이상한 아가씨들이 나오는 곳으로 변해가는 것이 싫어서 이곳으로 옮기셨단다.
십여년 만에 들른 형제 이발관은 추억 속의 이발관 그대로였다. 따듯한 온기를 불어주는 난로, 오래된 금고, 날 면도기, 머리감는 세면대 등등 어린이 손님도 없을텐데 아이들이 올라앉아 머리를 깎는 나무 받침대도 보관하고 있었다. 이발관 바깥에 있는 삼색등과 그 옆 "친절히 모시겠습니다"라고 써있는 간판도 처음 그대로란다. 주인 아저씨의 그런 노력 덕분에 형제 이발관은 다행히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잊고 살았던 어릴 적 추억들이 고스란히 깨어나는 것 같아 머리를 깎는 동안에도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형제 이발관은 청와대에서 가까운 덕택에 청와대 직원들이 단골 손님 중 하나란다. 청와대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청와대 직원들 특유의 8:2 가르마의 단정하고 깔끔한 이발이 아저씨 전문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형제 이발관 대신 동네 이름을 따서 '효자동 이발소'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청와대 직원들이 자주 오다보니 소문이 나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왔을 때 대통령 전속 이발사로 오라고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저씨는 깨끗이 거절하셨는데 이유는 지금의 가게와 단골손님들을 버릴 수가 없어서였다고. 그렇게 입소문을 타서 그런지 영화 <효자동 이발사> 제작진들이 찾아와 장소 제공 및 주연을 맡은 배우 송강호 씨에게 이발하고 면도하는 것 좀 가르쳐달라고 했지만 아저씨는 바쁘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각종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연이었지만 주인 아저씨는 굳이 그럴 필요를 못느껴 사양했단다.
아마 단골 손님들이 많아 그런 일로 부수입을 얻거나 홍보를 할 이유가 없었던 듯하다. 아닌게 아니라 주말이라 그런지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고 와서 예약까지 하는 분들도 있었다. 다들 자기 집처럼 커피를 들고 돌아다니며 얘기하는 모습이 정겨웠다. 청와대가 가까워서 그런지 정치 이야기도 많았다. 머리를 감겨준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뜨거운 물을 틀자 이발관 안이 따뜻한 수증기로 촉촉해진다. 이곳은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곳이 아니라 한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세상살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랑방이었다.
○ 찾아가는 길 :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 - 자하문로 17길, 청운효자동 자치회관 건너편
○ 이발료 :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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