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내린 `3월의 눈`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혜원

발행일 2013.03.15. 00:00

수정일 2013.03.15. 00:00

조회 1,303

[서울톡톡] 서울역. 헤어짐과 만남의 장소에서 이제 쇼핑의 메카로 자리 잡아가고만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 서울역 뒤편에는 빨간 건물의 백성희장민호극장과 국립극장 소극장 판이 있다. 

리포터가 만난 <3월의 눈>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연극은 노부부 '장오'와 '이순'을 통해 한 세대가 저물어가는 모습과 그 안에 녹아있는 삶의 깊이를 담아냈다. 한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노부부의 삶에 대한 태도는 자칫 마냥 따뜻하기만 한 사랑이야기로 비칠 수 있는 극에 그 깊이를 더한다.

장오와 이순 역은 배우 변희봉과 백성희가 맡았다. '연기가 없는 연기를 하는 것'을 중점에 뒀다는 변희봉은 배우 백성희와 진짜 부부로 비춰질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작가 배삼식의 깔끔한 극작술, 연출가 손진책 특유의 고전적인 세련미는 배우들의 연기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반세기동안 국립극단을 지켜온 두 배우의 이름을 딴 백성희장민호극장은 살아있는 배우의 이름을 단 극장은 지구촌에 흔치 않고, 국내에서는 그 유래가 없어 그 의미를 더한다. 개관과 동시에 80세가 넘은 두 배우가 직접 연기를 하는 의미도 컸고, 작년에 작고하신 故 장민호 님을 대신하여 그 공백을 가득 채워낸 배우 변희봉은 극의 중심을 잘 잡아 준다.

잊을 수 없는 명대사가 있다.
"이젠 집을 비워줄 때가 된 게야. 내주고 갈 때가 온 거지..."

떠나갈 때 이렇게 멋진 말을 남기고 싶다. 재개발 열풍 속에 아버지 정 모르고 자란 큰 손자를 위해 마지막 남은 재산인 한옥집을 팔고 떠나면서 남긴 이 대사. 새로운 주인은 한옥집을 조각조각 떼어내 팔아버리고, 쓸만한 문짝과 마루, 목재들이 분해되는 과정이 장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장오는 3월의 눈 내리는 어느 날, 이순이 아직 완성하지 못한 빨간 가디건을 걸치고 떠난다. 그 모습에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 건 왜일까?

"살겠다고 살겠다고 발악해도 살기 힘든 세상에 죽겠다고 달려든 놈이야 그 놈은..."

하지만, 마지막 떠나는 장오의 대사에서 30년째 사체도 찾을 수 없는 아들에 대한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 자식간에는 이런 감정이 있나보다.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고, 끌어 안는다고 안을 수 없는 대상.

이 작품의 또 하나의 매력은 한옥 세트다. 연극 무대는 보통 협소한 편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좌석도 계단식으로 편안했다. 또 이 작품의 배경인 한옥 세트의 견고함에 자꾸 눈길이 갔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첫줄 관객부터 일어나 마치 야구장의 파도 응원과도 같은 기립박수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관객 중에는 중년의 부부도 물론 보였지만, 젊은 연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해도 좋을 만한 소박하지만 그 감동의 울림이 깊은 작품이다.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 손 꼭 잡고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3월이 가기 전 꼭 보길 강추한다.

■ 연극 <3월의 눈>
 ○ 관람기간 : 3월 23일(토)까지
 ○ 장소 : 백성희장민호극장 
 ○ 찾아가는 길 : 서울역 하차 1번 출구로 나가 공항철도 4번 출구로 가서
                        서부역 뒤 건너편 소아청소년병원 좌측의 빨간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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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희장민호극장 #3월의 눈 #변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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