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이 아니어도 좋다, 템플라이프
발행일 201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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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겨울 문턱. 낙엽이 떨어지고 적막한 날들이지만 스님에겐 수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뒹구는 낙엽의 사각거림마저 없다면 산사의 하루는 더디 갈 터.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마지막 잎새가 계절을 말해주고 무청 시래기 묶음이 겨울채비를 부추기고 있다.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의 세 봉우리가 있어 불려진 북한산의 옛 이름인 삼각산. 삼각산을 병풍삼아 같은 서울이지만 평균 2~3도의 온도 차이를 보이는 진관사에 겨울은 빨리 온다. 벌써 한 해를 돌아 수능기도를 올리는 신도들과, 마지막 가을을 즐기려는 등산객의 발품이 있는 곳. 이들에게 베푸는 점심공양도 후덕하다.
이런 모습들이 진관사에서는 일상이다. 종교가 다르거나 없는 이들이게는 또 다른 세계. 특히 수행하는 스님의 하루가 궁금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고향과 가족, 출가 이유 등의 질문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눈을 감아도 속세의 눈은 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님에 관한 사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는 귀동냥을 들어 침묵한다.
단지,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무릎, 팔꿈치, 손, 머리 등이 닿아야 하는 오체투지 예법을 배울 뿐이다. 화장기 하나 없음에도 맑은 비구니 스님의 얼굴. 마음의 평정을 얻은 것일까. 여전히 눈을 뜨고 있는 속세의 질문을 떠올리며 엉성한 자세로 예를 올린다. 아직은 몸에 익숙하지 않아 리듬감도 없고 어설프기만 하다.
당신과 나, 하나라는 의미의 양손을 모은 합장. 그리고 마음 비우기의 한 방법인 단전을 배워본다. 책상 다리를 하고 반쯤 감은 시선을 코 끝에 모은다. 배에 힘을 주고 두 손은 배꼽 밑에 둔다. 처져있던 양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치켜세워 자세를 잡는다. 5분간 명상의 시간이 주어졌다.
분명, 5분이라고 했다. 5분이란 일상에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 같은 시간일 뿐. 머릿속에는 잡다한 상념들이 떠다닌다. 일상의 온갖 생각들이 꽉 차있어 완전 ‘無’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마음비우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 또한 하나의 상념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애써 생각을 떨쳐도 장판 무늬를 따라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나는 없었다.
그렇게 5분은 1시간으로 바뀌어 더디 흘렀다. 독일에서 온 다른 참가자들은 책상다리의 어색함에 쥐가 나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에 맨밥으로 점심공양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오늘 산사의 체험은 어땠을까. 짧은 시간 동안, 큰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여행이 주는 묘미로써는 충분하다.
독일인 카롤라씨는 말한다. “삼배가 가장 어려웠어요. 절에 대해 익숙하지도 않지만, 절 한번 하는 데도 단계가 있어 새로웠습니다. 연꽃 만들기도 기억에 남아요.” 부드러운 눈매에 하체가 더 긴 그녀에게 절하는 예법은 어려웠을 것이다. 카롤라씨는 다시 투박한 손놀림으로 종이 연꽃을 만드는 데에 집중한다. 또 다른 참여자도 붙일 연꽃 잎을 세고, '스몰~'을 외치며 봉우리 진 연꽃을 만들어가고 있다.
법정 스님은 말했다. ‘나는 누구인가’란 물음이 화두였다고.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는 삶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이 물음에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일 것이다. 그 침묵에는 의외의 질문에 침잠해 들어가는 사색이 있을 터. 월서 스님은 “깨어 있고, 사려 깊은 사람, 마음이 고요하고 청정한 사람은 모든 사물을 올바르게 파악한다”라고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마음이 고요하길 바라는 이는 많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꼭 산사체험을 통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스님의 가르침대로 현재, 지금 하는 것에 집중하기. 밥 먹을 땐 밥을 먹고, 걸을 땐 걷는다.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논다. 자, 너무 쉽다. 그러나 어렵다. 당신은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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