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윤동주처럼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admin

발행일 2010.04.08. 00:00

수정일 2010.04.08. 00:00

조회 2,521

지난 4일 오전 9시 20분쯤 인사동에 도착했다. 윤동주 기념사업회와 계간 [서시]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인사동에서 매월 첫째 주 일요일마다 개최하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 걷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제일 먼저 도착한 기자는 일행을 기다리면서 고요한 인사동 아침 햇살 속을 산책했다. 가게 유리관 속에 진열된 골동품과 고미술품, 다양한 전통 공예품을 감상하면서 잠시 옛 정취에 빠질 수 있었다. 외국인과 젊은이들로 넘쳐나던 한낮의 거리와는 달리 막 잠에서 깨어난 인사동 골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인을 만나러 가기엔 더없이 맑고 투명한 봄날 아침이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행사를 주관하는 몇 분이 ‘인사동에서 윤동주 시인 언덕까지 걷기대회’ 라는 플래카드를 펼쳤다. 삼삼오오 모여든 시민들은 서로 낯선 얼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반갑게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북인사동마당에서 출발신호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북인사동마당-탑골공원-창덕궁-북촌한옥마을-삼청동-청와대 앞-청운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는 한 시간 반가량 소요됐다.

북촌한옥마을을 지날 때쯤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기자에게 말을 거는 한 분이 있었다. “북촌한옥마을은 사색하면서 걷기에 참 좋은 곳이지요. 저기 손때 묻은 나무대문 문고리 좀 봐요. 언젠가는 손바닥만한 집칸이라도 장만해서 흙내음 나는 한옥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이오순(60세) 씨는 살짝 자기소개를 하며 수필을 5년째 쓰고 있다고 했다. 그녀를 따라 나선 남편도 렌즈 속으로 한옥 담기에 눈빛이 바빠 보였다. 동행이 아름다운 부부의 한 컷이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이 마냥 좋아서 종로에서 왔다는 박세진(38세)씨, 어머니와 함께 인천에서 왔다는 초등학교 3학년 강중구 학생처럼 윤동주 걷기 대회는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을 잘 모르는 일반시민, 학생들과 함께 윤동주 시인의 언덕길을 오르면서 건강 다지기도 하고 잊혀져 가는 시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시인의 민족애와 문학관 또한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경호원이 서 있는 청와대 앞길을 지나서 청운동 쪽으로 경사진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멀리 하얀 벽에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 오르는 길’이라는 흘림체 글귀가 손짓한다. 청운공원 계단을 올라서 언덕으로 가는 길목엔 ‘시인 윤동주 영혼의 터’가 비문 속에 잠들어 있다. 그 앞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하나같이 시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묵념을 하게 된다. 이 영혼의 터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중국 지린성 룽징(용정)에 여행간 여러 지인들이 시인의 묘에서 한 줌씩 가져온 흙을 모아서 조성하였다고 한다. 시인이 1941년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할 때 인왕산 자락 청운공원의 언덕길을 오르며 쓴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십자가]와 같은 시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남아있는 지금, ‘윤동주 시인의 언덕’은 시적 상징성과 의미가 깊은 언덕길이다. 명촌동에서 태어나 서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민족의식을 키웠으며 일본 유학 시절 독립사상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구속 중 옥사를 당하기까지 시인의 일생은 근대 한민족의 가혹한 수난사를 기억하게 한다.

시인의 언덕에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서시]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이 곳은 최근에 서울 10대 야경의 명소로 지정될 만큼 서울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시상을 떠올리며 고뇌하는 시인이 바위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학창시절에 [서시]를 암송하며 시인의 맑고 순수한 영혼을 닮고 싶었던 적이 있다. 이 시대를 사는 많은 벗들이 한번쯤은 시인의 시를 읊조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시인의 시가 쓰여 있는 언덕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인이 주로 시상을 떠올렸다는 망향대가 보인다.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사색에 빠진 푸른 소나무 한 그루가 청년 윤동주처럼 서서 하늘을 우러러 보는 듯하다.

윤동주 시인 사랑에 빠진 윤동주 문학사상선양회 박영우 대표는 개인 사재로 중국에 있는 시인의 생가 터를 매입하기도 했다. 또한 종로구청의 후원에 힘입어 ‘윤동주 시인 언덕 걷기’ 외에도 ‘윤동주 문학상’, 계간 [서시], ‘윤동주 문학학교’ 등 많은 일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시인의 언덕에는 ‘서시정’과 ‘낭송의 무대’도 마련되어 있다. 언덕에 앉아 시인의 시를 낭송하며 간식과 다과를 나누는 정겨움도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의 하나다. 언덕자락마다 뿌려놓은 민들레 꽃씨가 수천 송이로 피어나 시인의 언덕을 노랗게 물들일 때쯤에는 시심을 사로잡는 문학의 명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윤동주 문화제

5월 1일~ 5월 10일까지 ‘윤동주 문화제’가 인사동에서 성대하게 열릴 예정이다. 북인사동마당에서 한국 대표 시인 1,000명의 시집 축제와 다양한 교육 문학서적을 전시한다. 행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는 약 30만 권의 시집과 문예지도 무료로 증정할 예정이다. 또한 ‘윤동주 문화제’ 기간 중 5월 2일 일요일 오전 10시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 걷기 대회’가 개최된다. 북인사동마당에서 출발하여 경복궁-청와대-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약 1시간 코스이며 집결장소는 북인사동마당 크라운베이커리 앞이다. 완주자 전원에게 기념주화 메달을 수여하며, 티셔츠, 윤동주 시낭송 CD, 음료 등을 증정한다. 행사 참가비는 만원. ‘윤동주 시인의 언덕 걷기대회’와 ‘윤동주 백일장’ 접수기간은 4월 7일~4월 25일까지며, 방문접수와 인터넷 접수 모두 가능하다.

◈ 문의: 02) 765-0703, (010) 8543-7399, http://cafe.daum.net/ilovedongju
◈ 북인사동 가는 길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하차, 인사동 진입로 입구
◈ 윤동주 시인의 언덕 가는 길 :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버스 1020번 승차하여 자하문 고개 하차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버스 7022번 승차하여 자하문 고개 하차

시민기자/석성득
ssd63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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