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설희라는 여인과 한 남자가 있다
admin
발행일 2010.03.19. 00:00
공연 '美笑' 를 관람하러 나서며… 땅거미가 지는 저녁 무렵, 덕수궁 돌담길을 홀로 걸어 본 기억이 있는가! 그것도 봄과 겨울이 교차하는 덕수궁 돌담길의 저녁 길 내음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누구나 그 운치 있는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대만족인데 그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들어가 멋진 예술공연을 보고 올 수 있다니……. 한달음에 시청 앞에 도착하여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다. 그리고 걷는 동안 그 길을 함께 했던 수많은 지인과 추억들을 떠올려본다. 그 시절 그 지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잠시 혼자만의 회상에 빠져 걷는데, 약간의 술렁임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발길은 어느새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 도착해 있다. 오늘 볼 공연은 얼마 전까지 정동극장에서 공연됐다는 '美笑'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관람객들이 무리를 지어 대기하고 있다. 공연의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리플렛 한 장을 집어드는데 상냥한 미소를 띤 안내자 한 분이 전통차를 권해준다. 감사를 표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일본인 관광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어딘가를 향해 있다. 옛스런 소품이 가지런히 진열된 관광상품 코너. 둘러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공연시간이 다 되어 자리를 찾아 입장한다. 사물놀이, 춤으로 그려내는 '사랑' 애초에 이 공연이 외국 관객들을 위한 패키지 상품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그런지, 객석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다. 무대를 둘러보니, 공연이 시작될 막은 한옥 방문의 문풍지에 꽃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배경으로 꾸며져 있다. '참 고혹스럽다' 하고 느끼는 순간, 격자무늬의 막은 스크린으로 변하고 겨울 눈발이 내리는 가운데 사물놀이패가 등장하여 신나게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가 끝나고 막이 닫히고 다시 열리는가 싶더니 스크린에는 공연 줄거리를 알리는 자막이 서서히 떠오른다. "여기 ‘설희’라는 여인과 한 남자가 있다. 눈 내리는 어느 날, 두 남녀의 짧은 만남은 어느덧 사랑으로 이어지고 설희는 남자와의 재회를 기다린다. / 봄날의 따뜻한 햇살에 새싹이 솟아나듯 사랑에 빠진 두 남녀는 봄기운을 만끽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이내 예기치 못한 이별을 하게 된다. / 천둥번개와 폭풍우처럼 격정적으로 다가온 이별의 아픔을 통해 다시금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남녀는 한여름 밤 무수히 쏟아지는 별빛 아래 미래를 약속한다." 자막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렇게 단순한 줄거리로 70여 분간의 공연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자의 눈은 또 다시 스크린의 아름다운 영상에 고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려한 외모의 남녀 주인공들의 가슴 설레는 고운 첫 만남의 춤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고운 손짓과 발짓 속에는 서로에게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는 행복감과 수줍음의 미소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계절이 바뀌고 그들의 사랑이 우여곡절을 겪을 때마다 춤과 음악도 따라 바뀐다.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미모의 무희들과 명창이 등장해 고운 춤과 창을 선사하는가 하면, 우레와 같은 타악놀이가 등장하고, 북 연주단이 사랑의 활기를 선사하는가하면, 사물놀이가 주인공들의 환희를 신명나게 표현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혼례를 올린다. 이 최고조의 순간에 그들의 얼굴에선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하고 아름답다. 이것이 서울의 미소,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소로 외국 관객들에게는 남을 정도로. 우리의 전통, 이렇게 아름다웠나 공연장을 빠져나오니 마당에 공연진들이 나와 있다. 관람객과 더불어 기념촬영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동안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우리나라의 전통악기의 선율이 이렇게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었구나. 아쟁은 바이올린의 비브라토처럼 손놀림이 빠른 악기구나. 우리 여인들은 참 고운 자태를 가졌구나. 그리고 한복의 선은 움직일 때 더욱 아름답구나.
오늘 우리 예술의 고혹하고 잔잔한 아름다움과 더불어 화려함까지도 발견했다. 특히 사물놀이패는 이 공연에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해주었는데, 그 퍼포먼스는 정말 최고였다는 찬사를 아끼고 싶지 않다.
시민기자/서형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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