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마르고, 벽은 녹슬고, 시간은 멈춘
admin
발행일 2009.12.22. 00:00
시민기자 정연창 |
|
“기온이 계속 떨어지면서, 오늘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주 내내 강추위가 이어지면서, 밖에 나선 사람들은 모두 단단히 중무장한 모습입니다. 현재 서울의 기온은 영하 9.1도, 체감온도는 영하 12.5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내버스의 라디오에서는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버스 안은 난방기가 가동 중이지만 그래도 추운 듯 승객들은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있다. “이번 정류장은 선유도 공원입니다.” 정류장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끼익~.” 버스는 양화대교 중간에 정차한다. 무작정 내린 선유도공원 앞 버스정류장의 겨울 바람이 거세게 볼을 스친다. 좋은 계절도 많은데 하필이면 추운 겨울날 선유도공원을 찾은 이유는 뭘까? 지난해 우연히 찾아갔던 겨울의 선유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간이 멈춰진 듯 조용한 정원. 그리고 흐르던 물조차도 얼어붙어 움직임이 없는, 그 고요함과 아늑함이 좋았다. 시간이 멈춘 듯 녹슬고 이끼 낀 정수장 구조물과 ‘시간의 정원’을 보기 위해 추운 겨울날 선유도를 다시 찾아온 것이다. 사실, 선유도는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시대의 선유도는 선유봉(仙遊峯)이라는 매혹적인 산이었다. 신선이 놀던 산이라는 뜻으로 한강의 절경 중 하나였는데, 1925년 일제는 이곳에 살던 원주민을 양평동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한강 가에 홍수 방지 둑을 쌓는다며 아름다웠던 선유봉을 절반 이상 파헤쳐 놓았다. 그렇게 폐허가 된 선유도에 1978년, 정수장이 건설되었다. 펌프실과 여과지, 침전지 등 정수장 구조물이 들어서면서 선유도는 더 이상 무릉도원이라 불리던 아름다운 절경이 아니었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선유도는 서울 서남부 지역에 하루 40만 톤의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 구실을 했었다. 이렇게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선유도는 2000년, 과거의 정수장 건축구조물을 재활용하여 환경재생 생태공원이자 ‘물(水) 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선유도 일대 117,362㎡의 부지에 수질정화원, 수생식물원, 환경 물놀이터 등 다양한 수생식물로 가득 찬 생태숲이 조성되었다. 선유도가 공원으로 탈바꿈되는 과정에 기존의 시설을 그대로 보존하여 공원이 만들어지면서 더 이상의 파괴가 없이 공원으로 바뀐 것은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선유도로서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기존의 시설을 대폭 활용했기 때문에 공원 곳곳에는 정수장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기중기, 녹슨 철판, 송수펌프 등은 한강전시관의 예술작품이 되었고, 정수장의 지하구조물 중 기둥을 남기고 윗부분을 들어낸 기둥에는 넝쿨식물이 자라며 자연스럽게 녹색기둥이라는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저수조는 공연장으로 탈바꿈하였고, 거대한 파이프는 놀이터의 미끄럼틀이 되었다. 겨울이면 느낌이 좋은 곳, 시간의 정원에 앉아 겨울의 소리를 들어본다. 시간의 정원은 주제 정원들 중 기존의 구조물을 가장 온전하게 남겨 활용한 공간으로 그 안에 자라나는 식물들이 시간의 흔적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까닭에 시간의 정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옛 구조물의 형태를 살려 햇빛과 그늘, 습도를 조절함으로써 이곳은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대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고, 아직도 국화가 피어 있었다. 선유도를 둘러보면 과거의 한 흐름을 잘라낸 것 같은 단면이 군데군데 튀어나온다. 정수장 건물의 벽과 기둥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낡아가고 있다. 그러나 거대한 침전지와 콘크리트 사이로 봄을 준비하는 원추리와 물푸레나무가 이미 움을 틔우고 있다. 자연의 새 살이 돋아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봄이 오면 온갖 봄꽃으로, 여름이면 시원한 강바람과 어우러진 각종 공연으로, 가을과 겨울이면 그 나름대로 멋과 느낌이 있는 곳. 선유도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올 들어 가장 추웠다는 어느 날, 방한복과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하고 찾아간 겨울의 선유도에서 기자는 고요함 속의 명상과 과거의 흐름을 더듬어 보았다. 옷깃을 여미며 그곳을 찾을 당신에게도 소중한 여행이 될 것이다. |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