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최전선을 보고 오다

admin

발행일 2009.11.25. 00:00

수정일 2009.11.25. 00:00

조회 1,992



시민기자 최근모




겨울 햇살이 짧아졌다. 어스름이 내리는 경복궁 돌담길을 걷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옛 기무사 터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러 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요즘 미술의 주류가 모순과 아이러니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신호탄이라는 명패를 달고 나온 이번 전시는 그 흐름에 충실한 것이 아닌가? 지난 시대의 기무사 터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와 동시대의 미술 아티스트들이 만나 어떤 묘한 에너지를 뿜어낼지 궁금하다.

신호탄이란 군대에서 훈련 중 신호를 보내려고 쏘는 탄환을 말한다. 옛 기무사 터는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으로서 건립을 앞두고 새로운 신호를 전송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박동의 의미는 엄혹했던 시절의 상징인 이곳이 예술의 최전선으로 변신한다는 뜻이다.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보면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그 변동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예견해 볼 수 있다.

사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좋은 작품들도 많아서였지만 규모가 방대하기 때문이다. 지하를 포함한 3층까지 헤아릴 수 없는 전시작품들이 각각의 공간들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다. 옆 건물들까지 작품들이 있기에 하루에 다 둘러보기가 만만치 않다. 미술관 프로젝트, 공간변형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이 3가지 프로젝트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었는데 기자는 주로 공간변형 프로젝트에 주목했다. 옛 기무사라는 건물이 가진 이미지와 미술작품이 만났을 때 어떤 변형이 일어날지가 궁금했다. 그 호기심은 곧 흥미로운 풍경들로 눈앞에 펼쳐졌다.

너무나 많은 작품이 있기에 다 언급하기는 어렵다. 다만 공간변형 프로젝트에서 눈여겨본 이용백 작가의 <엔젤 솔져>를 보자. 강당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인공적으로 꽃밭을 만들고 꽃무늬 군복과 군화 수십 벌이 마련되어 있다. 적을 죽이기 위해 만든 군복의 얼룩무늬가 꽃무늬로 바뀌고 그 군복을 입은 군인들은 꿈결 같은 꽃밭을 전진한다. 이 얼마나 멋진 상상력인가? 타인을 향한 총구가 바로 자기 자신을 향한다는 광고처럼 군대가 가진 위험성을 한순간에 평화의 의미로 바꾸어 놓았다.

어두운 이 층 복도. 천장에 매달린 최우람 작가의 기계 생명체는 스스로 발광하며 움직인다. 마치 이곳의 어두운 과거를 온전히 알고 있는 듯 소리 없이 흔들리며 입을 쩍 벌린다.

본관 건물 밖으로 나가면 어리둥절한 풍광이 펼쳐진다. 수송부 건물 한 단면을 나이프로 잘라낸 듯 내부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핑크색을 뒤집어쓴 건물은 마치 집창촌을 연상시키듯 한물간 뽕짝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건물 전면에 전경들이 쓰는 방패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방패 위에는 ‘POLICE’ 대신 이탈리아어로 행복을 뜻하는 ‘FELICE’가 적혀 있다. 공간변형 프로젝트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의도들이 옛 기무사 터와 절묘하게 맞아 새로운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본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플라스틱 소쿠리를 쌓아 올린 작품 전시가 이어진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복궁 처마 선이 놀랍도록 새롭다. 늘 그 자리에 있던 건축물도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을 달리한다. 앞으로 문화의 흐름과 동시대의 한국미술을 한자리에서 모두 맛보고 싶다면 옛 기무사 터로 가보자.

일 층에는 안내책자와 오디오 가이드가 마련되어 있다.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다.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옛 기무사 건물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쉬는 날은 없고 입장료는 무료다.

■ 옛 기무사 터 전시 ‘신호탄’ 안내

▷ 전시기간: 12월 6일까지
▷ 관람시간: 10시-18시(금, 토, 일요일은 21시까지)
▷ 관람료: 무료. 본관 1층에서 무료 오디오 가이드 있음.
▷ 교통편 및 기타 문의: http://seoul.mo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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