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해락의 꿈
admin
발행일 2009.10.08. 00:00
시민기자 선하리 | ||||
| ||||
세계 최초의 근대 박물관은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영국의 애쉬몰리언 박물관(Ashmolean Museum of Art and Archaeology). 그렇다면 우리 나라 최초의 박물관은 무엇일까? 바로 1909년 11월 1일에 첫 공개된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황실 전용 전시실이었던 것을 국민들에게 개방하면서 시작된 한국의 박물관 역사가 어느덧 100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파란만장했던 시대의 물결 속에서도 인류의 문화유산을 발굴·보존해 나가는 데에 앞장서 온 우리의 박물관은 이제 약 400여 개의 다양한 전시시설로 발돋움하며 국민들에게 창조적인 미래의 앞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 ‘여민해락(與民偕樂)’>이 열리고 있다. ‘여민해락’, 즉 ‘백성과 더불어 즐기자’는 순종 황제의 뜻을 따라 한국 박물관 100년의 발자취와 미래를 국민들과 함께 되짚어 보자는 취지의 이번 전시전은, 국외에 소장되어 있는 귀중한 문화재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발견되어 정조의 탕평정치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조명해준 『정조어찰첩』과, ‘서동요’ 설화의 진위 논란을 불러일으킨 ‘백제 무왕의 황후(좌평 사택적덕의 딸)의 사리봉안기’ 등 미륵사지 석탑 유물들도 직접 볼 수 있어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번 전시전에는 유독 일본에 의해 빼앗겨서 국외 소장되어 있거나, 일본인들에게 구입하여 국내 소장하게 된 우리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1908년경 성행했던, 일본인들 사이의 고려시대 무덤 도굴 및 유물 매매로 많은 유물들이 그들의 손에 넘어 갔으며, 식민통치 업적 과시용으로 전락하고, 더욱이 그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과 ‘황국신민사관’을 주입시키기 데에 교묘하게 왜곡되기도 했던 우리 문화재의 수난 시대를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기 위함이다. 현재 미국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은제도금주전자’는 고려시대 금속공예품의 뛰어난 조형 예술을 보여주지만, 일제강점기 때에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넘어간 이후, 이렇게 특별 전시를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는 서글픈 우리 유산의 단적인 예다. 10월 7일까지 한정 공개했던 안견의 ‘몽유도원도’ 또한 마찬가지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회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지만 일본 덴리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지금, ‘우리 것’임에도 ‘남의 허락’을 받아야만 볼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단 9일간의 특별 공개 당시, 많은 이들이 줄을 서서 ‘몽유도원도’의 신비로운 별천지에 눈을 떼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현실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 많은 역사 속에서도 ‘우리 것은 우리가 지키자’라는 마음은 더욱더 빛을 발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극찬받는 한국 전통 문화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에 일조해왔다. 제실박물관의 첫 구입품 중 하나인 ‘청자상감포도문동채주자’가 대표적인 예다. 고려시대 때 빛을 발했던 청자 문화의 유물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도굴되는 가운데, 우리 것을 뺏기지 않겠다는 순종 황제의 강한 의지 덕택에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을 통해 영롱한 청자 빛깔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재를 직접 구입하고 수집하여 이를 나라에 기부해온 이들의 노력과, 발굴 및 연구에 힘을 쏟았던 대학 박물관들의 활약, 그리고 문화재를 보존·수리하는 보존과학의 발전 등은 우리 문화가 찬란한 미래로 나아가는 데에 밑거름이 되어 왔다.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문화재를 도굴하여 유출시키던 1930년대의 상황 속에서도, 한 개인에 의해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보존되어 온『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하여, 한반도의 구석기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공주 석장리 유적’이 한 대학 도서관에 의해 발굴, 조사된 모습 등은 바로 한국 박물관 100년을 지탱해온 힘이 무엇이었는가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박물관은 예술작품이나 나비표본처럼 우아하게 핀으로 꽂힌 채 사회와 일반 시민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공상과 고독의 전당이어서는 안 된다.” - ‘생활 속의 미술관/박물관’ 중에서. 로뮤. 1976. 이제 다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시대의 문턱에 선 우리의 박물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고 성장하게 될까 생각하며 전시관 출구를 나서니 박물관에 구경 온 아이들의 ‘깔깔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저 ‘놀러왔구나’라는 생각에 마냥 즐거워하는 듯 보였지만, 이 아이들이야말로 진정 ‘여민해락’의 뜻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가둬둔, 죽은 공간으로서의 박물관이 아니라 현대 사람들로 하여금 불어 넣어지는 생기로 살아 숨쉬며 자라나는 공간으로서의 박물관,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만나 함께 어우러져 즐기는 박물관. 더욱더 많은 이들이 찾아와 ‘여민해락’의 가치 실현과 창조의 숨결을 불어넣어주는 데에 함께 해주길 가슴 속 깊이 바라본다.
|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