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따라 오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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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11.20. 00:00
시민기자 장경아 | |||||
날씨가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지역 곳곳에 첫 눈이 왔다는 소식에 잿빛 하늘만 쳐다보게 되는 날이다. 날씨가 추워졌으니 오늘은 손님이 오시려나. 하얀 첫 손님이 오시려나. 11월 중순이 되었음에도 날씨가 춥지 않아 가을 속에 머물러 있는 듯해 좋았다. 아름다운 가을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러다 문득 카메라에 가을을 담지 못한 생각이 들었다. 은행잎이 눈처럼 쌓인 길을 찍고 싶었고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커다랗게 굴러다니는 길을 찍고 싶었다. 그리고 앙상한 것보다는 생명을 부여잡고 있는 나무를 찍고 싶었지만 이미 시기는 지나버렸다. 첫눈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하필 영하로 떨어진 날 그 길을 향해 달려갔다. 은행나무는 한두 잎 정도만 남고 떨어진 자신의 분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나마 오늘이 아니면 노랗게 빛나는 황금 밭을 볼 수 없을 터.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 길목에 잠시 멈춰 서서 그들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그렇게 찾게 된 서초구 양재천 산책로. 이곳의 나무는 아직 겨울 채비를 다 하지 못한 것 같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잎들도 색깔만 갈아입었고 떨어진 낙엽도 아직은 싱싱하다. 낙엽도 제 색깔이 있다. 막 떨어져서 뒹굴 때는 밝은 갈색을 띠고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 지면서 부석거린다. 여기저기로 불어오는 바람에 치여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낙엽. 자연의 순환이란 신비롭기만 하다. 낙엽은 영양분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 내년 봄에 더 많은 잎을 피워낼 것이다. 양재천 길 따라 늘어선 플라타너스의 높은 키만큼이나 커다란 잎들을 살포시 밟으니 서석서걱 소리 내어 맞는다. 송파구 올림픽 공원 외곽 산책로. 공원이 4면이라고 한다면 3면이 은행 나뭇길이다. 그 중간에 울창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옹기종기 그늘을 드리우지만 가을에는 역시 은행나무다. 은행잎이 노랗게 익어갈 때쯤 이곳을 지나기는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은행에서 뿜어나오는 고약한 냄새는 그리 향기롭지 못하기 때문. 여기저기 깨진 은행들과 잎들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한달여 시간 만에 후두둑 옷을 벗어버리는 것이 은행나무다. 그 절정이 바로 오늘이었다. 전에 공원 외곽을 돌다 소나기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소나기로 인해 떨어진 은행들을 그냥 두자니 밟힐 것 같고, 주워서 가지고 가자니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아 난감했던 그 시간. 공원 안이 아니라 공원 둘레로 난 도로변, 자전거나 사람들이 밟으면 그만이었다. 결국 그냥 못쓰게 될 것 같아 비닐을 구하고 버려진 종이컵을 가지고 주워 담기를 두어 시간. 커다란 비닐로 가득 채워 조카 자전거에 실고 왔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가끔 자연이 주는 이벤트는 삶을 풍요롭게 채워준다. 서울 곳곳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곳들, 이제 겨울 채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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