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거리의 토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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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10.24. 00:00
시민기자 이혁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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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역사의 현장에 가보는 순간이었다. 언제 이렇게 광화문 광장 지하토층을 살필 수 있겠는가. 물론 광장조성과정에서 발견한 토층과 유물을 복원해 전시하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한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재 발굴현장 그대로의 모습을 공개한 시의 전격적인 결정은 역사문화를 갈구하는 시민고객들에게 적잖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광화문광장 문화재발굴 현장을 일반 시민에게 잠시 공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발굴 현장을 찾았다. 그간 통제구역이던 공사장의 문화재 발굴지역을 직접 확인한다는 자체가 처음부터 흥분됐다.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도 잠시 일손을 놓은 듯 뜻하지 않은 구경꾼들이 반가운 모양이다. 하긴 이때가 아니면 사람구경은 좀처럼 힘들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 밑에 조성되는 지하광장 쪽에서 역사의 궤적들이 발견됐다. 본래 광화문과 남대문 사이의 도로는 조선개국과 함께 관아가 있는 육조거리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이전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토층인 셈이다.
![]() 육조거리의 토층이 자연토층 위에 시커멓게 선명한 나이테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인공토층은 그 당시 토목기술을 엿볼 수 있지만 생각보다 그리 두텁지 않았다. 아마 그 이후 문명세대를 거치면서 짓누르는 인공토층의 무게 때문에 가라앉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육조거리의 토층은 어느 토층보다도 뚜렷하고 단단하다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다. 잠시 토층을 살피면서 어렴풋이 조선개국과 함께 태동하는 한양 거리의 토목공사현장을 떠올렸다. 인공토층은 겹겹이 계속된다. 육조거리의 파괴흔적이 토층 속에도 남아있었다. 임진 난의 피해가 얼마나 심했으면 토층도 녹아내렸다. 육조거리는 경복궁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사인부들과 우마차들로 한바탕 부산했을 것이다. 한편 육조거리는 일제침략기를 거치면서 전차 도로로 변신했다. 광화문을 경유하는 전차 선로와 침목들이 토층 속에서 고스란히 숨 쉬고 있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전차를 타고 통학했던 추억이 있었기에 침목을 보는 순간 콧등이 시리기도 했다. 토층 하상부에는 청계천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있어 이끼 낀 토층이 드러나기도 했다. 육조거리를 기준으로 지표상 수십 미터에 이르는 인공토층은 지나온 역사를 대변하는 흔적이며 육조거리의 환생이기도 하다. 토층발굴 공개현장에서 저 멀리 광화문을 배경으로 북악산을 직접 바라보는 기회도 결코 잊을 수 없다. 내년 6월이면 광화문광장이 옛 육조거리의 분위기를 살려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태어난다. 부디 내외국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역사적인 시민광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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