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무도회
admin
발행일 2008.05.06. 00:00
시민기자 최근모 | |
비가 오는 날의 축제라? 왠지 흥분이 된다. 남미의 카니발(carnival)을 떠올리면 열정, 젊음, 폭발 이런 역동적인 단어들이 가슴 속에서 치고 올라온다. 그래! 오늘은 축제의 첫날이다. 억수 같이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가면을 쓰고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광장의 초록빛 잔디를 맨발로 밟으며 살아있다는 것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이름도 ‘팔색무도회’가 아닌가? 갑자기 고등학교 때 몰래 가보았던 나이트클럽의 첫 경험이 떠오른다. 경희궁에 도착할 때쯤 비는 거짓말처럼 멎어 있었다. 다행이다. 축제도 좋지만 내일 아침 감기를 걱정해야 할 나이가 아닌가. 궁 앞에선 ‘왕, 민심을 살피다’라는 주제로 조선시대 체험마당이 열리고 있다. 그러니까 궁에 있던 왕이 민심을 살피기 위해 저잣거리로 나섰다는 스토리가 주 테마인데 그렇다면 지금 내가 왕이 되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어깨에 힘이 약간 들어간다. 쇳대박물관 대장간이란 곳을 들어가니 벌겋게 달궈진 화덕 위로 아직 제 모습을 찾지 못한 호미들이 놓여 있다. 대장장이가 쇠 집게를 들고 와 능숙한 솜씨로 하나를 잡아채 간다. 세월의 이력을 말해주듯 대장장이의 팔뚝 힘줄이 범상치 않다. 쇠망치로 한 방, 두 방, 연방 내리치는 메질에 두루뭉술하던 쇠붙이가 점점 호미로, 낫으로 그렇게 쓸만한 연장이 되어간다. 그렇게 8시가 조금 넘었다. 퍼레이드가 지나간 종로거리는 한산했다. 무도회가 열리는 시청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어두운 거리 끝에서 수백 개의 연꽃들이 공중에 유영하듯 걸어오고 있다. 홀린 듯 그들을 따라 조계사로 들어간다. 금발의 외국인 노부부가 "뷰리풀~"을 외치며 탄성을 지른다. 까만 밤하늘을 뒤덮은 붉은 연등의 물결이 바람에 일렁인다. 서울광장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구조물 위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워터 스크린이었다. 이 위에 궁궐의 영상을 투사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오월의 궁이 상상의 세계처럼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하늘 위로 설치된 반짝이들이 빛을 발하며 무언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입담 좋은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누구는 어색하게 가면을 쓰고 누구는 발을 구르고 어깨를 들썩일 것이다. 나는 이제 막 솟구치려는 카니발의 흔들림 속에서 빠져 나와 덕수궁 쪽으로 길을 잡았다. 광장에서 들려오는 열정적인 비트, 그에 반해 덕수궁 길은 고요하다. 조용히 그 평온한 길을 걸으며 나지막하게 비트에 맞춰 허밍을 한다. 발로 스텝도 밟으며 말이다. 매일 매일이 축제라면 살아볼 만한 인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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