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빨간고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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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7.10.11. 00:00
시민기자 이혁진 | |
가을이 완연하다.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와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 그리고 곡식이 익어가는 너른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어딘가 풍성하지 않은 게 없어 보이는 가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깔이라면 빨강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빨간 고추를 말리는 풍경은 가을을 준비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가을걷이를 준비하는 최초의 작업이 고추를 널어 말리는 것이다. 고추장을 만들거나 김장 김치에 쓸 고춧가루가 기본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따가운 햇볕과 선선한 바람으로 고추 말리기 최적이다. 땡볕에 익어가는 고추를 보면서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세상이 많이 변해 고추 널기가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공들이는 작업인지 모른다. 예전엔 비라도 한번 뒤집어쓰면 고추농사를 망쳤다고 할 정도로 귀중한 시간이었다. 왜 고추를 말려야 하는지 몰랐던 철없던 어린 시절, 심심풀이 놀잇감으로 던지고 놀았다가 호되게 벌을 선 기억이 떠오른다. 벌써 시장통 방앗간 고추 빻는 행렬이 늘어섰다. 부지런한 아낙들이 멍석 위 고추 다루는 손놀림이 바쁘다. 어린 시절에는 짧은 햇볕을 이용해 초가지붕이나 장독대에서 고추를 말렸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앞마당 둘러앉는 평상에 고추를 올려놓고 골목길 담장 아래도 고추들이 햇볕을 쐬고 있다. 난간 햇볕 드는 곳은 고추들의 명당이고 엊그제 아파트 주차장에 깔아놓은 고추는 그야말로 고추밭이었다. 하지만 고추 말리는 작업은 시작에 불과하다. 말린 다음의 손길이 더 많이 기다린다. 일일이 꼭지를 따고 먼지를 닦고 고추를 빻고 열기를 빼서 비닐로 싸 김장철에 쓸 때까지의 보관은 모두가 정성의 시간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은 대개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식이나 부모를 위한 몫도 들어 있다. 정성을 나눠주고 베풀고 싶은 마음이 익어가는 고추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재래시장 고추 빻는 방앗간에 늘어선 아주머니들의 기다림이 아무리 길더라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유다. 낙엽이 서서히 물드는 것처럼 고추가 빨갛게 익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햇살 담은 빨강 고추밭은 넉넉한 인심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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