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이렇게 재밌었다니!"

시민리포터 고은빈

발행일 2013.02.22. 00:00

수정일 2013.02.22. 00:00

조회 2,802

한 구절, 한 장면이 책의 인상이다

[서울톡톡] 책 내용이 아무리 좋은들 읽기가 어려우면 쉬이 읽히지 않는 법이다. 선조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고전은 특히 그렇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선뜻 읽기 망설여진다. 하지만 서울 도서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도서원화 전시회에서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쉽고 재밌게 구성된 고전 책에 상상력과 감동이 꿈틀거려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술술 읽다보면 어느새 옛사람들의 지혜가 새겨진다.

제목, 디자인, 전체적인 콘텐츠 등 우리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하지만 때로는 책에 있는 그림 하나, 인상 깊은 구절 하나에 책을 고르기도 한다. 서울도서관과 한국고전번역원이 힘을 합친 이번 도서원화 전시회의 포인트는 '고전의 긍정적인 첫인상 형성'에 있다. 책에 있는 한 구절, 한 장면만으로 책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전시 중인 원화들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고전인 '장복이, 창대와 함께하는 열하일기', '조선의 과학자 홍대용의 의산문답'에 나온 것으로 색색의 원화를 보며 구절을 곱씹다보면 책을 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당일 기획전시실에는 자리에 앉아 같은 책을 보는 부모와 자녀들이 눈에 띄었다. 리포터도 전시회를 둘러보고는 전시실 한편에 자리한 서가에서 책을 뽑아들었다.

<리포터 선정 인상 깊은 이야기>

열하일기
(열하일기 속 창대는 천민으로, 마수잡이 일을 한다)

1. 박지원과 창대가 연경에 도착했을 때 지원은 창대를 책방으로 데려가 책을 사주려 한다. 창대, 글을 몰라 책을 읽을 수 없다며 결국 거절한다. 그러자 지원 왈, "무엇이 문제냐? 글이야 배우면 되지." 지원의 말에 창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해진다. 이때껏 누구도 창대에게 글을 배우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고 창대 스스로도 글을 배우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글은 으레 양반들의 것이고, 천한 것들은 감히 어깨 너머로도 엿볼 수 없는 것으로 여겼던 창대는 무언가를 배운다는 희망으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꼭 삶을 뛰어넘겠습니다."라는 각오를 다진다.

2. 갑자기 열하로 떠나게 된 창대와 지원, 가던 도중 창대가 발을 다친다. 이동할 수 없게 되자 지원, 창대에게 돈과 청심환을 주며 나귀를 빌려 타라고 한다. 창대, 감사함을 표하자 지원 왈, "여기까지 나를 따라왔으면 당연히 내 사람이거늘, 내 사람이 성치 못한 건 내 책임도 있느니라. 은혜랄 것도 없으니, 마음 편히 갖고 얼른 나을 생각이나 하여라."

3. 열하에서 돌아오는 길, 지원 일행은 중도에 여정을 쉬게 된 또 다른 마수잡이 장복이와 합류한다. 창대와 장복이(이하 창, 복), 대화를 나눈다. 창, "난 천 냥 보다 더한 별상금을 받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상이다. 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꿈이 생겼단 말이다.", 복, "곱단이와 혼인하는 거? 그거야 원래 네가 하고 싶어 하던 일이잖아.", 창, "그게 아니라 내가 평생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단 말이다. 난 조선에서 가장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거다.", 복, "고작 되고 싶다는 게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냐? 그까짓 것은 굳이 되고 싶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거 아니냐? 어차피 너와 난 평생 말고삐를 잡고 살 것들인데.", 창, "그냥 말고삐를 잡는 사람이 아니라 말이 좋아서 고삐를 잡는 사람이 될 거야. 말에 대해서 공부도 많이 할 거고, 조선에서, 아니 중국을 통틀어서도 말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될 거란 말이다.", 복,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 창, "나리가 내게 꿈을 일깨워주셨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게 해 주셨어.", 복, 부러운 얼굴로 "나도 나리를 따라 열하에 갔더라면 꿈이 생겼을 텐데.", 창, "모든 길을 다 밟을 수는 없으니 가슴으로라도 밟도록 노력해야지. 그래야 네 세상이 넓어지는 게야."

의산문답
(의산문답 속 실옹과 허자는 홍대용의 상상 속 인물이다)

1. 실옹을 통해 우주에 많은 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 허자, 별을 두루 돌아다녀보고 싶어 한다. 실옹이 도교로 내공을 키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싶으냐 묻자 허자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그럴 수 있다면 가족이라도 버리겠다 한다. 실옹, 꾸짖으며 말한다. "도교의 호흡법과 수련을 거쳐 그것을 이룬 사람도 정녕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신선이 되는 놀라운 경지에 이른다고 해도 천 년을 누리겠느냐, 만년을 누리겠느냐. 모두 헛된 욕심이 아니겠느냐. 또한 신선이 된다는 것은 귀가 있어도 듣지 않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않으며 즐거운 것도 모르고 슬픔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선은 기쁨을 탐하지 않으며 욕심도 없고 진기한 세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신선이 되고파 하는 마음을 캐 보면 사실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신선이 된다 한들 아무 즐거움을 누릴 수 없으니 어찌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느냐. 자네는 참된 도를 배우고 싶어 하면서 이 별, 저 별 노니는 욕심에 휘둘리니 잘못된 것이 아닌가?"

2. 허자, 점성술사의 말은 다 틀린가 묻는다. 실옹 왈, "사람들이 집요하게 하는 말은 금도 녹이고,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고 했다. 어찌 사람의 말이 금을 녹이고 뼈를 녹이겠는가마는, 사람이 많으면 때로 하늘도 이기기 때문이다. 점성술이란 비록 허망한 것이지만 극진히 믿고 의지하다보면 때로 영험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법이지. 하지만 이는 허공의 빈 그림자를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빈 그림자에 속아 진실을 보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구나. 잘 듣고 마음에 새기어라. 이런 별자리가 나타나면 태풍이 불고 저런 별자리가 나타나면 비가 온다고 점치는 것은 그것을 빌려 간절한 백성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지, 별들이 정말로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3. 허자와 실옹, 역사에 대해 논하다 실옹 왈, "황제, 요와 순이란 사람이 백성을 다스릴 때에 중국은 어느 때보다 안정되고 교육이 넘치고 평화로웠다. 학자들은 중국의 이 시대를 일러 성인의 시대, 백성이 가장 행복하게 살았던 시대라 말한다. 유학자들은 옛날 욕심 없던 태평성대가 이상적인 시대이며 그 시대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인구가 늘고 풍속이 변하는 것은 몇몇 사람이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소하고 덕이 넘치던 옛 태평성대를 찬양하는 것은 좋으나 옛것만 고집하고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딱딱하고 고집스러운 생각에 갇혀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인구가 늘고 시대가 바뀌고 풍속이 변하며 도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데 억지로 백성을 몰아붙이고 이기심을 뿌리 뽑으려 하면 그 혼란이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두 권의 책을 다 덮고 나니 3시간이 흘렀다. 어린이를 위한 책이긴 하지만 그 속에 충분한 감동과 깨달음이 있었다. 뿌듯함도 느껴진다. 이번 주말에는 서울도서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고전의 지혜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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