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비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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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7.02.28. 00:00

수정일 2007.02.28. 00:00

조회 2,751



시민기자 이혁진

얼마 전 삼전도비가 훼손됐다는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비석에 붉은색 스프레이를 뿌려 분풀이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어떠한 명분으로라도 문화재가 파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훼손된 부분이 복원이 가능하다니 다행스럽다.

이번 사건이 있기 전인 지난해 말경 유적탐방 기회가 있어 삼전도비를 우연히 들른 적이 있다. 어린이공원에 인접해 서있는 비석이 조금은 낯설어 보였지만 이내 삼전도비의 유래와 교훈을 회상하며 역사 속으로 빠져 들었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요구에 따라 세운 비석이다. 임진왜란을 겪은 지 40년, 정묘호란을 당한 후 8년 만에 또 다시 병자호란을 맞은 것이다. 얼마나 전쟁의 상흔이 깊었기에 이때 소위 난리통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그것도 모자라 우리는 강제적으로 비석을 세우는 수모를 당했다. 비문의 내용은 어떤가. 참으로 굴욕적이다. 비석 제목부터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며 청태종의 군영이 있던 한강변 삼전도에서 조선 인조가 항복한 사실을 적고 있다.

삼전도비는 사적(101호) 지정 당시 삼전도 지명을 따서 새로이 붙인 것이다. 비석도 치욕적인 상처만큼이나 훼손이 심한 편이다. 비문의 내용을 거의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다. 비석은 방치되다가 강 갯벌 속에 오랫동안 파묻혀 있기도 했다. 오랜 풍상과 세태의 무관심 속에 비석 하나는 아예 없어져 거북받침대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삼전도비 공원에는 삼전도비의 슬픈 역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삼전도의 수난’이라는 특이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인조가 청태종 앞에서 문무백관을 대동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기념비는 서울시가 1982년 삼전도비 이전 시 별도로 설치한 것으로 삼전도비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문제는 차마 들추고 싶지 않은 치욕의 과거를 삼전도비를 통해 되새기는 이유이다. 빛나는 발자취만이 후세에 중요한 게 아니다. 역사의 교훈을 국난과 전쟁 등 수난사에서 찾고자 했던 깊은 의도는 최근 재평가되고 있다. 자주자강(自主自彊)이 얼마나 중요한지 삼전도비는 새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훼손된 삼전도비가 빠른 시일 내에 온전히 복구되길 기원한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8호선 석촌역 6번 출구에서 약 150M 삼전도비 어린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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