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씻었다는 세검정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5.10.27. 00:00
시민기자 최근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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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지나던 버스정류장 옆에 정자 하나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지나던 곳이라 세검정이라는 이름은 단지 정류장이라는 느낌밖에는 들지 못했다. 인조반정에 관한 자료를 공부하다 보니 광해군의 폐위를 모의하던 이귀와 김유등이 도성에 진입하기 전 계곡에서 칼을 씻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칼을(劍) 씻었다(洗)는 데서 세검이라는 말이 유래 돼 이곳에 있는 정자를 세검정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저 의미 없이 지나던 곳을 버스에서 잠시 내려 살펴보았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세검정 옆으로 난 계곡은 물이 많이 불어있었다. 그만큼 세차게 내리치는 물소리가 제법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지금은 복개된 도로와 주택들이 세검정을 둘러싸고 있지만, 그 옛날에는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과 산들이 절묘한 경치를 제공했다고 한다. 장마가 지면 도성 사람들이 이곳에 와 물 구경을 했으며 동네 아이들이 정자 밑에 커다랗게 자리를 잡은 너럭바위 위에서 붓글씨를 연습했다고 한다. 먹물을 묻혀 화선지 보다 더 넓은 바위에 붓을 제 마음껏 놀리고 계곡물에 썼던 것을 다시 지우고 다시 쓰고...지금의 칠판은 명함도 못 내밀 최고의 학습장이 아니었을까 한다. 정자 옆에는 차일암이 있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파보면
세초(洗草)라는 재미난 말이 따라나온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굳이 실록편찬에 기초가 되었던 자료와 초고를 세초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생길 분쟁과 기록을 하는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왜 굳이 이곳에서 세초를 하였을까? 가까운 청계천도 있었을 테고 한강도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왜 하필 세검정 계곡이란 말인가? 그것은 종이를 만드는 일을 담당하던 조지서(造紙署)가 바로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는 칼을 씻었다는 세검의 의미가 무언가 부정한 것을 씻어내고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세초의 작업과 맞아떨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세초 때에는 가까이 있던 차일암에서 실록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잔치도 베풀었다고 한다. 이를 세초연이라고 한다. 개천 위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세검정은 개방되어 있어서 실제로 정자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곳에 올라 주위를 보니 다세대 주택들과 인접해 있어서 그런지 자연 속에 고즈넉하게 있는 정자의 운치보다는 조금은 스산한 느낌을 받았다. 세월의 많은 변화를 느끼게 하는 광경이다. 멀리 북한산 자락이 보이고 그곳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세검정 옆을 흐르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볼만한 모습이지만, 바로 옆에 난 차도로 달리는 버스들과 정리되지 않은 주택과 함께 숨 쉬고 있는 세검정의 모습은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겸재 정선이 부채에 그린 "세검정" 그림은 당시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있는 세검정은 1977년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보아도 그리 오래된 정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1941년 근처에 있던 종이공장 화재로 같이 소실되었던 것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인조반정의 주역들이 칼을 씻으며 도성 진입을 준비하던 곳. 이곳에 한 번 방문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하다. 역사책에 언급된 곳에 직접 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있는 체험이 될 것이다. 주변에 대원군이 별장으로 쓰던 석파정과 보도각 백불 그리고 탕춘대성도 둘러보기를 권한다. 이곳 모두 세검정에서 도보로 10분 내외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교통편은 인근에 지하철이 없어서 좀 불편한데 교보문고 앞이나 홍제역에서 버스를 타면 세검정에서 내릴 수 있다.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옆에 세검정 정자가 보인다. * 세검정을 지나는 버스 : 110, 170, 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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