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사진전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5.10.07. 00:00
시민기자 김영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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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은 수도 서울의 600년 역사와 궤(軌)를 같이 합니다. 그러기에 청계천엔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지난 날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돼 있습니다. 우리 삶의 애환(哀歡)과 명암(明暗)이 녹아 있습니다. 1392년 7월 조선(朝鮮)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2년 뒤인 1394년 10월 개경(開京:개성)을 떠나 오늘의 서울, 한양(漢陽)으로 천도했습니다. 당시의 청계천은 물론 자연상태 그대로의 하천이었습니다. 홍수가 나면 인근의 민가가 침수되는 일이 벌어지고 평시에는 생활하수가 괴어 불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의 지형적 특성이 북악산, 인왕산, 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盆地)이기에 사방의 물이 당연히 도심 한 가운데를 가로 질러 흐르는 청계천으로 모여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청계천 치수(治水)를 처음 시작한 것은 3대 임금 태종 때였습니다. 1411년 청계천 치수사업을 담당할 개거도감(開渠都監)이 설치되어 1년여에 걸쳐 하천을 정비했습니다. 그 뒤 21대 영조 때에 들어 개천 바닥에 쌓인 모래를 파내고 석축을 쌓고 물길을 바로 잡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시행, 비로소 현재의 흐름과 비슷한 직선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청계천이 암흑 속으로 사라진 것은 1961년에 들어서였습니다. 그 해 12월 광통교에서 동대문 근처
오간수문에 이르는 구간을 복개, 그 위에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복개공사는 그 뒤에도 계속되어 총 5.4km에 이르는 청계천이 시멘트
덮개에 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수도보다도 산자수명(山紫水明)함을 자랑하는 우리의 수도 서울. 청계시내 맑은 물이 있기에 그 자부심은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반세기만에 시민 품으로 다시 돌아온 청계천. 이제 다시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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