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기관 '의정부 터' 발굴 현장에 가다

시민기자 서준영

발행일 2019.10.22. 16:09

수정일 2019.10.23. 09:57

조회 462

의정부가 서울에 있었다니, 일부 사람들에게는 황당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의정부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경기도 의정부시인데요. 하지만 경기도 의정부시의 명칭은 서울의 원조 의정부에서 유래됐습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시대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조선의 초기 중앙 정치 제도는 의정부, 6조, 삼사, 의금부와 승정원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의정부는 최고 통치 기구로써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으로 구성된 3정승의 합의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의 대신급 기관 역할을 했습니다. 임진왜란 시대에 직전까지는 권한이 가장 강한 기관이였지만 임진왜란 후에 임시 기구였던 비변사의 기능 강화로 그 명성을 빼앗겼습니다.

1890년에 찍힌 육조대로의 모습이다. 출처:서울시

 육조대로를 중심으로 배치된 주요 중앙 관청들의 모습


하지만 그 후 1865년에 비변사가 폐지됨에 따라 다시 최고 통치 기구로 올라섰습니다. 관청들의 보고를 국왕에게 보고하여 의결해야 하는 기능에 의해 의정부와 주요 중앙 관청들은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육조대로는 현 세종대로의 위치해 있었습니다.  


의정부의 중심건물인 정본당

그럼 경기도 의정부시와는 무슨 관계일까요? 현 경기도 의정부시의 명칭은 둔야면 의정부리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둔야(芚夜)와 의정부리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 최고 통치 기구인 의정부의 둔전(屯田. 고려 ·조선 시대에 군량을 충당하기 위하여 변경이나 군사 요지에 설치한 토지)이 설치되어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또 태조 이성계가 함흥차사의 이야기를 끝내고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현 경기도 의정부시 지역에 머무르다 대신들이 그곳에서 국정 논의를 했다 해서 의정부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합니다.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에서 바라본 의정부 터 발굴현장 ©서준영

다시 서울로 돌아와 현재 광화문 광장을 살펴보면, 의정부를 비롯해 많은 기구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정부가 사라지게 된 이유는 구한말에 세종대로를 조성하면서 다른 건물들과 함께 헐리고 그 자리에 대한제국 내부 청사가 기획됐습니다. 따라서 서양식 건물이 새로 지어졌지만 완공직전 일제강점기 시대가 초래하면서 경기도청 건물로 쓰이게 됐습니다. 그 후 치안본부 본청과 서울지방경찰청 별관으로 쓰이다가 1999년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으로 조성됐습니다.


 의정부 터 발굴현장  ©서준영


 의정부의 기능- 백관을 총괄하고 서정을 평리하며 음양을 가스리며 나라를 경륜하다 ©서준영

이런 아픈 역사 속에서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의정부는 잊혀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현재 의정부터를 복원하는 작업 중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부터 발굴조사를 시작했으며 이미 올해 9월에 발굴조사가 끝난 상태입니다. 현재 정본당, 협선당, 석획당의 일부 기초부가 발굴되었고 내행랑지가 발굴됐습니다. 서울시는 이런 조사결과를 반영하여 의정부 터의 역사성 회복을 위한 복원설계를 추진한다고 합니다. 의정부 터가 복원되어 그 역사적 가치가 많은 시민들에게 알려질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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